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밍이 Sep 22. 2024

살이 쪄서 슬픈 크론병 환자

살도 건강해야 찝니다

고등학생 때 점심 먹고 나면 바로 화장실에 가는 친구가 있었어요. 조금 마른 편에 속하는 제게 소화가 잘 안 되는 건 아닌지 묻는 분들도 간혹 계셨고요. 살이 찐다는 건 적어도 위장의 흡수 기능에는 문제가 없다는 뜻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저의 남편이 앓고 있는 크론병은 소화기관 전체에 걸쳐 염증이 생기는 병이에요. 대체로 소장/대장에 염증이 많이 생기다 보니 소화가 어려워 마른 환자분들이 많고요. 실제로 남편의 크론병 진료를 수년 째 따라다니며 본 결과, 소화기내과 진료실 앞에서 살찐 분들을 찾기란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남편의 진료실 앞에서는 단순히 마른 체형이라 부르기에도 정도가 심한 분들을 마주할 때도 있어요. 아무래도 간호사였기 때문인지, 그런 분들을 만나면 저도 모르게 유심히 보다가 스스로 놀라서 시선을 거두곤 하는데요. 가만히 있다 보면 유독 심하게 마른 분들은 막 진단을 받기 전이나 진단받은 직후일 때가 많았어요(대학병원 외래 진료실 앞에서는 진료 후 예정된 검사나 시술을 안내해 주시기 때문에, 전직 간호사이자 8년 차 크론병 환자의 아내인 저에게 대략적으로 상황을 유추하기가 어렵지 않은 편입니다).




저의 남편은 염증성 장질환 진료실 앞
유일한 통통이입니다 :)


사실 어디 가서 절대 뚱뚱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닌데, 진료실 앞에서는 마른 분들 사이에서 왠지 건장하다는 느낌을 줄 정도랄까요. 그렇다 보니 왠지 눈에 띄는 편이라 다른 분들이 힐끔힐끔 쳐다보실 때도 있어요. 언제부턴가 진료를 볼 때 크게 걱정이 없다 보니 표정도 꽤 밝은 편이었던 것 같고요.



진료실 앞의 다른 환자분들과 남편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도 건강해야 찔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적어도 남편은 크론병에 한해서는 많이 좋아진 게 아닐까.








저의 남편도 원래는 굉장히 말랐었어요. 연애를 시작할 때는 저와 몸무게가 거의 차이 없었고 다리는 저보다 얇았습니다. 키는 저보다 큰 사람인데 말이에요. 솔직히 그때는 진짜 살찌워야겠다는 생각이 엄청 컸어요. 저를 위해서라도 살을 찌워야 했죠.



제가 열심히 먹어서 살찌우자고 했을 때, 남편은 자신이 살이 안 찌는 체질이라고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많이 먹어도 살이 안 쪘고, 사회생활 하면서도 남들과 똑같이 먹어도 늘 마른 체형을 유지했으니까요. 크론병을 진단받을 즈음에는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흡수가 안 되니까 마름을 넘어선 어떤 상태였을 거고요.



남편을 위해 두번째 사진의 얼굴은 가렸습니다ㅎ


그런데 남편도 살이 찌더라고요. 처음부터 마구 먹기만 한 것은 아니고요. 먼저 무얼 먹었을 때 아프고 안 아픈지를 열심히 분석하면서, 아프지 않은 것들 위주로 점차 늘려나갔습니다. 먹어도 아프지 않으니 본인도 즐겁게 먹었고요. 그렇게 크론병도 서서히 좋아지고 맛있는 음식에 눈을 뜨면서 남편은 점점 살찌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2년 간 무려 15kg가 쪘어요.



저는 소화기관이 좋아져서 살찐 것 같고 그전에 워낙 말랐으니 문제 될 정도는 아닌 것 같다고 했지만, 남편은 살찐 게 나쁜 건 아닐까 걱정했었는데요. 다행스럽게도 정말 크론병이 좋아져서 살이 찐 건 맞는 것 같더라고요. 정기적으로 하는 피검사의 염증수치도 늘 깨끗했고 작년에 시행한 대장내시경 결과도 꽤 좋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어떤 역치를 넘은 것인지 남편은 자꾸만 살이 쪘어요. 똑같이 먹어도 제가 1kg 찔 때 남편은 2kg 찌더라고요. 분명 살 안 찌는 체질이라고 했는데... 결국 저를 만나고 남편은 20kg가 찐 셈이 되었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했던 저도 당황했어요. 소화기내과 교수님도 처음에는 속이 괜찮으면 잘 먹는 게 좋다고 하셨는데, 언제부턴가 살을 빼자고 하시더라고요ㅎㅎ








이제 저희의 다음 스텝은 건강한 다이어트를 하면서 염증 없는 상태를 유지하는 겁니다. 얼마 전부터 저희 부부는 함께 PT를 다니고 있어요. 헬스장 관장님께 상담받고 클린한 식단을 유지하는 건 물론이고요.



남편은 다이어트를 위해, 저는 건강을 위해 함께 식단을 조절 중인데요. 생각보다 다이어트 식단이 크론병 환자에게 잘 맞다고 느낍니다.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면서 간이 세지 않은 음식을 조금씩 자주 먹는 것. 남편도 단백질과 같은 육류는 급성기에도 채소류에 비해 통증이 없던 편이라고 했거든요. 물론 사람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요.



식단도 운동도 잘 맞는 덕분에 남편은 건강하게 다이어트를 잘하고 있습니다. 매주 1kg씩 서서히 빠지고 있는데 폭식하고 싶다거나 몸이 아픈 문제도 없어서, 헬스장 관장님을 포함해 모두가 아주 만족스러워요. 살이 찌는 것도 빠지는 것도 건강해야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Sound body, Sound diet

Sound gain weight, Sound lose weight

뭐니뭐니해도 언제나 건강이 우선입니다 :D




남편의 크론병이 좋아진 건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저희의 노력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했던 노력은 아래의 글에 담아보았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에게 추천드려요 :)


저희 부부는 조그맣게 일상 브이로그도 찍고 있습니다. 분명 처음에는 크론병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유튜브는 너무 어려워서, 어쩌다 보니 일상도 찍고 여행도 찍는 중구난방 브이로그인데요. 병원 관련 재생목록에서 저희의 진료기록을 생생하게 보실 수 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악착같은 환자가 되기로 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