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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얀 Dec 21. 2021

계절 조립

계절 틈바구니 켜켜이 쌓인 감각들

사진 : 청파동에서 길거리 캐스팅한 고양이, 후암이 (2021년 1월)




 지난 1년의 계절을 조립해본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추위로 시작해 추위로 마무리한다. 작년 겨울에 앞서 올해 겨울이 생각난다. 청파동에서 데려온 길고양이, 추위에 떨며 광고를 찍었던 촬영장, 당근마켓에서 만 오천 원에 팔리던 눈오리 집게, 그렇게 한 번씩 유행이란 이름표를 달았던 것들도 짚어보고, 여섯 명이 우르르 갔던 산속의 글램핑, 사람 많은 곳은 무서워 배달시켜 먹은 겨울 대방어도 떠올려본다. 추운 인상의 기억이 눈처럼 쌓여 기화하지도 녹지 않은 채 나의 일부가 되었다.


 계절은 ‘벌써’ 온다. 빨리 온다는 말도, 더디게 온다는 말도, 계절의 속도를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계절은 날씨와 날짜의 형태로 삶 안에 들어온다. 옷차림과 제철음식, 계절에 태어난 사람들과 함께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녹아있어서 잠깐 한눈을 팔아야 눈에 들어온다. 기차를 타고 지나가는 풍경을 볼 때 가장 멀리서 우뚝 서 있는 산이 마치 계절을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풍경에는 레이어가 있어 앞에 있는 지형지물은 감상할 틈도 없이 너무나 빨리 지나간다. 반면 가장 뒤에서 풍경을 진정으로 지켜주고 있는 산, 해, 달은 한잠 자고 일어나면 바로 눈앞에 와있다. 곧을 줄만 알았던 기찻길은 먼 길을 서서히 굽어 나를 산 너머에 데려다준다. 벌써 도착했어?


 계절마다 냄새도 있는데, 겨울 냄새가 유난히 강렬하다고 느껴진다. 살짝 언 코에 스산하게 들어오는 향이 제법 상쾌하다. 묵은 낙엽이 제 명을 다하는 향 같기도 하고 길어진 밤처럼 어두운 색을 지닌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마스크를 잠깐씩 내린다. 올해의 것이 아닌 기억까지 떠오른다. 갓 드라이크리닝 한 코트의 냄새와 함께 유난했던 다정함, 날이 추워져도 통 식지 않던 짝사랑이라는 이름의 지랄들이 떠오르고... 녹는 동시에 어는 온도인 0도를 마주하며, 겨울은 시작하거나 맺기에 좋은 계절이라는 생각을 한다.


 여름에 아지랑이가 있다면 겨울에는 입김이 있다. 연속적인 계절을 분절해주는 지표가 되어준다. 마스크를 끼고 다닌 이후로는 안경에 김이 더 서리는데, 이제는 닦지도 않고 안 보이는 채로 그냥 걷는다. 코로나 이후 웬만하면 익숙한 곳 밖에 가지 않아서 굳이 앞을 볼 필요가 없을 정도니까. 거침없이 걷는 걸음에 약간의 긴장감이 더해져 재미있다. 


 계절을 가르는 또 다른 지표에는 정전기가 있다. 겨울이 오면 극세사 이불에서 사냥놀이를 한 고양이는 한껏 충전된 정전기 고양이가 된다. 인간은 놀라지만 고양이는 정작 태연하다. 마스크를 쓰지 않던 시절, 길에서 애인과 뽀뽀를 하면 곧잘 정전기가 났다. 깜짝 놀라는 걸 싫어하는 나는 뽀뽀하기 전에 겁부터 내며 호들갑을 떠는데, 그럴 때 애인은 일부러 소맷자락에 입을 마구 비벼 정전기를 충전했다. 안 해! 하고 질겁하면 알았어, 알았어, 하고 정전기를 가라앉힌답시고 손가락으로 자기 입을 톡톡 친다. 잔뜩 긴장하며 그 위에 뽀뽀를 하면 어김없이 따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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