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문학 키워드 [손우물]
로라는 전자담배를 피웠다. 온갖 향과 질감으로 가득한 연기의 향연이라니 너무나 신기한 나머지 T는 한 번 죽 빨아보았다. T는 옅은 모히또 맛을 느끼자마자 바로 기침을 했다.
비흡연자는 전자담배를 피우기 시작할 이유가 없다. 중국의 어떤 사업가가 금연 보조제로써 개발한 것이 전자담배였으니까. 그 사업가도 흡연자고 그의 아버지도 흡연자였다. 아버지는 절반 이상의 시나리오가 그렇듯 폐암에 걸려 사망했고 사업가는 그 후로 금연 보조제에 대한 개발을 시작했다고. 처음에 그는 이 사업이 세계적으로 흥할 줄은 몰랐다. 천기를 누설할 만한 기막힌 발명품이 쏟아져 나오는 중국에서 그의 발명품은 비행기에서 귀가 멍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이어폰과 스마트폰 어플, 비를 눈으로 바꾸어주는 파라솔, 꾀병 아닌 진짜 병을 원하는 직장인을 위한 숙취 배가 드링크 등과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기회가 좋았다고 해야 하나, 그 사업가는. 인구 십삼억 면적 구백오십구만 칠천 평방킬로미터의 땅덩이를 안개처럼 감싸고 쿤룬 산맥을 넘고 ‘스탄’으로 끝나는 나라를 일곱 개를 넘어 바다를 세 개는 넘게 건넜다. 전자담배, 베이퍼, 이-시가렛, 어떤 것으로 불리든 간에 그가 고안한 아이디어는 금방 전 세계 모든 곳에서 찾아볼 수 있게 되었고 결국 로라의 애인인 T-그는 흡연자 애인을 사귀는 것이 처음이었다-에게도 한 모금 빨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니코틴과 향료가 주원료가 되는 액체, 가습기와 비슷한 간단한 원리, 물론 다른 화학 물질로도 작동 가능한 활용도 높은 기기, 그러나 무엇을 기화시키든 쓰는 사람의 책임이 필요하게 될 수도 있는 요망한 재미를 선사하기도 했다. 로라는 기침하는 T를 보며 여러 의미로 웃었다. 그것에는 꼭 법적 책임을 감수해야 하는 재미 외에도 또 다른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 손우물 해봐.
- 소누 물이 뭐야?
- 손을 이렇게, 모아서 뭐 담듯이 동그랗게 말아 보라구.
로라가 T의 손을 구겨 우묵한 그릇 모양으로 만들었다. 무엇 하냐는 질문을 T가 던지기도 전에 로라는 전자담배를 크게 빨아들이고 T의 손에 힘껏 뿜었다. 로라는 승천하기 직전 이무기와 같이 코와 입에서 대기大氣보다 무거운 흰 연기를 사정없이 방출했다. 그것은 살아 움직이듯 T의 손에 적층 되며 머무는가 싶더니 역치를 넘기자 제 힘으로 손가락들을 타고 넘어갔다. T는 도저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그거 어떻게 한 거야?
- 너도 할 수 있을 거야.
조금 전의 기침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T는 애인이 선사한 시각적 즐거움에 쓸데없이 흥분했다. 온 버튼이 들어와 있고 로라의 타액이 조금 묻어있는 전자담배를 받아 들었다. 로라는 ‘손우물’을 준비했다. T는 현기증이 오려는 순간 들숨을 멈추고 애인의 손에 연기를 토했다. 기침을 하자 연기가 호수에 파문이 일 듯 일렁였다. 로라는 깔깔 웃으며 T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착하지, 잘하네. 그리고는 혀와 입술을 사용해 그 연기를 더욱 살아있게 하는 법을 가르쳐줬다. 구멍 난 연기를 만들고 불고리를 통과하는 사자의 뜀박질을 표현하는 법 외에도 호흡 조절을 조합해 더욱 다양한 결과를 낼 수 있는 꽤 많은 방법들. 그 다음에는 손가락을 잘 써서 연기가 회오리를 그리며 전진하게 하는 법도 가르쳐줬다. 그리고 로라와 T는 키스를 하기도 했다.
T는 다음 날 병원 동료 아라쉬에게 전자담배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생동감 넘치는 연기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아라쉬는 페르시아 이야기를 꺼냈다. 페르시아의 사람들은 시샤를 피우며 대기大氣보다 무거운 연기를 천만 년 전부터 뿜어댔다고 이야기했다. 공중에다 열두 개의 고리를 만들며 서로의 고리를 얽으며 노는 것이 예삿일이라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과장 조금 보태서 천만년’이라고.
T와 로라는 전자담배를 들고 아라쉬와 아라쉬의 친구들이 자주 가는 시샤 가게에 들렀다. 아라쉬는 새삼스럽게도 이란 사람이었다. 로라로부터 베이핑 기술들을 꽤 빨리 습득한 T는 조상들로부터 시샤를 배운 페르시아 후손들보다도 더 다채로운 생동을 구현했다. 아라쉬는 '이러다 대회 한 번 해야하지 않겠어?'라고 말했다. T의 엄청난 잠재력과 그것을 발굴한 애인과 장난 삼아 던진 친구의 한 마디가 2015년 현재 참가자 이 만 명이 넘는 베이핑 아트 세계 대회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처음 시작은 동네 펍과 시샤 가게였다. 참가자들을 세워놓고 열 명 남짓한 관객들 앞에서 자신들이 선사할 수 있는 최고의 시각적 즐거움을 뽐내는 것이 초기의 형태였다. 그들 사이에서 은어처럼 생겨난 기술명들 - 스월, 도넛, 도넛 인 도넛, 룹디룹, 티몹 -은 곧 정식 명칭으로 자리잡다시피 했고 '베이핑 아트'라는 말도 어반 딕셔너리에 등재되었다. 유튜브와 SNS 영상을 통해 T의 놀랄만한 기술들은 세계로 뻗어나갔고 결정적으로 전자담배의 본 특허권을 가진 중국 본토 사업가에게까지 그 이야기가 닿았다. 결국 기업 단위로 거금의 지원금이 내려오면서 대회가 시 단위, 주 단위, 국가 단위, 그리고 세계 단위로 뻗어나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니코틴 외의 유해물질은 전혀 없는, 니코틴 불포함 용액으로도 베이핑 아트가 가능한 전자담배는 전 세계 보건국에서 연구되기 시작했고 뛰어난 금연 보조 효과가 입증되자 금연 치료 트라이얼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다. 담배라는 이름으로 건강을 표방하게 되었고 결국 '글로벌 건강이 흐른다'는 이상한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베이핑 아트 세계 대회가 열렸다. 참가자 일만 명 추산으로 성황리에 진행된 첫 대회는 지구촌을 연기처럼 집어삼켜버린 전자담배의 위상을 대충이나마 보여주고 있었다.
사실상 대회의 발굴자이자 이제껏 없던 잠재력의 소유자인 T가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 불공평한 일일 수도 있지만 결론적으로 T는 초대 챔피언이 되고 말았다. 그것이 원인이 된 것인지, 전체 순위 13위에 그친 로라'는' T'에게' 결별을 선언했다.
*<복면문학>이란 매주 하나의 주제를 정하여 익명으로 짧은 소설을 쓰고, 투표를 통해 한 작품에게 문학상을 수여하던 문학동인 무소속의 창작 독려 프로젝트입니다. 2015~2018년 사이에 썼던 작품을 퇴고해서 올리거나, 새로 집필해 올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