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야 이 여행이 오랫동안 기억날까요
20살때부터 약 30개국 이상 여행을 다녔다. 어렸을 때는 여행 그 자체가 날 설레게 했다. 평생을 한국에서 자라 온 내게 다른 문화와 새로운 풍경은 20살 여자 아이의 가슴을 콩닥거리게 하기 충분했다. 첫 연애를 스페인 교환학생 도중 만난 오스트리아 친구와 국제 연애를 하게 되었고 덕분에 더 많은 여행 경험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나이를 먹자 거짓말 같이 여행으로부터 오는 설렘이 사라졌다. 직장인이 되면서부터는 '여행'과 '소비'가 동시에 떠오르게 되었고 자연스레 소비를 줄이고자 여행도 피하게 되었다. 그리고 안가본 대륙이 없다보니 새로운 풍경을 봐도 좋은 음식을 먹어도 전과는 다른 흥분과 설렘을 느끼기가 힘들어졌다. 그 이후로는 여행이라고 해봤자 짧은 영국 국내 여행이나 회사 출장 및 연수가 전부였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대학시절 가장 친했던 동기들과 이번 6월 약 10일간의 이탈리아 여행을 가게 되었다. 역시나 내가 계획했다기보다는 친구가 밀어붙인 계획에 얼렁뚱땅 오케이를 외치게 되었다. 사실 먼 한국에서부터 유럽까지 나와 여행하러 와주는 친구들에게 그저 고마운 마음으로 그러자고 했던 것 같다. 막상 여행 날짜가 다가오고 호텔과 비행기 티켓 등을 결제하다보니 돈도 많이 들고 '에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냥 집에서 눈감고 쉬고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부터 날아오는 3명의 친구들과의 여행을 절대 취소할 생각은 없었고, 대충 큰 캐리어에 생각없이 짐을 때려놓고 친구들과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전부터 여행의 진리라고 생각한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을 계기로 이 믿음은 더욱 확고해졌다.
아, 물론 배낭여행은 말이 다르다. 22살 시절 중남미를 혼자 배낭여행 했을 때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친구를 사겼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애인까지 만들었었다. 아직 에너지가 충분한 나이라면 그리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면 홀로하는 배낭여행을 강력추천한다.
잠깐 말이 딴길로 샜지만 요점은 여행 경험이 조금 쌓이다보면 사실 여행지 그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단 내가 어떤 '질'의 경험을 하느냐가 더 중요해진다는 건데 그때 이 여행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것은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이다.
정말 많은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여행 파트너를 경험했는데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리고 나를 소중하게 대해주는 사람과 하는 여행은 마음이 여유롭고 무슨 경험을 하든 각별했다. 버스를 놓치고 박물관이 휴관하고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도 내 옆에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모든 순간이 추억이 됐다. 서로 최악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이 후에 같이 깔깔거릴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과 하는 여행은 어딜 가도 성공이었다.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제로인 채로 시작했지만 서로를 존중하는 친구들끼리 하는 여행은 그 어느때보다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소나기때문에 온 몸이 젖어보고 너무 더워서 말을 잃어도 보고 새벽부터 일어나 박물관으로 달려가는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그들과 함께하니 이 힘듦도 다 추억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 여행 이후로 갑자기 여행에 대한 열정이 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사실 우울증을 오랜 기간 앓고 있는데 상담사가 항상 해주는 얘기는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하루하루 느끼는 사소한 감정이라는 것이다. 여행은 매일 매일 내게 사소한 행복을 선사한다. 365일 행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여행의 경험은 그리고 소중한 사람과의 시간은 내게 그 행복을 더 자주 선사하는 것 같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나요?"라고 많은 사람들이 물어보지만 여행에 쓰는 돈은 정말 어쩌면 행복을 사주는 것 같다.
한국에서도 코로나가 지나가고 여권 발급이 지연될만큼 많은 여행객들이 해외로 나가고 있다. 모두가 어려운 시간을 내서 그리고 힘들게 모은 돈을 쓰는 여행인 만큼 소중한 사람과 각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