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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술이세무사 Dec 10. 2024

세무사 양도세 계산

세무사의 하루

직원들 모두 교육으로 없어 혼자 남아있던 어느 날

사무실 문을 열고 장년의 남자분이 들어왔다.


"아까 전화한 사람인데요, 양도세 맡기러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양도세 전화는 한 번도 온 적이 없었다.


"저랑 통화하신 적은 없는 것 같은데요?"

"아닌데, 방금 전에 통화했는데?"


알고 보니 다른 세무사 사무실에 전화를 하고선 인터넷 지도에는 나를 찍고 찾아온 상황이었다.


"이것도 인연인데 그냥 여기서 해야죠 뭐"

"알겠습니다. 자료 좀 보여주시겠어요?"


본의 아니게 맡게 된 양도세 신고

신고 내용은

재개발로 인한 청산금을 수령한 건으로

당초 권리가액이 분양가액보다 높게 평가되어 그 차액만큼을 지급받은 건이다.


"세무서를 찾아갔는데 절대 계산이랑 신고는 안 해준다고 하대요?"

"요새는 책임소지가 있다 보니 세무서에서도 단순 상담 이상은 금지하는 모양이더라고요."


어려운 내용은 아니나 일반인이 다루기는 조금 난이도가 있다.

청산금만 양도대가에 해당하기에 거래금액 자체가 크지는 않은 상황


"내용 잘 확인했고요. 양도세 신고수수료는 30만 원입니다 부가세는 별도이고요."

"30만 원이요?? 왜 이렇게 많아요??"


2017년부터 시작된 격변의 양도세법 개정시기를 겪은 이후부터는

아무리 단순한 양도건이라도 최소 30만 원을 부르고 있다.

크다고 생각하면 큰 금액이지만 단순 신고대가가 아니라 세무사의 책임비용이라는 생각이다.


수수료 금액으로 몇 번의 실랑이 후


"25만 원 하시죠, 여기가 제 마지노선입니다."

"알겠습니다."

"수수료는 양도세 계산하여 안내 먼저드리고 이상 없으시다고 하시면 그때 받고 신고진행하겠습니다."


신고의뢰 후 부동산 경기, 내수 침체 등 이런 주제로 근 30분 이상 대화를 나누고 의뢰인은 사무실을 떠났다.




남아있는 일을 정리 후 양도세 계산을 시작했다.


어라?


권리가액보다 취득가액이 큰 상황으로 양도차익이 계산되는 것이 아니라 양도차손.

즉, 결손으로 계산되었다.

청산금 수령이 되려 손해인 상황이니 당연히 납부세금은 없다.


세무사 일을 하며 많은 사람을 만나온 결과

나름 사람 보는 눈이 생겼다고 자부한다.

그런 나의 촉으로

방금 다녀간 남자분의 경우 불과 1시간 남짓 대화를 나눈 사이에 불과하지만

양도세가 없다고 안내 시에 의뢰를 취소할 느낌이 강하게 온다.




다음날 오전

의뢰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술술이 세무사입니다. 어제 맡기신 양도세를 계산해 보니 납부세금은 없는 것으로 계산됩니다."

"그래요?"

"이상 없으시면 신고진행할까요? 수수료 입금계좌 알려드리겠습니다."


"잠시만요."


살짝 정적이 흐르고


"혹시 신고 안 하면 과태료 같은 게 나오나요?"

"아닙니다."

"세무서에서 문제가 될 수 있나요?"

"신고가 원칙이긴 하나 납부세액이 없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무신고 가산세 뭐 이런 건 없고요?"

"본세가 없으니 가산세도 따로 계산은 안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신고 안 하고 싶은데요?"


"..."

"어차피 납부할 세금도 없는데 신고해 봤자 하나 싶고요.."

"그러면 신고의뢰는 취소하겠다는 말씀이시죠?"

"네.. 고생하셨는데 미안해서 어쩌죠?"


