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혹을 넘어 부르심을 따라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예수가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향한 곳은 광야다. 아무도 없는 척박한 그곳에서 예수는 40일 동안 금식하며 악마의 유혹을 받는다. 복음서(마태 4, 1-11; 마르 1, 12-13; 루카 4, 1-13)는 이 내용을 조금씩 다르게 이야기하지만, 공통적으로 예수가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향했다고 말한다. 육신의 몸으로 온 예수는 미션을 실현하기에 앞서 고독과 절제 속에서의 시험을 거쳐야 했던 것이다. 이 내용은 인기 있는 주제는 아니었지만, 보통 유혹이 구체적으로 묘사된 것과 광야에서 고뇌하는 예수라는 두 유형으로 나타난다.
베네치아에 있는 산 마르코 성당의 모자이크는 악마의 세 가지 유혹을 모두 보여준다. 날개와 뿔이 달린 검은 몸의 악마는 오래 굶주린 예수에게 돌을 빵으로 바꾸어 보라고 내민다. 다음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천사가 보호해 줄 터이니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고, 마지막으로 자기에게 경배하면 세상의 모든 나라와 영광을 주겠다고 유혹한다. 예수가 계속 손에 쥐고 있는 두루마리는 유혹을 이기게 한 말씀을 상징한다. 악마는 줄행랑을 치고, 천사들이 예수에게 다가와 시중을 든다.
유혹을 구체적으로 그린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14세기 초 두치오(Duccio di Buoninsegna, 1255?~1318?)의 작은 패널화다. 이것은 시에나 대성당을 위한 제단화 <마에스타>의 뒷면에 예수의 생애를 구성한 장면 중에 하나다. 이때까지도 사탄은 날개 달린 무시무시한 괴물 형상으로 등장한다. 사탄은 자신에게 경배하면 아래 화려한 도성들이 의미하는 세상의 모든 나라와 영광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돌산 위에 선 예수는 단호한 얼굴과 몸짓으로 말한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마태 4, 10) 하늘은 금색이고 배경과 인물의 크기도 제멋대로이지만, 성화는 성경의 이야기를 단순하고 분명하게 전달한다.
베네치아 르네상스의 대가 티치아노(Tiziano Vecellio, 1490~1576)의 작품은 제목을 보지 않으면 그 내용을 예상하기 어렵다. 왼편에 소년의 모습을 한 악마는 배고픈 예수에게 돌을 내밀며 빵으로 바꾸어보라고 유혹한다. 한 손을 가슴에 댄 예수는 차분하게 말한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 4)
이 작품은 이콘화처럼 어둠 속에서 예수의 정면상을 담았다. 반짝이는 후광은 유혹을 능히 이기는 성령의 능력을 드러낸다. 광야에서 고행하는 모습이라기에는 무척 세련되고 평온해 보이는데, 르네상스 시대에 예수는 이처럼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표현되었다. 유혹자를 아이로 그린 것도 흥미롭다. 악마는 기괴한 형상의 괴물이 아니라 도처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일까. 게다가 악은 우리 마음속에 본능을 통제하기 어려운 유아적 욕구이기도 하다.
우리도 일상에서 예수가 겪은 유혹들을 종종 만난다. 특히 육체적인 욕구에 가장 쉽게, 자주 넘어지곤 한다.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더 많은 소유와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는 욕망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 그림은 그런 우리에게 의연한 예수의 모습을 본받으라 말한다.
이탈리아의 화가 모레토 다 브레시아(Moretto da Brescia, 1498~1554)는 독특하게 들짐승들과 함께 있는 광야의 예수를 그렸다. 사자와 여우, 온갖 새들과 알 수 없는 동물들이 예수를 둘러싸고 그에게 경배한다. 특히 앞다리를 꿇은 수사슴은 시편에서 하느님을 찾는 영혼에 비유되는 동물이다. 하늘에는 아기 천사들이 예수 주변을 맴돈다. 화가는 광야에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다는 마르코 복음서(1, 13)를 따라 묘사했다.
