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얀 Nov 19. 2021

수면

복면문학 키워드 [수면]




 스테미나 보양식, 아이들 영양 간식. 지난주 수요일 찬욱의 동네에 낙지 호롱이를 파는 트럭이 들어섰다. 노란 현수막에는 풍선을 연상시키는 동글동글한 폰트로 ‘낙지 호롱이’라고 쓰여 있었다. 깜깜한 거리에 가로등도 몇 없어 어두웠지만, 그 냄새의 근원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뒤로 자빠뜨릴 듯 코로 강하게 들어오는 냄새는 찬욱을 자꾸 멈추게 했다. 타버리기 직전의 그 고소한 양념 냄새는 온 동네에 벨 것 같았다.


 [한 마리 이천 원, 네 마리 육천 원, 열 마리 만 이천 원.]     


 그러나 찬욱의 주머니에는 한 푼도 없었다. 엄마는 항상 찬욱에게 평일 공부방 끝나고 오는 길에 간식을 사 먹으라고 천 원짜리 지폐를 하루에 한 장씩 쥐여주었는데, 매번 공부방 앞 떡볶이 트럭에서 반 인분을 해치우고 집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낙지 트럭을 처음 본 날부터 찬욱은 엄마가 준 돈을 쓰지 않고 모으기 시작했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동생까지 생각해서 네 마리를 사기 위해서는 육천 원이 필요했다. 찬욱은 간식을 먹지 않고 이 주 가까이 버틴 끝에 드디어 낙지 호롱이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네 마리 포장해주세요.”     


 트럭 가까이 가자 냄새가 더 세게 덮쳤다. 트럭 안은 어수선했다. 밑에 숯을 놓아 뜨겁게 달궈진 불판에서 나무젓가락에 몸이 꽁꽁 말린 낙지들이 다 익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낙지를 보관하는 수조는 없었고 스티로폼 상자가 있어서 익지 않은 낙지들은 그곳에 누워있었다. 양념 떨어져 불이 갑자기 올라오는 모습과 그것으로 생긴 연기와 이마가 넓은 트럭 아저씨의 땀방울도 보였다. 젓가락을 돌리던 아저씨는 찬욱에게 물었다.     


 “너 몇 살이냐?”

 “저는 열두 살이요.”

 “열두 살이 키가 좀 작네. 너 밥은 먹고 다니니? 새카매서 눈만 커 갖고 말랐네 그래. 하나 그냥 줄 테니 먹어라.”     


 그리고 불판 가장자리에 있던 작은 낙지 호롱이를 찬욱의 손에 쥐여주었다. 찬욱은 잘 먹겠습니다 하고 후 불어서 한입 물었다. 낙지가 통째로 감겨 있던 탓에 이로 끊어먹으려고 했지만 좀처럼 끊어지지 않았다. 그걸 본 아저씨는 중간 부분을 가위로 끊어주었다. 감사합니다.


 찬욱은 냄새로만 맡던 매콤한 양념과 튕기듯 쫄깃한 낙지 살을 끊임없이 씹었다. 지난 이 주간 떡볶이 트럭을 억지로 지나치며 버틴 보람이 있었다. 분명 엄마랑 아빠랑 동생이 좋아하리라 생각했다.      


 “낙지는 아저씨가 직접 잡아요?”

 “아니, 사실 베트남산이란다.”


 그러니까 이렇게 싸게 팔지. 아저씨는 묻지 않은 바까지 답했다. 찬욱은 아저씨의 앉은뱅이 의자 옆에 뜯긴 팩소주가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빠도 저것만 마시면 물어보지 않은 이야기까지 늘어놓곤 했다.     

 “거기 낙지들은 아주 그냥 악착같거든. 언제는 아는 형님이 낙지 수족관에 베트남 낙지 있는 줄 모르고 우리나라 낙지를 넣었더니 하루도 안 되어서 다 죽었다더라. 싸우다가 물어 뜯겨서.”     


 찬욱은 낙지에도 이빨이 있는 건가 생각했다. 스티로폼 상자에 누워있는 낙지들은 한데 모여 상자 모서리 모양에 맞춰 찌그러져 있었다. 물을 누비고 수족관 수면 위로 올라오는 낙지를 상상했다. 확실히 뼈는 없는 것 같았다. 대신 질긴 건 맞았다. 찬욱은 턱이 얼얼해질 때쯤 씹은 낙지를 삼켰다.      


 “질긴데 맛있어요.”

 “내가 말했지. 베트남 낙지들은 악착같다고. 악착같이 질기다고.”     


 아저씨는 말이 많아졌다. 이상하게 찬욱은 아저씨의 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동남아에서 온 건... 사람이나 낙지나 똑같아. 싸게 와서 팔리니까 우리나라 사람들 일자리 다 뺏고. 다 쫓아내야 하는데...”     


 아저씨는 멈추지 않았다. 차라리 다른 사람이 오면 다른 이야기를 할 텐데. 찬욱은 뒤를 돌아보았다. 어두운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베트남 놈들이고 필리핀 놈들이고 다 자기 나라 살라고 해. 범죄 저지르라고 개나 소나 받아, 어? 에잇 시팔 대통령이란 사람은 대통령씩이나 되어 갖고 국민들 하나 못 지켜.”     


 아저씨는 팩소주를 한 번에 들이켰다. 찬욱은 낙지를 꼭꼭 씹으면서 숫자를 셌다. …열……. 스물……. 서른 하나……. 입 안의 낙지 살이 뭉개지면서 찌걱거렸다. 아저씨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베트남이라는 단어만은 유독 들렸다. 항상 그랬다. 가끔 공부방에서도 그랬고 가끔 학교에서도 그랬다. 너는, 너희 엄마는, 너네 아빠는 늙어서, 너는 왜 그렇게-     


 “얘.”     


 아저씨가 호일에 싼 낙지를 눈앞에서 흔들었다.     


 “한 마리 더 줄 테니까 엄마한테 ‘국내산 낙지다’하고 말하고 또 와라. 알았지?”

 “네.”      


 찬욱은 검은 봉지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다시는 낙지 트럭에 가지 않기로 했다.









*<복면문학>이란 매주 하나의 주제를 정하여 익명으로 짧은 소설을 쓰고, 투표를 통해 한 작품에게 문학상을 수여하던 문학동인 무소속의 창작 독려 프로젝트입니다. 2015~2018년 사이에 썼던 작품을 퇴고해서 올리거나, 새로 집필해 올리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_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