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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박자 Feb 10. 2024

예쁘게 말할 수 있어(2)

ㅡ둘째 Jay의 성장 이야기

생사의 고비를 가르고 써프라이즈로 3주 일찍 세상에 나온 아기는 2.61kg 였다.


너무 작았다.

(39주에 태어난 첫째는 3.0kg)


조산아가 아니고 만출아(만기 출산 아기)라서 며칠 관찰 후 바로 태아중환자실을 나왔지만,

첫째 때를 생각해보면, 너무 작고 앙상했다.


하지만 명은 강했다.


살아남을 명줄을 쥐고 있었던 듯

힘차게 젖을 빨고, 모유든 분유든 쭉쭉 원샷을 했다.

2주 뒤 아기는 3키로가 넘었고

나는 그제야 내 마음 속에서 진정한 출산을 완료했다.


인생 마지막 출산을.....

(네버 에버 다신 네버!!!)



(0~31개월까지)

Jay는 쑥쑥 자랐다. 일찍 태어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모유분유 안가리고 원샷, 100일이 뭐야, 한 50일?쯤부터는 자기 전 배불리 먹고 통잠.

돌 쯤에는 키도 체중도 상위 3~5%대에 들었다;;;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고, 삼박자가 (오? 내 필명?) 딱딱 맞았고 고 잘 웃었다.


그러나 이 아이의 특별한 출산 리스크가 아직 잔재하며 영향을 끼칠 시기에..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를 낀 채 20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녔기 때문일까...

(나는 맞벌이 워킹맘)


코로나 시기에 마스크를 꼈던 모든 아이들이 다 말이 늦은 게 아닐텐데, 이 아이는 (내 기준) 말이 조금 느렸다.


직업상 공부해온 아동발달 기준에서는 평균선 하단 정도였긴 한데, 21~2개월에 이미 4단어를 연결해 상황에 맞게 문장으로 말했던 첫째 때와 비교되며 둘째는 상당히 느리다는 느낌이 왔다.


그리고 왜 말이 잘 안늘지?아직까지 한 두 단어만 연결되지? 싶던 그 10여개월 사이,

아이는 몸도 자라지 않았다.

키 체중 상위 3~5%였던 뽀동뽀동했던 아이가

누가 봐도 살집 하나 없는 평균 이하의 체격이 되었다.


그러다 30개월 때,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선생님부터 아이들까지 전체적으로 코로나가 돌았고, 친정엄마는 어린이집을 끊어라 당신이 맡겠다 하셨다.

(**한달 뒤, 지쳐가는 엄마를 보며 내가 집 바로 앞 가정 어린이집을 급히 알아봐 다시 보내게 됐다)


그때부터였다. 아이가 다시 쑥쑥 자라기 시작한 게.


그 전 어린이집에서는 아이가 스스로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지 않거나 안 먹으려고 버티면, 억지로 먹이지 않고 더 안 먹고 싶은지 물어봐서 그만 먹게 하셨다(고 늘 알림장에 적어주셨다). 그건 네 명의 어린 아이들을 한 선생님이 돌보는 상황에서, 선생님의 차분하고 이성적인 성향에서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반면 친정엄마는 나를 살찌우셨던 그 방법으로ㅎㅎ어떻게든 뭐라도 먹게 하셨다. 밥을 갈아서 미음으로 만들어 떠먹일지언정 매 끼니를 꼭꼭 다 먹게 하셨다.


그러다 한달 뒤 새로운 어린이집에 가면서부터는 그야말로 성장발달에 날개를 달았다.


24개월(세 단어 이상을 연결해 문장을 말하기 시작하는 월령)에도 29개월에도 "엄마 까까" 하던 아이가, 정확히 31개월부터 "엄마 여기 까자(과자) 꺼내져(줘)" 라고 네단어 이상을 붙여 문장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키도 체중도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새 어린이집 선생님께 10개월의 발달 절벽에 대해 말씀드렸기 때문일까. 특별히 더 신경써서 책을 많이 읽어주신다 하셨고, 말을 계속 걸어주셨고, 늘 에너제틱하게 끊임없이 활동들을 이어가주셨다. 밥도 스스로 안 먹으면 떠먹여서라도 최대한 먹인다고, 아직 어린데 혼자 안 먹으려고 할 수도 있죠 하시며, 그런데 아이도 먹어 버릇하다 보니까 점점 더 잘 먹고, 이제는 스스로 밥 한그릇씩 뚝딱해요 제가 안먹여줘도요. 라고 하셨다.


그렇게 우리 Jay는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분명 나머지 시간에 집에서 먹는 것, 자는 것, 놀아주고 안아주는 것 등등은 똑같았는데, 고작 낮시간에 대여섯 시간 다녀오는 돌봄요인 하나가 바뀌자마자 그런 드라마틱한 변화가 나타났다.