역시 그동안 그냥 세무사를 했던 것이 아니다. 100% 들어맞은 촉

상담하고 계산하느라 시간은 뺏겼지만 이 또한 받아야 들여야 하는 것이다.


"괜찮습니다. 그러실 수 있죠."

"수수료도 부담스럽고.."

"..."

"진짜 신고 안 해도 괜찮은 거죠?"

"그 부분은 제 개인적인 계산결과이니 확실하게는 다른 전문가를 통해 다시 상담받으시기 바라겠습니다."


전화가 끝났다.

세무일을 하다 보면 종종 일은 해주고 돈은 못 받는 일이 있다.

뭐 어쩌겠냐? 서로 믿고 하는 일인데, 신의 없는 사람을 만난 게 죄지..

세무업무단순히 돈 몇 푼으로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저분은 수수료가 아까워 앞으로 큰 힘이 될지도 모를 인연을 놓친 것이다.

나의 가치가 그 몇 푼보다 작게 평가된 것은 살짝 안타깝지만 말이다.


그리고 양도세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 문자 한 통을 보냈다.



오케이 이제 다 끝났다.




1시간 정도 지난 후 걸려온 한통의 전화


"안녕하세요 세무사님 아까 양도세 맡긴 사람입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세무사님한테 맡기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뒤돌아 생각하보니 문제가 염려돼 마음이 다시 바뀐 모양이다.

하지만 이제는 내 마음이 돌아섰다.


"저는 괜찮습니다. 다른 분한테 의뢰하시죠."

"괜찮다니요?"

"아까 대화도 그렇고 진행하기가 곤란하겠습니다."

"왜요? 그냥 신고해 주시면 되잖아요."

"선생님, 저희가 짧게 만났지만 그래도 서로 약속을 한 사이 아니겠습니까?"


"..."

"선생님이 저에게 의뢰를 주셨기에 믿고 시간을 들여 양도세계산을 해서 안내해 드린 것입니다."

"..."

"선생님은 양도세 없다는 말에 마음이 금세 바뀌신 것이고요."

"그건 그렇지만.. 세무사님이 신고 안 해도 괜찮다고 하니까.."

"저는 있는 그대로 말씀드린 것이고요. 거짓말할 이유도 없고요. 그 계산결과를 알게 되신 것도 저에게 의뢰를 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

"'돈 몇 푼 받고 말고' 가 아니고 '신의의 문제'입니다."

"거 참.."

"모쪼록 다른 세무사 통해서 신고하시면 되니 괘념치 마시고 마무리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세무사님 삐졌어요??"


삐졌다니?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표현인지..

나는 말의 무게 그리고 약속에 대해 굉장히 큰 의미를 두고 살고 있다.

양도세가 없다는 말에 손바닥 뒤집듯 쉽게 약속을 저버린 사람을 어떻게 믿고 같이 일을 할 수 있겠나


"미안해요, 화 푸세요."


이후로 몇 번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아버지 뻘되는 분에게 언제까지고 완고한 자세를 보이는 것은 유교 위에 세워진 국가에서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뢰인도 약속을 저버린 것에 대한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하시고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진행하겠습니다."

"고마워요. 세무사님"




양도세 수수료 청구 문자를 보내기 전

한참이나 어린 후배의 꾸짖음에도 기분 상해하지 않으시고

자존심이 상할 텐데도 다른 세무사가 아닌 나를 끝까지 찾아주신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좀 더 깎았습니다.


후기


유튜브 찍듯 원테이크로 써버린 최근 일화입니다.

의뢰인께서는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씀과 함께 점심약속을 권하셨고요.

저도 흔쾌히 '알겠습니다.' 하고

다음 주에 만나 다슬기 해장국에 감자전을 맛있게 먹었네요.


다시 보지 않을 것처럼 대쪽 같다가도

돌아보면 미안함과 감사함만 가득한 것


이런 게 인생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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