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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노자 A Sep 30. 2023

나는 일을 잘 못하는 줄 알았는데

누구랑 일하느냐가 그렇게 중요하더라

영국에서 전략 컨설팅 일을 시작한지 이제 공식적으로 1년 반이 되었다! 시간이 진짜로 안가는 줄 알았는데 1년반이나 되었다니.. 나는 아직도 스스로가 신출내기인것 같은데 말이다.


브런치에는 적지 않았지만 사실 일을 하면서 내 스스로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고 '컨설팅이 나와 맞는 일인가?'라는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다. 이전 회사에서 데이터 애널리스트로서 일할 때와는 달리 팀워크가 훨씬 많이 요구됐고 내가 스스로도 확실하지 않은 내용을 남 앞에서 확실성있게 말해야된다는 부담감이 컸다. 


그리고 이건 한국인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직장 동료가 나보다 연차가 높거나 직책이 높으면 무조건 나보다 더 잘아는 줄 알고 있었다. 연차가 더 많은 사람은 내가 기댈 수 있고 정답을 알고 있다고 단정지었다. 그게 지난 1년간 내 발목을 잡은 것 같다. 내가 스스로 결정하기 보다는 '이렇게 해도 될까요?' 라고 항상 질문을 내 상사에게 떠넘겼다. 그러면 상사는 내게 스스로 결정을 할 기회를 주기 보다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들도 본인이 다 떠안고 스스로에게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를 줬다. 아무도 내게 '나도 잘 몰라' 혹은 '이건 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야'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나보다 경험도 많고 연차도 많은 그 사람들은 그냥 정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신입으로서 여러 프로젝트를 그렇게 지나갔다. 2년차로서의 첫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나는 개인적인 이유로 극심한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고 업무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이 프로젝트 이후 처음으로 평균보다 낮은 Performance review를 받게 되었다. '고등학생 이후로 한번도 낮은 성적은 받아본 적이 없는데..'. 자존심에 큰 스크래치가 났다. 처음에는 모든 게 다 내 탓이 아닌 것 같았다. 그냥 다 환경 탓을 했다. '내가 우울했어서 그래', '그래서 내가 집중을 못한거야', '상사는 내가 마음에 안들었으면 진작에 힌트를 주던가 나를 이렇게 배신하다니!'...등등.


프로젝트 이후에도 나에게 낮은 Review를 준 상사하고는 말도 섞기 싫었다. 근데 이 얘기를 친한 동료들한테 얘기하니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좀 더 적극적으로 그 사람의 피드백을 수용하고 너가 더 잘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라고 했다. 처음에는 이런 얘기도 듣기 싫었다. '내가 왜? 난 충분히 잘했다고!' 그냥 컨설팅이 나와는 맞지 않는 거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우울증이 차차 나아지면서 다시 한번 일을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씩 고개를 내밀었다. 이전에 일했던 상사와 커피를 마시며 내가 어떻게 더 발전할 수 있을지 건설적인 피드백을 달라고 요청했다. 상사의 피드백은 5가지로 요약됐다.


1) 내가 하는 일에 주인의식을 갖기 (having an ownership)
2)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being confident)
3) 장애물에 부딪혔을 때는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먼저 고민해보고 팀과 컨펌하기 (finding alternatives)
4) 항상 To-do list를 가지고 주도적으로 그것들을 처리하기 (being oraganised)
5) 상사/매니저보다 내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걸 명심하기 (being an owner of my analysis)


상기의 피드백을 유념해두고 이번 프로젝트는 정말 내가 일을 잘한다는 걸 증명해보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운이 좋게도 지금의 팀을 만났다 (잠깐 부연설명을 하자면 컨설팅은 매 프로젝트가 짧게는 6주 길게는 6개월까지 진행되며 그때마다 팀원들이 계속해서 바뀌게 된다). 이번 팀원들은 전부 여성이었는데다가 나와 성격도 잘맞고 무엇보다 업무 스타일이 잘 맞았다. 중요하지 않은 부분에서 너무 디테일에 파고들기보다 거시적으로 일을 바라보고 열린 마음으로 의견을 받아들이는 업무 스타일.


나와 잘맞는 팀원들을 만나니 팀원들과 진짜 우정을 쌓게 됐다. 팀원들과 우정을 쌓게 되니 내 의견을 말하는 것도 편해졌고 덕분에 컨설팅에서 가장 높은 직책인 파트너들과도 편하게 지내게 되고 나의 의견과 슬라이드를 높은 직책의 사람들에게 발표하는 것도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내게 자신감이 생기니 다른 팀원들도 나를 자연스레 믿게 되었고, 팀원들이 내 의견에 귀를 기울여 주니 일에 재미가 붙어 주도적으로 일을 찾게 되었고, 팀원들을 도와주니 팀원들이 내게 신뢰가 생기고 중요한 일도 마음 편하게 맡기게 되었다. 덕분에 이번 프로젝트 이후로 정말 높은 리뷰를 받게 되었다. 지난번 낮은 점수의 리뷰를 받고 나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마음가짐의 변화 좋은 팀 멤버들이라는 두가지 요소로 인해서 리뷰가 180도 달라진 것이다. 매니저와 파트너가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주니 정말 좋은 결과가 나왔고 컨설팅과 일 자체에 재미가 붙게 됐다.


그동안 나는 나와 다른 업무 스타일의 사람들과 같이 일하면서 그들에게 억지로 맞추려 하고 스스로 섞여들지 못하는 내가 부족한줄만 알았다. 나라는 사람은 똑같은 사람이고 똑같은 능력을 가졌지만 어떤 상사가 나를 매니징하느냐에 따라 내 잠재력은 0부터 100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걸 깨달았다. 어떤 업무스타일의 옳고 그름은 없지만 나와 같은 혹은 비슷한 업무스타일의 사람을 찾는 것 혹은 시너지가 발생할 수 있는 팀원들과 함께 일하는 것의 중요성 말이다.


혹여나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거나 자신의 가치를 다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직장인들은 팀을 변경하거나 팀원 다이내믹을 환기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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