**그냥 팩트다. 타이밍이 하필 그랬다. 아마도 성장요소들이 누적되고 있다가, 딱 그 타이밍에 성장할 때가 되어서 폭발적인 성장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31개월 이후)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유치원에 갈 무렵,

그러니까 43~44개월쯤?까지 드라마틱하게 자라긴 했지만, 아무래도 Jay는 (아동상담을 주로 해와서 직업병이 있는 내 눈에는)  또래보다 느리고 뭔가 더 어린 아기같았다.


**여기서 잠깐,

아이의 신체.언어.인지.정서.행동 발달이 균형있게 이루어지면 가장 좋지만~ 상황에 따라 불균형해질 수도 있는 거고, 발달의 속도 역시 제각각이므로 정상발달 범위 내에서 조금 늦춰졌다 해서 다 발달문제가 있는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책이나 온라인에서 찾아볼 수 있는) 월령별 정상발달 범위를 벗어나는 정도가 심하다면, 영유아검진 때 소아과 의사선생님께 아이에 대해 자세히 알리고 상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45개월~ (한국나이 6살 형님되신...)현재까지)

잘 지내지만은 못할 것 같았다.

4월말 인가부터 유치원에서 한번씩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첫째는 영어를 함께 배우는 일반유치원에 다니며 이미 6세 땐 파닉스를 꽤 익혔고, 원어민 수업에도 적응해 잘 아웃풋하며 거의 아무런 어려움없이, 오히려 우수하게 유치원을 다녔었기.. 

유치원에서 걸려오는 부적응 상담 전화는 낯설었다.


Jay의 발달속도를 고려할 때 아직 학습은 아니다 생각하여 놀이와 인성교육 중심의 유치원으로 골라 보냈고, 부적응 일부 미리 예상 했음에도..

막상 전화를 받으니 긴장이 되고 마음도 많이 위축됐다.


물론 입학할 때 아이에 대한 참고사항을 적는 서류에 나는,


- 언어발달이 늦었(29개월까지 두세단어 연결, 30개월 환경변화 후 31개월부터 네단어 문장 발화)


- 기 때 짜증도 안부리고 순했는데, 정확히 40개월 부터 화날 때 물건을 던지거나 소리를 지르는 행동이 나타나기 시작했음 (문장 발화가 또래보다 늦게 터져서 그런지, 자기주장이나 화나는 감정 표현을 말이 아닌, (말보다 빠르고 쉬운) 던지기, 소리지르기로 하는 듯)


- 고로, 부적절한 상황에서 (주로 반응적)공격성이 나타날 수 있어 우려됨. 친구들에게 물건을 던지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때리는 행동이 나타날까봐 걱정됨.


- 집에서 그런 행동이 보일 때마다 최대한 일관되게 훈육해오고 있어 조금 강도가 줄었으나 아직 완전히 잡히진 않고 있음. 혹여나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즉각적인 지도를 간곡히 부탁드림.


뭐 이런 식으로 적었었다.



지인들은 애가 영검(영유아검진)에서도 문제 없었고, 그냥 평균범위 내에서 말만 조금 늦게 터서 이제 막 발달중인데  왜 먼저 애를 깎아내리냐며, 그럼 처음부터 색안경 끼고 본다며 뭐라 하기도 했지만,


조금 늦은 속도로 발달하는 것은 우리 사정인 거고, 그것 때문에, 또래보다 조금 늦게 발달 중임을 이유로 물건을 던지거나 때리거나 소리를 질러서 다른 친구들이 피해를 입는 것은 안되지 않냐. 그러니 원에 미리 알리고 주의와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평균 범위건 아니건 내 눈엔 느린데 어쩔 것이냐며. 느린 부분은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선생님께 알리고 도움을 요청해야 아이가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지. 그러면서 아이의 발달을 촉진시키기 위한 치료 개입을 시작해야지. 그래야 부적응 자체를 줄이지 하는 생각었다.


모르겠다.

아이가 커서 왜 자신을 어릴 때 좀 느린 아이로 말하고 다녔냐고, 그냥 아이라 그렇다고, 어려서 그렇다고, 좀 감춰주지 그랬냐고 탓을 할지도.


하지만 엄마는, 나는 그렇다.

발달이 느린 것은 잘못이 아니며, 죄도 당연히 아니며,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줘도 이해받을 권리가 있는 특권도 아니기에.. 제2의 보호자인 담임선생님께는 있는 그대로의 발달상황을 알리고, 걱정되는 바를 의논하며 함께 협력해서 키워야 / 발달을 촉진해야 한다는 것.


나중에 네가 서운해한다면, 게 너에게 가장 도움이 될 것이라서 그리 했다고 말하고 싶다.

잘못도 아닌데 쉬쉬하며 감출 일이 아니었다고.

너는 사랑스럽고 귀한 내 기쁨이라고.


