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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Jun 30. 2024

크론병 환자에게 도움이 된 3가지

일상에서 해볼 수 있는 것들로 적어봅니다

사랑하는 저의 배우자는 크론병 환자입니다. 올해로 약 8년차에 접어들었고, 3년차에 저와 만나 연애하고 결혼을 했어요. 이 남자, 그리고 이 남자의 크론병과 함께한 지가 어느덧 5년차네요. 5년 동안 저희는 많은 노력을 했고 실제로 크론병도 많이 좋아졌어요. 교수님께서 좋아졌다고 말씀해주시며 진료 간격도 늘어났고, 실제로 대장내시경 결과에서도 '육안으로 보이는 염증은 없다'는 소견을 들었으니 그런 거겠죠.



사실 크론병과 같은 희귀난치성 질환은 본인도 무척 힘들지만 배우자 혹은 가족들도 힘들 수 있는 병인 것 같아요. 통증이 전제될 수밖에 없다보니 주변 사람이 보기에도 마음이 좋지 않다고 해야 할까요. 물론 모든 병이 그렇겠지만 병 자체가 아주 알려진 병은 아니다보니 보호자로서 무엇을 어디까지 해줄 수 있는지도 모호한 것 같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랬고요.



그래서 제가 신랑에게 해준 것 중에 이건 정말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느낀 것들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아직 완치된 것은 아닐지라도 좋아진 것만은 분명하니까. 말하자면 비결 아닌 비결이랄까요 :) 사실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이라서 적어볼 생각조차 안 했었는데요. 최근에 나누면 힘이 된다는 걸 깊이 깨달았거든요. 한 분에게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적어봅니다.








크론병에 도움이 된 3가지


1. 식단 트래킹

첫 번째는 식단을 트래킹한 것입니다. 매일 식단일기를 쓴다는 개념은 아니에요. 다만 언제, 왜, 어떤 재료 때문에 아픈지는 아는 게 중요한 것 같아서요. 이 사람과 연애를 시작한 초반에는 본인이 아프다고 하는데 왜 아픈지 이유를 알 수 없었어요. 왜냐고 물으면 늘 크론병 때문에 아픈 거라고 했는데요. 제가 느끼기에는 이상했거든요. 얕게나마 공부해보니 급성기가 아니면 항상 통증이 있는 병도 아니었고요. 콩나물/숙주나물 같은 먹으면 아픈 재료가 있고 금식하면 나아지는 걸 보면 원인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무얼 먹었을 때 아픈지 알면 피할 수 있으니까요.



그때 제가 요청한 건 한 가지였습니다. 아플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즉시 알려달라고. 진단기에 워낙 극심한 통증을 겪는 크론병이라서일까요. 마음 아프게도 이 사람은 '배가 싸하다'는 표현을 합니다. 정말 그렇게 말하고 조금만 있으면 통증이 찾아와서 배를 움켜쥐고 끙끙댔어요. 처음 맞닥뜨렸을 때는 당황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저 통증이 더이상 오게 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했어요. 원인을 찾기로 마음 먹고는, 신랑이 아팠던 시점 이전에 먹은 모든 것을 낱낱이 파헤쳤습니다. 이전과 무엇이 달랐고 조금이라도 재료가 다른 것이 있었는지, 외식을 했다면 위생이나 익힘의 정도 혹은 날씨가 싸늘했는지까지도 생각했던 것 같아요. 면역이 낮아서인지 날씨가 추워질즈음 안 먹던 음식을 먹으면 그것 때문에 아프기도 하더라고요. 물론 주원인은 아니었지만요.



그렇게 저희가 찾은 신랑이 못 먹는 음식은 옥수수, 콩나물(푹 익힌 건 가능하지만 아구찜/해물찜에 들어가는 통통한 콩나물은 불가능), 도라지, 고사리, 미역줄기였어요. 아플까봐 제한적으로만 먹는 신랑이 힘들게 알아낸 귀한 결과입니다. 일부러 도전하듯 먹은 건 아니고요. 아침, 점심을 모두 평소와 비슷하게 먹었을 때 저녁을 외식한다면 거기에 나온 안 먹어본 반찬을 한입 정도 먹어봤어요. 아주 작은 한입조차 크론병 환자에게는 느낌이 오더라구요. 다행히 저희는 한입 정도로 통증이 심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덕분에 이제는 원인들만 피하면 어지간한 건 걱정없이 먹을 수 있게 되었고요.