이 작품은 광야의 척박함도, 유혹의 고뇌도 드러나지 않는다. 동물들의 경배와 천사들의 보호 속에서 신성을 가진 예수의 위엄이 전해진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턱을 괘고 앉은 예수는 고요히 사색에 잠겨 있다. 이 화가가 그린 귀족들의 초상화를 보면 모델이 이처럼 턱을 괘고 자기 성찰에 빠져있거나 애수 어린 표정을 한 경우가 많다. 평화로운 자연을 감상하며 묵상을 이끄는 이 그림은 그런 주문자를 여러모로 만족시켰을 것이다.
러시아의 화가 이반 크람스코이(Ivan Kramskoi, 1837~1887)는 이천 년 전 중동의 척박한 광야를 걸었던 예수를 현실적으로 살려냈다. 동이 트는 새벽, 예수는 두 손의 깍지를 낀 채 돌 위에 앉아 있다. 풀 한 포기 없는 돌무지 광야에선 한기가 전해지고, 전경의 작은 돌들은 악마의 첫 번째 유혹을 떠올리게 한다. 예수는 오랫동안 먹지도 씻지도 못한 모습이다. 비쩍 마른 얼굴과 잠 못 이뤄 퀭한 눈, 밤새 절박하게 기도했을 앙상한 손과 상처 난 더러운 발까지, 긴 시간 겪은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뇌가 드러나있다. 흔들리는 붓질에선 오랜 분투의 떨림까지 느껴진다.
구체제의 폐해가 가시화되고 변혁의 바람이 스며들던 19세기 후반, 크람스코이는 반체제적인 리더십으로 러시아 미술의 정체성을 구축한 핵심 인물이다. 그는 황제의 업적을 주제로 졸업 작품을 제출하라는 아카데미의 요구를 거부하고 1863년 동료들과 아카데미를 떠나 예술가 조직을 결성하며 공동체 생활을 이끌었다. 1870년에 비평가 스타소프와 ‘이동파(移動派, the Wanderers)’를 창립해 일리야 레핀, 바실리 수리코프 등 쟁쟁한 화가들과 함께 여러 도시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예술을 통한 대중의 교화를 목표로 삼았던 이동파 화가들은 민중의 삶과 사회적 이슈를 이해하기 쉬운 사실주의 언어로 표현했다. 위에 미화되지 않은 예수의 모습은 삶의 진실을 담아내려 했던 러시아 미술의 전통과도 맞닿아 있다.
자기만의 길을 개척해 나간 크람스코이가 진취적인 여정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예수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이 작품에서 예수의 처절한 고뇌는 욕망과의 투쟁을 넘어 앞으로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해 거쳐야 할 수난도 암시한다. 크람스코이는 고뇌하는 예수의 모습에서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과 도덕적 의무를 고민했던 자신을 바라보기도 했다.
<광야의 그리스도>는 예수를 제대로 재현하려는 화가의 열정으로 십여 년의 연구 끝에 완성되었다. 서유럽을 돌며 대가들이 작품을 연구했는데, 이탈리아 귀족처럼 보이는 예수는 그의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팔레스타인과 가까운 크림 반도에서 크람스코이는 밤낮으로 광야를 걸으며 그 풍경과 감정을 연구했다. 그가 눈물과 피로 그렸다고 말한 이 작품은 몇 년의 탐구와 고통의 결과였다. 고뇌와 불안으로 얼룩진 인간적인 예수의 모습은 이동파 전시에서 일약 스캔들을 일으켰다. 그 가치를 알아본 러시아의 유명한 컬렉터 트레티야코프는 전시장에서 작품을 바로 구입했다. 크람스코이가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던 대문호 톨스토이는 ‘내가 본 그리스도 중 최고’라는 찬사를 바쳤다.
영국의 화가 브리튼 리비에르(Briton Rivere, 1840~1920)는 앞의 작품과 다르게 서정적인 수사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예수는 고개를 숙이고 축 늘어진 채로 언덕에 앉아 있다. 어두운 돌과 노랗게 물든 하늘로 인해 하얀 옷차림의 예수가 더 돋보인다. 왼쪽 하단에는 희미하게 여우 한 마리가, 저 먼 하늘에는 날고 있는 한 마리 새가 보인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마태 8, 20) 두 모티프는 말씀처럼 쉴 곳 없는 예수의 힘겨운 처지를 강조한다. 머리 위에 반짝이는 샛별, 즉 루시퍼(Lucifer, 빛을 지닌 자)는 추방된 천사인 악마를 의미하기도 한다. 예수의 머리 위에서 속삭이는 별로 악마의 현존이 암시된 것일까. 지평선에서 떠오르는 해는 곧 이 별을 삼키고,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는 구원자로서의 소명을 시작할 것이다.