나아가 성숙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부족한 점이 혹여나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을 때(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다 까발릴 필요는 없고) 미리 알리고 도움을 구하며 개선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러면 그건 더이상 부족한 점이 아닐 것이고, 개선에 속도를 붙일 수도 있고, 그래서 더욱 성숙해져서, 미성숙한 사람의 편견이나 색안경 따위는 신경쓰지 않을 수 있다고.

엄마는 그랬고, 너도 그러길 바란다고.



그래서 우리 Jay, 아 영어쓰기 힘들다, 우리 제이는,

그 전화를 받은 직후 인근 소아정신과에 데려가 진료와 언어검사를 받고,

그때부터 언어치료와 놀이치료를 받고 있다.



이제는 상황에 맞게 못하는 말이 거의 없고,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 조금 머뭇하더라도 자기가 하려는 말을 최대한 아는대로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화날 때도 ㅇㅇ해서 속상(똑땅)했어요. 라고 예쁘게 말할 줄 알고,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도 더 풍성하게 표현할 줄 안다.

이렇게 수용.표현언어는 갈수록 좋아지고 있는데

발음은 아직 ㄹ.ㅅ(조음)발음이 잘 안되고 아기소리가 난다.


냉면 먹으러 가서 식초.겨자통을 보더니

엄마 이건 뭐야? 어 그건 소스야. 식초소스.

띡또또뜨? 이런 식.ㅎㅎ

싫어(시러) 대신에 시여! 라는 식.


아 물론 아직도 화나면 때리거나 물건을 던지거나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그러나 40개월에 갑자기 나타났던 완전 날 것의  그것과는 다른, 사회화 물은 들었으나 덜 다듬어진, '어린 아이의 그것' 정도라고 보인다.

사실 어른도 화나면 소리 지를 때도 있잖은가? 그것의 아이 버전 정도라고 보면 된다.



만 5세가 넘으면 풀배터리를 받아볼까도 생각중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관찰한 바로는, 인지발달 역시 불균형은 있을지언정 막혀있는데는 없는 것 같다..는 게 상담심리사 이자 임상심리사 이자 엄마인 나의 현재까지의 소견이다.


* 근거 :

숫자는 4세 때부터 관심보이며 10까지 읽고 썼고, 5세 중반부터는 (놀이 중심 유치원이라 따로 안 가르친) 한글을 패드학습기에서 혼자 익혀서 읽고 쓰기 시작, 5세 후반부터는 아날로그 시계를 보고 읽고, 영어는 아예 안 가르쳤지만(한국말부터 정확히 하라고) 숫자 7이 세븐, 9가 나인 인건 아는 정도.

= 학습 자극에 관심. 인식. 습득. 활용 +확장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인지능력 베이스를 가진 걸로 보여짐. 아무래도 불균형은 있겠지만, 학습/인지발달이 빠르지는 않아도 막 늦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됨. 



쓰면서 보니 글이 길었다,

그런데 그냥 끊을 곳을 찾지 않았다,



한국나이 6세인 우리 제이 형님은

정말 사랑스럽고, 웃상(웃는 상)이고, 아직 ㄹㅅ 애기발음 때문인지 더 귀엽고, 애교도 많고, 사랑표현도 풍성한 6세 형님이다.

엄마 닮아 겁도 많고, 정서행동 조절이 아직 미숙하여 화날 때 (엄마처럼) 소리도 지르고, 귀찮게 굴거나 장난인 괴롭히는 션 형아에게 맞서 똑같이 발차기 하거나 물건을 던지며 싸우다가 울기도 하지만, 계속 훈련하고 훈육하고 피드백하고 알려주며 열심히 발달가고 있다.

러니 어쩌면, 좀 더 크면, 주변을 보다 더 잘 이해하고 배려하고 마음을 나누고 용서할 수 있는, 나보다 더 큰 사람으로 자랄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 날 때마다 할머니(친정엄마)랑

<화내지 말고 예쁘게 말해요> 책을 달달 읽더니


언젠가 내가 욱하고 화를 냈을 때

"엄마 화내지 말고 예쁘게 말해야지~" 하고 말하던

사랑스러운 나의 제이.


이제는 제이가 짜증부리며 화를 내려고 할 때,

"어? 지금 화내려고 그러는 거야?엄만 제이가 예쁘게 말하면 좋겠어. 예쁘게 말해야 그만큼 예쁜 대우를 받는거야. 제이가 화내면 엄마도 기분이 상해서 화를 내게 돼." 라고 하면,

(정말 폭발 직전인 때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빠르게 감정을 가라앉히고 나서, 다시 다가와 나를 꼭 껴안고 눈을 보며 말한다.


"엄마 미안해. 제이는 화내지 않고 예쁘게 말할 수 있어. 엄마도 예쁘게 말할 수 있지?" 라고.


그럼 제이야. 엄마는 너 덕분에 화내지 말고 예쁘게 말해야 함을 배웠어.


우리는

예쁘게 말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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