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
흰머리가 늦게 난 친가의 유전자가 셀 것이라는 나의 막연한 기대감 때문인지 흰머리가 늦게 생길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더 이상 생일까지 따져도 마흔 살이 훌쩍 넘어서인지 40대가 되고 나서 검은 머리가 흰머리로 바뀌는 시간이 찾아왔다. 회사 스트레스 때문인 건지 나이 탓인지 그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잔머리가 늘 많아서 싫었는데 잔머리가 많은 양 옆의 앞쪽이 흰머리가 되는 속도가 빨랐다. 흑단같이 검은 머리도 아니거니와 잔머리 쪽은 특히나 노란빛을 많이 띠는 머리라 처음엔 흰머리인지 잔머리가 좀 더 밝아진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지만 이젠 너무나 흰머리가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처음에는 신경이 쓰여 두어 번 염색을 했다. 평소에도 미용실에 잘 가지 않던 내가 뿌리염색을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미용실을 가는 것은 너무나 귀찮고도 힘든 일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어릴 적 내가 다짐했던 것이 떠올랐다. 흰머리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겠노라.라고. 물론 쉽지 않은 마음이었지만 나의 게으름이 나의 과거의 다짐을 지지했고 나는 흰머리가 많은 채로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
오늘 오전 머리를 감고 말리면서 떨어진 머리카락을 치우면서 흰머리도 한두 가닥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쩌다 한 두 개 올라온 흰머리가 아니라는 뜻임을 알았다. 머리를 감을 때 후드득 떨어지는 머리카락이 점점 색이 바뀌어 가겠구나 하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울컥해졌다. 다시 염색을 해볼까? 하고 생각을 했지만 이내 나의 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마음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내 게으름 때문 에라도 오래가겠지?
흰머리를 주우며 차가운 가을바람에 또 한 번 마음이 허전해지는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