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것이 아닌 것들을 낭비하는 장소
내가 좋아하는 장소는 물리적 속성보다는 심리적 속성을 띤다. 무언가를 낭비할 수 있는 장소를 좋아한다. 후회하면 후회하는 대로,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면 있는 대로.
가장 대표적인 장소는 침대인데, 우리가 시간을 낭비하는 주된 무대기도 하다. 특히 모두가 잠든 새벽에 공기는 살짝 차가워야 하고, 이불은 턱까지 끌어당겨야 하고, 스탠드의 간접등이 벽지를 비추며, 스포티파이의 로우파이 플레이리스트가 틀어져 있는 그곳. 그런 몇 가지 당위에 의해 침대는 잠을 자는 곳에서 밤을 덮는 곳으로, 시간을 흘려보내는 곳으로, 감각이 어그러지는 곳으로, 시선이 붕 뜨는 곳으로, 잠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고민을 쓸데없이 붙잡고 지연시키는 곳으로 변모한다. 이곳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불성실한 인간으로 존재하는 순간 왠지 모를 쾌감이 느껴진다. 그래서 좋다. 낭비하는 감각은 마치 시간에 대한 통제권이 내게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런 거 있을 리가 없는데.
비슷한 맥락에서 물이 가득한 장소도 좋아한다. 물에 떠있거나, 물로 무언가를 씻어내거나, 물소리를 오랫동안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곳에서는 시간을 낭비하는 동시에 물도 낭비한다. 언젠가부터 물부족 국가라는 말이 거의 시의성을 잃은 옛 속담처럼 느껴지는데, 사실 ‘물부족’이란 말 자체가 인간 앞에선 무용해지는 것 같다. 우리의 우울을 씻어내려면 아무리 많은 양의 물로도 턱없이 부족한 것 같기 때문이다. 등이 아릴 때까지 샤워기의 물줄기를 맞는다. 손발이 쪼글쪼글 해질 때까지 목욕물에 담겨 본다. 정수리와 어깨가 새빨갛게 익을 때까지 야외 수영장 속에서 걸어 다닌다. 내 키보다 더 깊은 바다에 잠수해 거대한 수압을 느껴본다. 물이 다 내 차지 같다. 숨을 쉬지 않음으로써 살아있음을 느낀다. 내 소유의 것들과 내 소유라 착각하는 것들로부터 잠시 멀어지고. 그곳에서는 시간과 물만 흐른다.
앞서 말했듯이, 낭비의 즐거움은 낭비하는 대상이 원래 내 소유의 것이었다고 착각하게 해주는 데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실제 내 소유의 것을 낭비하는 기분은 어떤 걸까. 예컨대 마음을 낭비하는 일은 어떤 즐거움을 줄까. 마음을 쏟으면 시간도 절로 쏟게 된다. 애인과 있으면 가끔 마음이 줄줄 샌다는 느낌을 받는다. 펑펑 써도 마음이 줄지를 않으니 낭비벽이 생긴다. 그에게 마음을 낭비하면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그가 있는 곳은 낭비로 가득하다. 시간과 마음, 과거와 미래, 추억이 넘친다. 그가 있는 곳에서는 필요 이상의 시간을 허락한다. 그곳이 나의 도피처 혹은 낭비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