물론 이건 사람마다 다를 거라서요. 저희처럼 알아보려는 노력을 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담당 주치의에게 확인을 받으셔야 합니다. 또 정말 다른 음식은 다 평소와 똑같고 딱 새로운 걸 하나만 더해서, 원인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환경이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알아보지 않더라도 아프게 되었을 때 그 원인만 찾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세상에 음식은 다양하고 재료는 더 다양하니까요. 뭐 하나를 못 먹으면 다른 걸로 채우면 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아프지 않고 사는 삶의 질이라고 생각해요. 저희는 그렇습니다.




2. 전기 핫팩

두 번째는 전기 핫팩이에요. 뜬금없지만 저는 생리통이 심한 편에 속하다보니 아주 어릴 때부터 전기 핫팩을 달고 살았는데요. 그렇다보니 꼭 생리할 때가 아니더라도 배가 좀 냉하다거나 속이 불편할 때면 전기 핫팩의 효과를 톡톡히 보며 살았습니다. 한 번은 신랑이 배탈이 나서 설사한다기에(크론병 때문인지 확실히 저보다 배탈이 잘 나는 편이에요) 전기 핫팩을 하게 했는데 굉장히 놀라더라구요. 이거 처음 해보는데 엄청 좋다고 하면서요. 크론병 말고 외골격은 튼튼한 사람이다보니 한의원도 안 가봐서 몰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후에 몇 번 만져보니 신랑은 항상 배가 차갑더라구요. 모든 크론병 환자가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속이 안 좋을 때만 배가 차가웠거든요. 그때부터 저는 전기 핫팩을 강제로(?) 시켰습니다. 기습적으로 배를 만져보고 차가우면 즉시 전기 핫팩을 하게 했죠. 이 사람은 더위를 굉장히 많이 타는 편이라 갑자기 핫팩을 하라고 하면 정말 싫어했어요ㅋㅋㅋ 하지만 어쩔 수 있나요. 하기 싫으면 배를 따뜻하게 유지하던가, 아니면 크론병을 빨리 낫던가. 둘 중에 결정하라고 하면 핫팩을 할 수밖에 없죠. 물론 에어컨/선풍기도 틀어주고 시켰으니 마냥 괴롭히기만 한 건 아닙니다 :)



열심히 핫팩을 시키다보니 이제는 스스로 효과를 더욱 느껴서인지 조금만 배가 냉하거나 아파도 핫팩을 사용합니다. 그러면서 점점 기습적으로 검사해도 배가 따뜻할 때가 많아졌어요. 크론병이 없는 사람의 배가 평소에 따뜻하다면 크론병이 있는 사람도 그러면 좋지 않을까요. 크론병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는 않을지라도 적어도 소화에는 도움이 되었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걸로도 충분한 것 같아요.




3. 피부 관리

마지막은 피부 관리입니다. 2번처럼 뜬금없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피부 관리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처음 저와 만날 때의 신랑의 피부는 처참하다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았습니다. 겨울이면 얼굴을 포함한 전신의 살갗이 다 하얗게 터서 조금만 긁혀도 피가 났고요. 청결을 신경쓰는 사람이라 박박 씻으면서도 로션은 대충 발라 여름에도 건조했고, 손발톱은 바짝 깎으면서도 부드럽게 관리하지 않으니 자꾸만 긁다가 자기 손톱에 자기가 베이곤 했습니다. 심지어 쇼크가 올 수 있는 알러지부터 날씨로 인한 알러지, 아토피까지 있어서 가려움증도 있다보니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네요. 성격은 세심하면서 자기 몸에는 왜 그렇게 상남자스러운지 어이가 없을 정도였어요.



알고보니 이것도 알려줘야 아는 것이더라구요. 제가 쓰는 네일파일 사용법을 알려주자 귀찮아하면서도 잘 쓰니까 확실히 덜 다치게 됐고요. 손톱 까스러미를 이로 뜯는 것도 도구를 쓰도록 훈육(?)했습니다. 얼굴 로션은 피부타입에 전혀 맞지 않는 걸 쓰기에 샘플들 실험해가면서 정착시켰고, 바디는 제가 쓰는 걸 쓰되 건조할 때는 바디오일을 섞어 바르게 했습니다. 그런데 분명 로션은 잘 맞는데 도통 효과가 적기에 확인해보니 로션을 피부에 얹기만 한 걸 발랐다고 하더라고요ㅎ 등, 어깨, 다리, 발은 아예 바디의 개념에 들어가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얼굴부터 바디까지 로션 바르고 흡수시키는 방법까지도 교육했어요.



