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한 시절은 언제든 다시 찾아오는 것을 느끼는 스물다섯의 8월을 보내고 있다. 2년 만에 찾아와 익숙하지도 새롭지도 않은 그 시절 속에서 윤은 생존해 있지만, 어딘가 죽은 사람 같은 날들을 보낸다. 나의 일부가 그냥 죽어버린 것 같다는 감각. 이게 싫어서 자꾸 살아있음을 느끼려고 윤이 하는 일은 수련과 걷기이다. 집 앞의 작은 요가원에서 주 4회권을 1달씩 끊지만, 3주면 수강권은 동나버린다. 숨이 서서히 차오르고 땀 없는 체질이라 보기 힘든 구슬구슬 땀방울도 흘러내린다. 그 틈을 비집고 피어오르는 불길한 상상들. 너무나 현실적이라서 무서워지는 상상들 속에서 나는 몸을 일으키고 비틀며 굽히고 들어 올린다. 수련의 후반부로 갈수록 깊어지는 아사나들 뒤로 구루가 안내하는 사바아사나는 꼭 한 생이 저물고 난 뒤 편안하게 눕는 모든 인간을 떠오르게 한다. 3-4주에 한번 수련비로 지불하는 22만 원이 반복적으로 윤을 살려내는 것을 보면 돈은 분명히 중요하다. 수련 전후로는 경춘선 숲길과 중랑천을 걷는다. 뛰거나 걸었던 이 같은 길 위에 미처 다 크지 못한 윤도 그대로 걷고 있는 게 왜인지 생경하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중랑천과 당현천이 교차하는 세 갈래로 나뉘는 길이 있다. 그 길에 놓인 벤치들에는 어르신들이 익숙한 듯 앉거나 누워계신다. 그들의 시간과 윤의 시간은 어떻게 다를까? 시간이 정말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24시간 주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는 돈이 있지만 다른 누구는 돈이 없거나 부양할 인간이 있거나 장애가 있거나 아이를 키우기 때문이다. 적은 시간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제 시간을 꼭 가질 수 있는 그 세상을 향해 우리는 나아가고 있을까를 묻는다면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어떤 여자들의 문제는 문제화되지만 어떤 여자들의 문제는 낙인찍히며 끝나는 예를 들 수 있다. 어떤 개들은 존중받지만 어떤 개는 툭하면 버려지고 맞다가 죽으며 생식 활동을 강요받는 것, 착취는 대개 귀여운 이미지로 잔인함을 감추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여전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으니 우린 부동의 사회에 머무르지는 않는다. 후퇴에도 속도가 있는 법 - 지구는 그들 덕에 조금은 천천히 망해가고 있다.
8월의 어느 일요일 오전에는 하타 집중 수련을 마치고, 특별활동으로 사과와 한강 수영장에 갔다. 맛대가리 없는 비싼 수영장 음식을 주문해 두고 대부분 먹지 못하고 남겼다. 벌레와 먼지와 나뭇가지가 둥둥 떠다니는 물속에서 우리는 헤엄을 쳤다. 사과는 물안경과 수모를 준비해 와서 진지하게 임했고 윤은 강아지처럼 우습게 헤엄을 쳤다. 윤이 어릴 적 아버지와 했던 거북이 놀이를 사과가 해줬다. 이때 거북이 놀이란, 한 사람은 기어가는 자세로 물속에 가라앉아있고, 한 사람은 그 위를 의기양양하게 타서 물속에서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롤플레잉이다. 거북이 놀이를 열 번쯤 했을 때 사과는 거북이 역할에 능숙해졌고 나는 이걸 함께해 주는 사과에게 다시 한번 반했다. 한강 수영장에서는 정책 상 45분 물놀이 뒤에 15분의 쉬는 시간이 주어진다. 안전 상의 이유라고 한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쉬는 시간 동안 우리는 돗자리 위에서 태닝오일을 꼼꼼히 바른 두 몸을 태양 아래에 나란히 두고 구웠다. 윤은 선잠에 들었고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햇빛을 등지며 책을 읽고 있는 사과의 모습이었다. 그때 내 시야에는 상의를 탈의한 채 본인의 연구 관련한 책을 읽고 있는 사과가 가득 찼다. 사과와 강하게 내리쬐는 햇빛 말고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게 꼭 이방인을 상상케 했다. 사과가 좋아하는 카뮈와 사과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흥미로운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