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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Oct 13. 2024

남편의 크론병 진료는 항상 같이 다니고 있어요

연애할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지난주에도 남편과 함께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소화기내과는 4달에 한 번, 정신건강의학과는 1달에 한 번 가기에 두 진료가 모두 겹치는 특별한 진료였어요. 두 진료가 모두 겹치는 진료가 있는 주에는 저희 모두 마음이 바빠집니다. 피검사도 해야 하고 진료 일정도 나뉠 때가 많아서 꼬박 반나절은 병원에 붙어 있어야 하거든요.



남편은 주부이고 저는 노트북으로 일하기 때문에 이동성에 큰 제약이 있는 편은 아니라는 게 다행이지만요. 노트북으로 일한다는 게 필요한 에너지나 일하는 시간이 적다는 건 아니라서요. 한동안은 일거리를 들고 다니며 병원을 다닌다는 것에 짐짓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던 것 같아요.




남편의 진료를 따라갔던 건
처음에는 호기심이었어요.


연애하면서 남편이 크론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남편과 더욱 오래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남편의 크론병에도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물어보았는데요. 남편은 말하기 싫은 것인지 정말 잘 모르는 것인지 알 수 없게 제가 묻는 것들에 답해주지 못했어요(나중에는 정말 몰랐다는 걸 알았지만요). 마침 다니는 병원이 제가 일했던 병원이라서 한 번 다녀와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진료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남편의 크론병 진료는 생각 이상으로 간단했어요. 교수님이 잘 지냈는지, 불편한 건 없었는지, 회사생활은 어떤지 등등을 물어보셨고요. 남편은 오직 '네, 괜찮아요'라는 일관된 답변을 했습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제가 무안할 정도로 똑같은 답변이었어요. 교수님은 몇 번 더 다른 질문을 하시다가 이내 조용히 '그러면 약은 동일하게 주고요..'라며 마무리 멘트를 시작하셨습니다. 제 머릿속의 생각들이 아주 빠르게 돌았어요.



오마이갓, 정말 진료가 이렇게 끝난다고? 아니 분명히 며칠 전에도 이유 없이 배 아파서 마약성 진통제 먹고도 아파서 잠도 못 잤고, 숙주나물은 괜찮아서 콩나물 먹었다가 호되게 당해서 하루를 물만 먹었고, 피부 면역도 갈수록 떨어지는데 면역억제제랑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 이것 말고도 말할 게 수두룩 할 거고 3개월에 한 번 만나는 건데 정말 다 괜찮다고 말하고 끝난다고...? 진짜로?



짧은 시간에 몇 번을 고민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는지 모릅니다. 사실 의료진 입장에서는 보호자들도 굉장히 변수가 되기에 엄청 의식하거든요. 보호자가 치료에 협조적이지 않을 수도 있고, 그동안 한 번도 보이지 않다가 나타난 보호자라면 더더욱 의아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간호사였다보니 되려 그 부분이 걱정스럽더라고요. 굳이 나서서 이야기해야 하는 게 맞는가 고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남편의 보호자로서 병원에 함께 간 거였으니까요. 의료진으로서 의료진을 이해하러 간 게 아니니까 조금 민망하더라도 끼어들었습니다. 생각했던 것들을 다 말하면서도 동시에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에게도 동의를 구했어요. 그때 아마 우리 세 사람 모두 떨떠름한 표정이었을 겁니다. 뭐랄까, 모두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어른의 의연함을 가장하고 있었거든요ㅋㅋㅋ



우리 교수님 책상!



다행히 제가 말한 것 중 몇 가지는 교수님의 키보드를 통해 기록이 되었고요. 진통제는 먹을 때 얼마나 먹는지, 추가 처방이 필요하지는 않은지 등 매우 생산적인 주제로 진료가 조금 더 길어졌습니다. 왠지 조금은 도움이 된 것 같아서 뿌듯했습니다.



진료를 마치고 나온 남자친구(현 남편)는 이전과 다르게 흘러간 진료에 몹시 당황스러운 듯했지만, 이내 필요한 이야기들을 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리곤 왜 다 괜찮다고 말했냐는 저의 질문에 또 한 번 당황스러워하며 말했어요.



이미 지난 일이기도 하고... 심하지 않으면 굳이 말할 필요 없지 않아? 괜히 별 것 아닌 걸로 말씀드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어서...



휴, 그에게는 병원이란 입원할 정도로 아플 때 도움이 되는 존재일 뿐이었어요. 외래 진료는 약을 타야 하니까 갈 뿐이고 다른 동기가 없었고요. 계속 병원에 다니고 약을 꾸준히 먹어왔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이후부터는 저의 외래 진료 교육이 시작되었습니다. 어차피 병원에 간다면 그 시간을 생산적으로 써야 한다는 것부터, 의사의 질문은 다 허투루 나오는 것들이 아니라는 점, 3개월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를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할 필요는 없더라도 적어도 아팠던 것에 대해서는 꼭 말해야 한다는 점, 예전과 비교해서 지금이 나을지라도 미래는 더 나아져야 한다는 점 등등이요.



다행히 제가 사랑한 남편은 그때 역시도 저의 말을 잘 들어주었고요. 일상생활에서 조심할 부분도, 노력할 수 있는 부분도 함께 하면서 지금은 크론병도 많이 좋아졌어요. 잘 몰라도 병원은 열심히 다녔던 사람이라서, 잘 알게 되니까 스스로도 열심히 잘하더라고요 :)








지금 생각해 보면 예전의 남편에게는 크론병이 나을 거라는 기대감 자체가 일절 없었던 것 같아요. 극심한 통증이 일상이었던 남편의 옛이야기를 들을 때면, 제 눈앞에 있는 사람과는 정말 다른 사람이에요. 희망이라곤 없는,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저 아프지 않기만을 바랄 뿐인 사람이요. 이제는 야밤에 간식이 먹고 싶어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괴로워하는 남편의 평범함이 다행스럽게 느껴집니다.



여전히 저희는 함께 병원에 다니고 있어요. 처음 연애할 때 함께 갔던 때부터 지금까지 빠짐없이 함께 다녀요. 이제는 너무 익숙해진 걸까요? 병원에 가야 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은 귀찮지만요. 어차피 오랜 세월 다녀야 할 병원, 이제는 데이트로 즐겨 보자며 남는 시간에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편안하게
함께 다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살 거고요 :)



 한때는 병원/지역사회에서 간호사로 일했지만, 지금은 크론병이 있는 남편만을 위한 간호사로 살고 있습니다. 아래 매거진을 구독해 주시면 저희의 이야기를 자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저희는 얼마 전에도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이번에 다녀온 병원 진료 겸 데이트는 영상으로도 만들어 봤어요. 궁금하신 분은 아래 영상을 클릭하시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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