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집에서 살아보기
우리 집은 아주 작습니다. 이곳으로 이사를 오기 전 집을 처음으로 보러 왔을 때 방이 너무 작아서 몇 번 고민을 했었습니다. 방안에 침대가 들어가고 나면 남는 공간이 거의 없을 것 같아서였죠. 다른 하나의 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공간을 무엇으로 쓸 수 있을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멜번도 서울과 마찬가지로 집 구하기가 쉽지가 않았어요. 경쟁도 치열하고, 객지에서 온 사람에게 집을 주고 싶어 하는 부동산도 없었기 때문에 기회만 준다면 무조건 들어가서 살리라 생각하고 집을 보러 다녔고, 가장 빨리 신청서에 승인을 해준 부동산과 계약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집에 구조나 크기는 별로 상관이 없었어요.
빨리 내 집에서 편안히 쉴 수 있기만을 바라고 있었다고 해야겠어요
그렇게 우리는 집 키를 받아서 처음으로 이곳에 발을 들였어요
처음에 집을 보러 왔을 때 보다도 작아 보였고 가장 큰 고민은 가지고 있는 짐들을 어떻게 이 작은 공간에 다 구겨서 넣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주방 살림들이 많았고 다들 그렇겠지만 쓸데없는 잡동살이들이 무수히 있었습니다.
우선은 가장 작은방을 침실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침대하나 들어가니 간신히 침대로 걸어 들어갈 공간이 남아있더군요
답답할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아늑해서 정말 잠만 자는 공간이 만들어졌어요.
그리고 그보다 조금 아주 조금 큰 방은 과감하게 서재 겸 둘만의 휴식의 방을 만들었습니다.
작은 책상 하나와 개인용 소파를 두 개 나란히 배치했어요
그곳은 책도 보고 둘이 앉아서 이야기도 나누고 차도 마시는 그런 우리의 놀이방이 되었어요
집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별로였다가 애정을 가지고 꾸미는 손길이 늘어갈수록 그 매력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렇게 좁게 보였던 이곳도 살다 보니 둘이 살이 아주 넉넉한 공간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집에 들어오면 아늑한 느낌이 들면서 추운 날씨에도 어쩐지 이곳은 따뜻한 느낌이 들었어요
주방도 싱크대가 한 칸 밖에 없었지만 생활하다 보니 한 칸으로도 충분히 설거지랑 요리가 가능하였습니다
작은 거실에는 일부러 소파세트 같은 것은 들여놓지 않았습니다.
공간도 부족하고 이곳 하고는 맞지 않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죠.
책 몇 권과 작은 테이블과 의자를 놓았어요
바깥이 잘 보이는 곳에 식탁 겸 테이블을 놓고 틈날 때마다 그림 같은 바깥풍경을 감상한답니다.
식탁이 꼭 주방에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우리도 전망 좋은 레스토랑처럼 바깥 풍경이 보이는 거실의 구석진 자리에 위치한 테이블을 놓으므로서 '윈도우 사이드'를 즐기고 있답니다.
그러고 보니 단조로워서 장식품도 없고 아주 단순한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의도하진 않았지만 '미니멀 라이프'의 형태로 우리의 삶이 흘러가고 있는 듯합니다.
가구들을 사지 않으니 돈이 들지 않고,
공간이 부족하니 식료품과 잡화도 아주 조금씩만 사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각종 채소와 고기도 신선한 것들로만 조금씩만 요리를 하게 되니 더욱 맛있게 느껴지고 버려지는 것이 거의 없어지고 있습니다.
요리한 것들은 작은 용기에 담아서 다음날 도시락에 넣을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 둡니다.
아침에 도시락 가방에 넣어서 가면 점심시간에 살짝 덥혀서 먹기 때문에 맛있게 한 끼를 즐길 수가 있게 됩니다.
매일 달리기를 해서 항상 식욕은 왕성하고 집에서 싸 온 건강한 음식을 먹고 힘을 내서 일을 합니다.
작은 공간에서 서로 양보하며 살다 보니 우리 부부는 어쩐지 사이가 더욱 좋아진 듯합니다.
작은 방에 앉아서 간식을 먹으며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소박한 한 끼 식사도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처럼 맛있게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욱 좋은 것은 소비를 줄임으로써 삶의 만족도가 더욱 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불필요한 것들은 줄이고 정말 써야 할 곳에만 지출을 하게 되니 돈을 쓰면서도 아깝지가 않았습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우리는 이보다도 훨씬 큰집에서 각자의 방과 화장실을 쓰면서 살았습니다.
집에 들어가서는 각자의 공간으로 흩어지고 잠도 따로 자고 밥 먹을 때만 주방에서 만나서 밥을 먹었어죠.
사이가 나쁘거나 싸운 것은 아니에요
자연스럽게 그렇게 할 넉넉한 공간이 있으니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모든 생활 용품은 두 개씩 사야 했죠.
비누, 치약, 침구류 등 여러 가지를요
멜번의 작은 아파트로 옮기면서 물건은 3분의 1로 줄였습니다.
이사올 때 옷을 상자에 나누어 담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옷들 중에서 입는 옷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요
불필요한 옷은 다른 사람이 입을 수 있도록 나누어 주었고 편안하게 자주 입는 옷만 챙겨서 왔습니다.
신기하게도 아무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없어도 잘 살아지는구나!"
그동안 물건에 치여서 사느라 돈들이고 정리하느라 또 돈들이고 버릴 때도 마찬가지로 에너지가 낭비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것이죠.
이제는 거의 옷을 사지 않습니다. 만약에 사게 된다고 해도 멋스러운 것이 아니라 편안하게 나에게 어울리는 옷을 아주 신중하게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화장품도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다만 수분 크림만은 듬뿍 바르고 있습니다.
적게 바르고 그래서 지우는 것에도 최소한의 노력을 들일 수 있도록 말이죠.
작은 집에서 사는 것을 합리화하는 것일까요?
얼마 전 김정운 작가님이 쓰신 자기 만의 공간 '슈필라움'에 대한 책을 읽었습니다.
나의 슈필라움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면서 지내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자유롭게 요리하고 책 보고 글을 쓰고 운동하고 상상하면서 말이죠
나는 작은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당분간은 쭉 이렇게 지낼 것 같습니다]
'오순도순 즐겁게 살았습니다' 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