신랑은 로션보다는 크림류가 얼굴에 잘 맞아서 일리윤 크림을 바르다가, 작년부터는 피부과에서 추천해준 라로슈포제 리피카밤을 쓰고 있습니다. 확실히 자극도 적고 본인이 느끼기에도 속은 촉촉한데 겉은 번들거리지 않아서 좋다고 해요. 이제는 정말 얼굴만큼은 꿀피부랍니다. 바디는... 여전히 제가 안 볼 때면 대충 발라서 등짝을 맞을 때도 많지만요 :)



문제는 알러지였는데요. 알러지는 피부과에서 진료보고 관리중입니다. 소화기내과 교수님 통해서 세브란스에서 협진도 받아봤지만, 할 수 있는 게 대증치료뿐이라 굳이 대학병원에서 힘들게 진료 볼 필요가 없더라고요. 가고 싶을 때 갈 수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다니던 피부과에서 알러지약과 알러지/아토피에 쓰는 순한 스테로이드 로션을 처방받아 필요할 때마다 적용 중입니다. 알러지나 아토피 모두 결국 면역이 중요한데 면역억제제를 먹는 한 어쩔 수 없더라고요. 제 신랑처럼 면역억제제를 드시고 계시다면 끝없는 면역피부질환과 싸워야하는 저희의 동지시네요. 부디 하루라도 빨리 본인만의 피부관리법을 찾고 더 산뜻한 삶을 즐기시면 좋겠습니다.




추가로,

따로 적지는 않았지만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바로 즉각적인 진통제 사용에 대한 건데요. 저는 간호사로 살았다보니 통증에 대해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이에요. 진통제를 먹으면 안 되는 몇몇 경우들을 제외하고 정확한 병명을 아는 통증에 한해, 제가 배운 바로는 통증이 이미 온 후보다 오기 전에 먹는 게 진통제의 효과가 가장 크다고 알고 있습니다.



초반의 신랑은 통증이 심해졌을 때 진통제를 먹곤 했어요. 그렇다보니 진통제의 효과가 오기까지 더욱 오랜 시간을 괴로워야 했습니다. 어차피 배가 싸할 때부터 어느 정도의 통증이 올 거라는 걸 아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아플 것 같다 싶을 때 약을 먹이니 그래도 힘든 기간이 줄더라고요. 물론 남용은 금물이지만요. 어차피 아플 때 먹으라고 주신 약, 더욱 효과적으로 드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짧게 적어보았습니다.








저희 신랑은 하지 않았던 방법들이니까 다른 분들도 안 하고 계시지 않을까 싶어서 적어본 내용인데요. 막상 적다보니 기억나는 것들이 많아서 글이 꽤 길어진 느낌이에요. 저의 기억과 마음을 꾹꾹 눌러담은만큼 아주 작게라도 얻어가시는 게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제가 이 매거진의 첫 글을 적을 때는 모든 걸 다 쓰겠다는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걸 누가 궁금해할까, 하면서 자꾸만 글을 정리하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그것조차 저만의 생각이었어요. 이제는 열심히 글을 쓰고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고 관심이 모이다보면 해결책과 더 나은 방법도 모이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저장된 글들 하나하나 부지런히 발행해 볼게요. 모든 크론병 환자분들, 보호자분들 화이팅입니다.




우리 완치를 목표로 살자구요 :)




▶ 본 글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 글을 추천드립니다. 제 배우자의 크론병 진단기와 저희가 해온 것들을 담아본 글이에요.



▶ 크론병을 가진 남자와 행복하게 사는 일상 브이로그도 찍고 있습니다. 분명 처음에는 크론병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유튜브는 너무 어려워서, 어쩌다보니 일상도 찍고 여행도 찍는 중구난방 브이로그인데요. 병원진료 재생목록에서 저희의 진료기록을 생생하게 보실 수 있습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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