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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차 Jul 03. 2023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아빠의 탄생의 비밀

한예리 배우님을 굉장히 좋아하는 나는 가능한 그녀의 작품을 챙겨보려 노력하는 편이다. 2020년 tvN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가 나왔을 때 보고 싶었는데 집에 TV가 없는 나는 OTT가 아니면 볼 수가 없었다. 아쉽지만 언젠가는 OTT에 올라올 때를 기다렸고 뒤늦게 드라마를 정주행 했다. 

내가 봤을 때보다 훨씬 일찍 올라오긴 했지만,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아끼는 건 아껴뒀다 나중에 먹고 싶고 보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나? 나는 그렇다.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에 있는 시리즈나 영화들 중에서 아끼고 아끼는 작품들이 있다. 언젠가 딱! 그 작품을 보고 싶을 때 봐야지 하는? 이 드라마가 나에게는 그런 드라마였다. 이 가족은 서로 얼마나 모르고 있었던 걸까? 긴 세월을 오해로 사이가 멀어졌고 가족이라 오히려 얘기 못한 비밀들을 쌓아 놓고 살고 있었고 그런 오해와 비밀들이 쌓이고 쌓여 멀어진 관계들을 다시 회복하는데 큰 고통을 인내해야 했다. 물론 그동안 쌓인 두터운 오해에 그 긴 세월 마음 아파하고 미워하며 살았던 시간을 아까워하는 것 또한 무조건 따라올 수밖에 없는 부작용이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누구보다 가까운 게 가족이지만 어쩌면 누구보다 먼 관계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가족을 믿으며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하는 드라마였달까?


우리 가족, 아니 나에게도 가족에 대한 오해가 있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던 나의 부모님들은 아무래도 집에 어른이 계셨기에 뭐든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내가 커서 어른이 되어보니, 성인이 된 나이에 부모와 함께 산다는 것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내 남편의 부모라는 이유로 모셔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것을 참고 큰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물론 조부모와 함께 대가족을 이루어 살던 어린 시적의 나는 마냥 좋았다. 친구들 집에는 없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었으니까. 엄마의 고통은 십분 이해가 되고, 아빠의 고통도 성인이 된 나는 이해가 된다. 내 부모와 함께 산다면? 나는 할 수 없다. 오랫동안 가족들을 떠나 혼자 산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아빠가 가장 인내해야 했던 것은 그 당시 흡연자였던 아빠는 할아버지 앞에서는 절대 담배를 피울 수 없었으며, 회식 등의 이유로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집 대문 앞에서는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들어와야 했다. 아빠의 엄마였던 나의 할머니는 자식 사랑이 유독 넘치시는 분이었는데 할머니만 슬며시 방에서 나와 안방으로 들어가 아빠의 상태를 살폈고 아빠는 자는 우리 모두를 깨워 뽀뽀를 시켰다. 이건  성인이 된 지금도 이해 못 할 아빠의 주사. 술에 취한 아빠는 할머니에게 꼭 했던 얘기가 있다. 그것은 바로 "엄마는 내 친엄마가 아니잖아. 엄마는 영철이 엄마잖아."였다. 아...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었던 나는 어렴풋이 알았다. 나를 세상 누구보다 사랑해 주는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이라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나의 아빠는 할머니가 낳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아빠의 주사를 통해 알았다. 할머니가 키워준 나는 이 사실들이 너무나 혼란스러웠고 아빠가 술을 마시고 온 날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우리 할머니가 진짜 내 할머니가 아닌 건가?라는 괴로운 생각에 빠져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누가 봐도 우리 아빠와 작은 아빠는 쌍둥이처럼 닮아 보였다. 그리고 그 유전자는 모두 할머니에게서 온 것이리라. 키가 185cm가 넘었던 우리 할아버지와 달리 할머니키는 150cm가 채 되지 않는 작은 키에 동글동글한 얼굴이었다. 아빠와 작은 아빠 모두 동글동글한 얼굴에 키는 172cm 정도로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도 나는 생각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우리 할머니와 아빠의 닮은 점을 내가 이렇게 필사적으로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나의 진짜 할머니이고 싶어서 혼자 닮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 할머니 대단하다. 낳지 않고 키운 아들을 저렇게 우쭈쭈 키울 수 있다니 존경스럽다. 오만 생각들을 했다. 


아빠의 탄생의 비밀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풀렸다. 그동안은 그 누구에게도 키워준 할머니가 내가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실 것 같아 입 밖으로 절대 꺼내지 않았던 아빠의 친엄마 얘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시간이 조금 흘렀을 때 엄마에게 이젠 진실을 말할 때가 된 것 같다고 아빠의 친엄마는 누구냐고 어떤 분인지 엄마는 들은 얘기가 있냐고 물었다. 엄마는 적잖이 놀란 표정이었다. 그럼 그렇지 내가 이 사실을 안다는 것을 엄마는 짐작도 못했겠지?라고 생각했을 때 엄마는 도대체 무슨 허무맹랑한 소리냐고 했다. 아빠가 술만 마시면 할머니한테 그러지 않았냐고 우리 엄마 아니라는 말..이라고 했을 때, 엄마는 진짜 뒤로 넘어갈 듯 기절하며 웃었다. 역시 너희 아빠는 안 되겠다며 애들 앞에서 이상한 소리를 해서 이게 뭐냐며. 진실은 이랬다. 아빠는 내가 봤을 때뿐만 아니라 그 누가 봐도 작은 아빠랑 쌍둥이처럼 닮았으며 우리 할머니가 낳은 친 아들이 맞으며 "우리 엄마 아니야!" 라며 투정 부리던 것은 아빠의 애교였다는 것. 엄마는 그럼 그동안 계속 혼자 그렇게 생각한 거냐며 진짜 기절하듯 웃었다. 그럼 할아버지의 첫 번째 부인은 누구냐고 물었을 때 엄마가 알려준 내용은 할아버지가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별하시고 몇 년 뒤에 할머니와 재혼을 하신 거라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차례를 지낼 때 함께 지내는 거라고 했다. 내가 아는 것은 맞는 것도 조금 있었다. 아빠의 탄생의 비밀이자 우리 가족의 비밀은 내 나이 스물아홉이 되었을 때 거의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서야 풀렸다. 물론 이런 오해는 나만 하고 있었다. 남동생들은 저런 얘기는 기억도 하지 못할뿐더러 누가 봐도 할머니의 유전자가 너무 강력하게 나타난 아빠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내가 바보라고 했다. 진작 물어볼 것을.. 그랬더라면 괴로운 밤이 이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나의 오해가 진실이었다고 해도 할머니가 나를 사랑해 준 크기와 내가 할머니를 사랑한 크기는 변함없었을 것이다. 다만 나는 좀 더 홀가분했겠지. 다른 오해가 켜켜이 쌓이기 전에 자주자주 훌훌 털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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