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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아이 Jan 07. 2022

어떻게 살 것인가

“여보세요? 책임님, 지난주에 말씀드린 프로그램 적용 건 언제쯤 결정 나나요?


“어 C선임~~ 그거 지금 아직 고객 리뷰 중에 있어. 아마 다음 주쯤 되어야지 결정 나지 싶은데..”


.

.


그날은 여느 일상과 같이 치열하고 각박한 온기가 자리 잡은 목요일이었다. 경쟁사의 부재로 일이 한껏 더 많아져 행복한 우리의 조물주 회사님과는 반대로, 나는 새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와 현재, 그리고 과거에 했던 프로젝트까지 몸담게 되며 일주일 내내 바쁜 일상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하.. 갑자기 왜 안되지”


프로젝트 3개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도 참으로 성가신 일인데 그 와중에 같은 프로젝트를 맡은 리더급 선임이 10일간의 거룩한 해외 여행길에 올랐기에 일이 뜻대로 잘 풀릴 리 없었다.


이런 나의 날 선 마음의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이러다 진짜 이 세상의 병이란 병은 다 내 몸으로 인수 합병되겠다 싶어 얼른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뚜루루루루… 여보세요? 연주암입니다.”


“안녕하세요, 저 혹시 이번 주 토요일에 템플스테이 자리가 하나 남아있을까요?


“음.. 잠시만요 끊지 말고 기다려보세요 제가 바로 확인해볼게요.”


1분 정도 지났을까. 수화기 너머로 다시 말소리가 들려왔다.


“가능하겠어요. 남자 한분 맞으시죠?”


“네, 맞아요. 확인 감사합니다. 그럼 그렇게 예약 진행해 주세요.”


지난 6개월 동안 일적으로나 삶에 대해서나, 마음적으로 지칠 때 문득 생각만 하고 넘겨버린 템플스테이였다.

그때는 뭐가 그리 어려웠던지 전화 한 통이면 될 이 쉬운 일을 그토록 길게 끌어왔나 싶어 멋쩍은 웃음이 나왔다.


[토요일 오전 9:00]

1분 간격으로 맞춰놓은 부지런한 알람이 고막을 드럼 삼아 두드렸다. 눈을 감은 채 휴대폰을 더듬어가며 입을 틀어막길 십 여분. 더 늦으면 안 되겠다 싶어 우렁찬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어제 준비하지 못한 짐 가지들을 큰 배낭에 쑤셔 넣었다. 대충 짐을 싸고 거울을 보았는데, 머리 위엔 아프리카 독수리도 넉넉히 품을 정도의 큰 둥지가 나를 반겼고 얼른 해체 공사를 하러 욕실로 뛰어 들어갔다.



[오후 1:30]

초행길에 대한 작은 긴장감 때문일까, 탑승지에 30분 일찍 도착하게 됐다. 평소 KBS 송신국 직원과 사찰 관계자 외의 일반인 사용이 금지되어 있는 이곳은 큰 철제문으로 나름의 철통 보안 속에 감싸져 있었다. 사무실에는 삼촌정도 되어 보이는 직원 한 분이 계셨고, 그분은 쭈볏쭈볏 어색하게 서있는 나에게 기분 좋은 인사로 맞이해주셨다.


“어이~ 안녕하세요~ 템플스테이? 혼자 오셨나 보네. 1시 50분 이후에 올라오면 돼요~”


“네 알겠습니다~”


그는 나의 짧은 대답을 듣고 조용히 사무실로 돌아갔다. 역설적이게도 사회생활 시작을 기점으로 붙임성과 말주변이 급속도로 퇴화된 내게 말을 더 걸지 않아 주는 것은 큰 고마움으로 다가왔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철제문이 철컹하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여자 한 분이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템플스테인가?”


긴 머리에 에코백을 들고 있던, 누가 봐도 사찰 직원처럼은 보이지 않는 그녀를 보니 혼자 온 사람이 나 하나는 아닌 거 같아 안심이 되었다.


케이블카 운행시간이 다 되어 간단한 명부 작성을 끝마친 뒤 출발하길 기다리고 있을 때 그녀가 먼저 말을 건넸다.


“템플스테이 하러 오셨어요?”

“네. 그쪽도 템플스테이 하러 오신 거 아녜요?”