20세기 영국의 화가 스탠리 스펜서(Stanley Spencer, 1891~1959)는 매우 독특한 ‘광야의 그리스도’ 시리즈(1939~54)를 남겼다. 원래 그는 광야에서의 40일을 담아낸 40점을 계획했지만 띄엄띄엄 작업하다 8점 만을 완성했다. 정사각형의 캔버스를 꽉 채운 예수는 둥글둥글한 얼굴과 몸, 덥수룩한 수염과 머리의 수수한 중년의 사내다. 예수는 꽃을 돌보거나 동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자연 속에서 살아간다.
차례로 살펴보자. 성령에 이끌려 광야를 방랑하는 예수는 마치 숲 속의 야인처럼 보인다. 들에 핀 백합을 바라보는 푸근한 장면에서는 그 말씀이 떠오를 것이다. “들에 핀 나리꽃(백합화)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마태 6, 28-29) 몸으로 둘러싸고 예수가 바라보는 암탉과 병아리는 하느님의 돌보심과 사랑을 느끼게 해 준다. 굴 속의 여우가 등장하는 장면은 언급했듯이 편히 쉴 곳 없는 예수의 고난을 암시한다. 가장 인상적인 마지막 장면에서 예수는 자갈밭에 주저앉아 손바닥에 작은 전갈을 올려놓고 바라본다. 독침을 가진 전갈은 악독한 힘과 함께 악마 혹은 유혹을 상징한다. 그것을 바라보는 예수의 눈빛이 왜 어둡고 힘에 겨운지 이해할 수 있다.
스펜서는 왜 성경의 맥락에서 벗어나 자연과 교감하는 예수를 그린 것일까? 40점이 다 완성되었다면 어떤 장면들일까도 궁금하다. 영국 버크셔 주 쿠컴(Cookham) 출신의 스펜서는 위의 그림들처럼 독특한 작품 세계를 보여준 화가다. 성경과 전쟁, 가정, 풍경과 주변 인물, 성(sexuality)에 이르기까지 관심사의 폭이 넓고, 정밀한 사실주의에서부터 소박한 양식에 이르기까지 형식도 다양하다. 고향을 사랑해 대부분의 작품이 고향 쿠컴을 배경으로 하는데, 성서화도 일상의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그리거나 위의 작품처럼 동화 같은 상상력을 발휘했다. 그는 세부가 묘사되지 않은 성경의 이야기에 매력을 느꼈고, 상상을 통해 그 모습을 채워가는 것을 즐겼다.
광야의 그리스도 연작은 그의 사생활과도 연관된다. 이 작업을 시작하기 일 년 전 47세의 스펜서는 그가 사랑하는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첫 부인과 이혼하고 두 번째 부인에게 집을 넘겼는데, 그녀가 떠나고 세를 놓으면서 그야말로 집 없는 신세가 된 것이다. 런던에 작은 아파트에서 홀로 분투하던 시기, 스펜서는 자연스럽게 광야의 예수 주제에 이끌렸다. 그는 의자와 침대, 책상이 놓인 방 안에서 헤매는 자신처럼, 나무와 돌, 동물들과 함께 지내는 예수의 하루하루, 그 모험을 상상했다. 당시 스펜서가 읽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1854)에서 자연에서 홀로 지내는 삶의 가능성에 영감을 받은 것으로도 지적된다.
스펜서의 그림은 걸작은 아니지만 무시할 수 없는 부분도 깨닫게 해 준다. 성령이 인도한 광야는 마냥 외롭고 배고프고 척박한 고통의 관문일까. 짧지 않은 삶을 살면서 광야라는 고통의 시공간이 나를 성장시켰다는 것을 깨닫는다. 광야는 고독하지만 하느님이 창조한 세계 속에서의 고요한 영적 여행을 선물한다. 그것은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며 깊이 발견하는 기회인 동시에 하느님과 얼굴을 마주하며 온전히 의지할 수 있는 은총의 공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