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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술술이세무사
Nov 29. 2024
전 회사(세무법인) 대표님을 떠올리며
세무사의 하루
연말이 다가오니
센치해지는 걸
까?
지금으로부터
한참이나
지난
퇴사시절이
떠오른다.
31살
(만으로
29살)
6월
퇴사를 결심하고 주변 선배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모두들 코웃음을 쳤다.
주말새 다시 생각하고 말하라고.
직장인이 하는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 중 하나가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말지.'라고 하던가?
다들 '어린 녀석이 욱하는 마음에 한마디 하는구나.'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
그냥
다니겠다고
할까?'
예상외의
주변
반응에 번복을 잠시 고민했지만
남아일언
중천금!
'그만두겠다.' 해놓고 며칠 뒤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꿀
사람이라면
어찌
큰 일을 도모할 수 있겠는가
어리고 철없어 보일 순 있겠지만 가벼운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입 밖으로 꺼낸 이상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죽밥이 되든 회사는 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다음 주, 다시 퇴사결심을 밝히니 더 이상 만류는 없었다.
그리고선
차근차근 진행된
인수인계 등
퇴사준비
당연히 그동안 관리해 오던 거래처에도 퇴사소식을
알려야 했
다.
대부분의 반응은
'고생했고 앞으로 우리 관리는 누가 해주냐?'였다.
회사의 간판을 보고 같이 일을 한 것이지, 술술이 세무사를 보고 일한 것은 아니기에
너무나 당연한 반응
그러나 사막에서 바늘 찾듯
몇몇 대표님은 "저도 같이 가야죠,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함께 하시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총 6개 업체, 월기장료로 따지면 90만 원가량
따뜻한 월급을 받으면 살다가, 31살 어린 나이에 혈혈단신 개업.
먹고사는 문제가 코 앞에 닥친 상황에서 월 90만
원이란 돈은
목숨줄이
나 다름
없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회사는 내게 사회생활의 출발지이자 5년간 세무사의 기본을 다져온 뿌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녹을 먹어온 입장에서 퇴사하며 업체를 빼간다는 것은 함께 해준 동료와 믿어준 대표님에 대한 '배신, 해사행위'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당장 먹고살 걱정을 하니 그쯤이 뭐가 대수랴 싶기도 하고
괜히 말을 꺼냈다가 근로계약서에 기재된 '손해배상책임'을 운운하게 된다면..
생각만으로
골이 아파왔다.
'말 안 하고 몰래 이관시켜?'
'괜히
이야기 꺼냈
다가 한 개도 못 가져간다 하면 어쩌지..'
매일같이
깊은
고민이
계속되고
.
.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평소 아버지와 회사생활에 대해선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그날따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버지께 넌지시 현 상황을 설명드려보았다.
사회경험이 많으시니 도움이 될만한 조언을 해주시길 바라며
그러나 느닷없이 떨어지는 불호령
"이 놈의 새끼! 그렇게 살면 안 돼! 당연히 말을 해야지!"
"..."
자식의 사정도 모르고 원칙만 강요하시는
고지식한
아버지가
바로 내 아버지였다니..
'왜 저리 괴팍하셔'
'아버지가 세무사의 생태를 아세요? 나한테는 지금 목숨이 걸린 일이라고요.
'
'
맨땅에 헤딩하다 망하기라도 하면 그때는 아버지가 책임지실래요?'
목구멍을 넘으려는
말을 참으며
아버지의
일방적인
꾸지람과 함께 대화가
끝
났다.
'
옛날분이라서 대화가 안 통한다니까
'
괜히 이야기를 꺼냈다며
후회만
남은
술술이였다.
그러나
뒤돌아서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아버지의 말씀은 틀린 것이 하나 없었다.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다
.'는 말도 있듯
돈까지 줘가며 키워놨더니 이제는 곳간에서 돈까지 훔쳐 달아날
생각이나 하고 말이지..
'
배은망덕
'이 딱 나를 두고 하는 이야기였다.
또 고지식한 이야기라며 한 귀로 흘렸던 원칙이야말로 살아감에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가치였다.
'돈에 눈이 멀었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돌아보니
돈 몇 푼을 '소중한 인연 그리고 첫 회사생활의 추억'과 맞바꾸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당장 어려움이 있더라도 도리를 다하자.'
얼마간 생각의 정리를 하고 곧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똑똑똑
긴장되는 마음으로 대표님
방문을 두드렸다.
손에는 함께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업체 명단과 기장료가 출력된 A4종이를 들고
"이번에 거래처에 퇴사인사를 드렸더니 몇
개
업체가 같이 할 수 없겠냐고 물어와서, 먼저 대표님께 상의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어 그래? 됐어 됐어, 가봐"
"?"
대표님은 손을 휘휘 저으며 어서 자리로 돌아가라 손 짓하셨다.
"
가서 일 봐."
몇 주 동안의 심각한 고민 끝에 큰 용기를 낸 것이 무색하게
대표님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시고 쿨하게 후배세무사를 응원해
주셨
다.
방을 나와 자리로 돌아가는
짧은 걸음동안
그간의 고생이 녹아내려서일까?
술술이의
눈에는
살짝
눈물방울이 맺힌다.
어려운
상황
에
놓였을 때
도망치지
않고
용기 내서
맞서야 함을
배운
술술이
'술술이 세무사'가 어제 보다 훌쩍 커 보인 것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후기
당시 '만 서른'이 안된 어린 나이
머리에 피도 안 말랐다고 할까요?
생각도 얕고 걱정도 많고 말이죠.
더욱이 저한테는 목숨이 걸린 일이다 보니 업체이관 관련해서 오랫동안 정말 심각하게 고민을 했었습니다.
결국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며 이야기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을
냈었고요.
하지만 우연찮게 나눈 아버지와의 대화 이후 생각이 180도 바뀌어 용기를
내어
대표님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표님은 제 좁은 생각보다 훨씬 더 멋진 분이셨고요.
업체수도, 기장료도, 뽑아간 종이도 보지 않으시고 귀찮다는 듯 시크하게 저를 돌아가라 하셨죠.
그때 밀알이
된
업체
덕에
지금까지 용케
망하지 않고 세무일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새 연말이네요.
오랜만에 대표님을 찾아뵙고 감사인사를 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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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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