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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초 Jan 05. 2022

소주를 편의점에서 산다는 것

편의의 역습


소주를 편의점에서 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캐나다에 오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내가 살고 있는 캐나다 밴쿠버에서는 주류를 사려면 전문적으로 술을 취급하는 Liquor Store에 가야만 살 수 있다. Liquor Store는 한국의 편의점보다는 접근성이 떨어지고 무엇보다 아무리 늦어도 밤 9-10시면 문을 닫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술을 먹고 싶어도 살 수 없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주류 구매가 가능하다. 이제는 치킨집보다도 많아진 편의점에서 연중무휴 24시간 손쉽게 술을 살 수 있다. 더군다나 음료수 하나를 사려해도 2,000원을 내야 하는 마당에 세금이 72%나 되는 소주를 단돈 2,000원에 살 수 있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이를 다르게 해석하면 소주의 원가가 그만큼 낮다는 이야기이고 소주가 질 낮은 술이라는 것을 방증한다. 한류 열풍이 아무리 강하게 불어도 세계 주류시장에서 소주의 인기는 높아지지 않는 이유다. 호기심에 소주를 맛본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그 생경한 맛에 기겁하곤 한다. 소주는 값싼 타피오카나 설탕을 뽑아내고 남은 찌꺼기로 주정을 만든 뒤 감미료를 첨가해 맛을 부드럽게 한 것이라 맛이 좋을래야 좋을 수가 없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소주를 편의점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 한국 사회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술 취한 사회



한국에 있을 때는 술이라면 진저리가 쳐 질정도로 지긋지긋했다. 대학교를 입학하고부터 접한 한국의 하드코어 한 술 문화에 도저히 적응할 수가 없었다. 특히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마주한 회식 자리는 술에 대한 거부감을 증폭시켰다. 그런 이유로 한국을 떠난 뒤로는 소주를 마시지 않게 되었다. 


2018년에 발간된 세계 보건기구 (WHO)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1인당 연평균 9.7ℓ의 술을 마신다고 한다. 단순하게 절대적인 순위만 보면 세계 40위권 수준으로 의외로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맥주나 와인을 주로 소비하는 것과 달리 한국에서 소비되는 주류는 70%가 'Other', 즉 와인이나 맥주가 아닌 '기타'로 분류되어있다. 이 분류 속에는 막걸리와 같은 전통주도 속해있지만 그 비중은 미미하다. 다시 말해 소주가 한국 주류 소비량의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맥주의 도수가 보통 5-6%인 것을 감안하면 소주는 같은 양을 마셔도 알콜을 3배 이상 섭취하는 꼴이 된다. 9.7ℓ를 마셔도 맥주를 주로 마시는 다른 국가보다 위험한 이유이다.


알코올 섭취량 순위를 아시아로 좁혀보면 한국은 라오스 다음으로 2등이다. 중국과 일본은 국민 1인당 각각 연평균 7ℓ, 8ℓ의 주류를 소비한다고 한다. 일본도 주류 소비의 40%가 'Spirits', 즉 증류주의 비중이 40%를 차지하지만 한국과 상황이 조금 다르다. 일본의 증류주는 소주처럼 저렴하지 않아 접근성이 낮고 주로 물에 타서 희석해 마시기 때문에 한국의 소주보다 덜 위험하다.



술 권하는 미디어



2017년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강력 흉악범죄의 30% 이상이 음주 상태에서 발생했고 자살, 자해 손상 환자의 42%가 음주와 관련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2015년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의 조사 결과,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2013년 기준 10조에 육박하고 매년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무엇보다 음주로 인한 사회 경제적 손실은 흡연, 비만보다도 높은 수준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한국의 음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 같지만 최근 미디어에서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여준다. 


요즘 방영되는 리얼리티 예능 쇼 들을 보면 출연하는 연예인들이 술을 마시지 않는 예능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음주가 일반화되어있다. 예능 속 인물들은 마치 술 없이는 진솔한 이야기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술을 메인 소재로 삼은 드라마도 있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술꾼 도시 여자들'이라는 드라마가 대표적으로 기승 전'술'로 끝나는 본격 음주 드라마다. PD도 드라마의 연출 포인트를 '드라마를 보다 보면 술이 당길 수 있게끔' 만들었다고 밝힐 정도로 음주를 조장한다. 


물론 미디어는 사람들의 관심사에 맞춰 콘텐츠를 제작하고 어떤 주제를 선택할 지에 대해서는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지만 적어도 음주로 인한 여러가지 문제가 심각한 한국에서 이런 종류의 예능이나 드라마는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편의점에서 소주는...



모든 중독성을 가진 약물이 그렇듯 술 또한 한번 마시기 시작하면 더 마시고 싶게 만드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편의점에서 술을 판매하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본다. 더군다나 단돈 2000원으로 손쉽게 취할 수 있다면 말이다. 


지나친 술 소비량을 줄이려면 주류세를 인상해 담배처럼 가격을 확 올려버리거나 혹은 주류 판매를 제한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소주에는 이미 많은 세금이 매겨져 있어 주류세를 더 부과한다 해도 큰 의미가 없다. 정부가 나서서 소주의 질을 올려 소주의 원가를 올리지 않는 이상 말이다. 그렇다면 술 판매를 제한하는 수밖에는 없어 보인다. 누구나 손쉽게 접근이 가능한 편의점에서는 주류 판매를 금지하거나 혹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술 판매를 제한하는 등의 제재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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