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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연희 May 30. 2024

박노해, <사랑이 일하게 하라>

: 날 쏴라, 사랑의 총성이여


내가 시를 읽고 그것에 대해 쓴다는 것은 여간 어색한 일이 아니다. 대학 졸업할 때까지도 책을 가까이해 본 적이 별로 없고 탕자처럼 지냈던 시간들에서 남은 기억들이라곤 어둠의 광경이 대부분이다. 그래서일까, 최근에 우연히 접하거나 브런치 이웃분들이 들려주는 시에 어린아이 마냥 푹 빠지곤 한다. 마음이 살랑살랑하고 가물가물해지는 그때, '단순한 진심'에게서 구입해 북바인딩한 예쁜 노트(이제 보니 앞표지에 나무 두 그루 수를 놓았네!)에 그 시를 한 자 한자 적어 내려 간다.


최근에 <나무를 노래한 화가들>을 주제로 한 강의 프로그램을 지원사업에 제출하고, 내 마음은 부유하듯 글쓰기에 집중하지 못했다. 안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은 발표 후에 세 군데서 내가 강의를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으로 번져갔다. 익숙한 사람과 공간이 아닌 곳에서 오랜만에 긴 템포로 강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왔고, 갑자기 글쓰기도 의무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하루 이틀 쓰지 않고 보내자, 오히려 안 쓰는 것이 나를 더 괴롭혔다.  


어제 박노해 시인의 <사랑이 일하게 하라>를 펼쳐 읽다가, 사랑의 총성이 나의 가슴을 관통하는 듯한 순간을 맛보았다. 갑자기 맘 속에서 두려움과 불신, 의무감들이 산산조각 나고 내 안에 빛이, 사랑이 조금씩 차올랐다. 말이든 글이든, 강의든 책이든, 근원으로 돌아가면 된다. 왜 내가 이 일을 시작했는가.    



일을 사랑하지 말고

사랑이 일하게 하라


사랑은 도구가 아니고

내가 사랑의 도구이니


사랑의 일로 상처 난

그 마음을 바쳐라


만일 내가

사랑을 가두거나

사랑에 갇힌다면


그땐 날 쏴라

사랑의 총성이여


나는 해낼 것인가

사랑이 해낼 것이다


일을 사랑하지 말고

사랑이 일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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