“네 맞아요”


짧은 대화 후 어색한 기류가 흐를 때 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웃음기 가득한 친구 둘, 그 자체만으로도 예뻐 보이는 모녀 두 쌍, 설렘 가득한 커플, 그리고 인싸 기질이 다분해 보이는 여성 한 분까지.. 그렇게 9명의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있을 사람들과의 템플스테이가 시작되었다.



사찰에는 늦가을 정취를 온몸으로 담으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사람들이 내는 백색소음, 잔잔하고 맑게 울려 퍼지는 목탁소리를 눈감고 듣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템플스테이는 크게 체험형, 휴식형 두 가지로 진행된다고 알고 있었으나 실제론 이런 구분 없이 하나의 통합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처음엔 휴식하러 왔는데 체험이 웬 말인가 싶었지만 “이 또한 경험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경건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프로그램 순서 첫 번째로 간단한 오리엔테이션과 자기소개가 진행되었다. 다들 나처럼 심신이 지쳐 이곳을 찾아왔을 거라는 나의 짧은 생각과는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큰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 전 잠깐의 휴식처, 혹은 목표를 향해 더 견고하고 강인한 마음가짐을 수양하기 위한 곳 정도로 생각하고 찾아온 듯 보였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 역시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삶을 살아왔고 또 더 큰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지침이 역력한 요즘 내 낯빛과는 달리 그들의 얼굴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마음가짐의 차이인 건가?”


이후 스님의 귀한 말씀과 연주암의 역사를 알아보는 시간이 있었지만 한동안 생각에 잠겨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오후 5:00]

기다리던 저녁 공양시간이 찾아왔다. 혼자 밥 먹는 것에 거부감이 없는 나지만 다들 짝지어 먹는 분위기가 내심 좋아 보였는데 때마침 핵인싸 같은 여성 분이 아나운서 뺨치는 목소리로 말을 건네 왔다.


“91년생이라고요?”


중저음의 신뢰가는 목소리를 가진 그녀는 목소리와는 다르게 얼굴에서 유쾌함이 묻어났고, 그  유쾌한 모습으로 건네는 이야기들 속에는 또 다른 ‘깊음’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대화의 내용은 나이, 하는 일, 여행 이야기 등이 주를 이루었는데 그중에서도 그녀가 본업 외적으로 작가 일을 함께 겸하고 있다는 얘기가 무척 인상 깊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생각한 ‘인싸 기질’은 화려함(?)의 의미를 내포하기도 했는데, 마스크에 가려진 화려함 속에는 많은 경험과 생각들이 묻어나는 것 같아 속으로 멋있다는 생각을 여러 번 되뇌었다.     

또,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마냥 쉽지만은 않은 길임을 잘 알기에 꿈을 찾아가는 그녀의 행보가 더욱더 빛나보였다.

고기반찬 하나 없는 절 밥이 의외로 그렇게 맛있다고들 하던데 소박하게 차려진 나물 반찬은 듣던 대로 일품이었고, 짧게나마 누군가의 ‘이야기’가 담긴 저녁상은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다채로운 진수성찬이 되었다.


저녁 공양 이후엔 타종, 연주대 등반, 그리고 나에게 쓰는 편지 등 군대 시절 야외훈련을 연상케 하는 다소 빡센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이 시간을 통해 9명 고유의 이야기와 생각을 간접 경험하며 내 생각의 폭을 더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짧지만 길었던 1박 2일의 템플스테이에서 내가 찾고자 한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이었다.


진지함을 싫어하는 내가 낯뜨거움을 무릅쓰면서까지 매일 속으로 되뇌는 이 질문은 일생을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지에 대한 수많은 고민 선상의 시작점이다.


4년 전, 그토록 바라 왔던 기업 입사와 해외연수라는 두 가지 기회의 갈림길 속에서 별다른 고민 없이 후자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도 지금 당장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 경험할 수 없을 것들을 선택하고 그 속에서 깨달음과 행복을 발견하길 바랐던 당시의 고민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인생의 궁극적인 행복과 그 행복을 위한 수단이 사뭇 뒤바뀐 듯한 느낌을 받는 요즘, 진정한 삶의 해답을 속세에서 찾으려 했던 지난 날의 어리석음 또한 돌이켜보면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겠지.


그 날의 기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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