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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번 일기

날씨는 추워요 그래도 밖으로 나갑니다

by 토마토

이불밖으로 나오기가 어쩐지 싫은 날이 있죠. 그게 바로 오늘 아침입니다. 이불속의 따뜻함이 어찌나 좋은지, 이불의 포근한 감촉이 더욱 그곳을 빠져나오기 싫게 만들더군요.

이쯤에서 생각하는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계속 누워있어야 할 백만 가지 이유를 만들게 될 테니까요.

생각을 멈추고 옷을 주섬주섬 입고는 바깥의 날씨를 확인해 봅니다.

기온은 4도 다행히 비는 오지 않습니다.

가볍게 티셔츠 하나를 더 입고는 운동화를 신고 씩씩하게 바깥세상으로 나갑니다.

오리털로 된 외투를 걸치고 바삐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 사이로 천천히 뛰기 시작합니다.

하나, 둘, 셋, 넷 구령을 혼자 중얼거리면서 말이죠

멜번의 날씨는 시시각각으로 변해서 이곳엔 하루 안에 사계절이 다 존재한다고 표현합니다

이른 아침은 언제나 쌀쌀합니다 그러다가 해가 떠서 대지가 조금씩 덥혀지기 시작하면 반팔에 반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따뜻함을 만끽하며 걷다 보면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할 때도 있고요, 거센 바람에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어요

바람에 온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옷 속으로 찬바람이 사정없이 들어와도 힘들지 않아요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얼굴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바람이 나를 흔들어 깨워주는 요란스러운 친구같이 느껴져요.


내가 달리기를 하는 이유는 단순해지고 싶어서입니다.

아무 생각하지 않고 달리는 순간 온전히 집중해서 달리는 것에만 신경 쓸 수 있어서 그 점이 아주 매력적입니다. 달리면서는 몸의 구석구석을 의식하면서 발이 편안한 상태에서 달리는지, 발목은 괜찮은지, 심장에 무리가 가지 않는지 등을 확인하면서 한발 한발 나아갑니다.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추운 날씨에도 내 몸은 아주 뜨겁게 운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춥지 않아요

얼굴이 빨개지고 호흡이 바빠지고 있죠

가끔씩은 콧물이 죽 흘러내릴 때도 있습니다

비염이 있어서 주로 한쪽 코는 막혀있어서 숨쉬기가 그리 쉽지는 않아요

한쪽 콧구멍은 산소가 반도 못 들어오니까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뛰고 있을 때쯤 숨 쉬는 게 갑자기 시원하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박하사탕을 먹을 것처럼 코와 목을 지나 그 언저리쯤까지 깊은숨이 들어갔다가 나오고 있어요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숨이 잘 쉬어진다는 것 하나에 그저 좋습니다.

비염을 앓고 계신 분들은 아마 아실 거예요

반쪽짜리 호흡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숨 막히는 일인지 말이죠

숨 한번 잘 쉬는 이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아시죠?

이렇게 호흡이 느껴지기 시작하면 달리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양쪽 볼이 빨갛게 달아 올라 가픈숨을 내쉬며 나아가는 사람들

이토록 사람들이 달리기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달리면 힘이 많이 듭니다. 아주 힘들고 가다가 멈추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죠.

숨이 가쁘고 가끔씩은 다리나 배가 아프기도 합니다.

그래도 정해놓은 거리를 완주하려고 노력합니다.

그것을 해냈을 때 성취감을 맛볼 수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의 달리기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돈벌이로 일하는 그 순간들을 덜 힘들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는 거 같아서 그렇습니다.

일하는 게 아주 가볍고 쉽게 느껴지기 때문이죠

심지어는 일하는 게 재미가 있기도 하고요

기분도 좋아진 것 같고, 밥맛도 너무 좋아져서 뭐든지 다 맛있게 잘 먹을 수 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니 안 할 이유가 없는 거 같아서 어김없이 오늘 아침에도 달리기를 합니다.

잘하지는 못합니다

기록도 그다지 좋지는 않고요

그래도 합니다

달리고 숨 쉬고 땀 흘리고....


살아있는 순간까지 놓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달리기

글쓰기

책 읽기

맛있는 음식 먹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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