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렇게 보내네' 노래와 함께>

9. 하루 종일 한 곡의 음악만 들어야 한다면 어떤 곡을 듣고 싶나요?

2014년. 개인적으로 무척 힘든 한 해였다.

준비 없이 찾아온 아빠의 ‘부재’와 온 나라를 슬픔과 트라우마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던 '세월호 참사'는 ‘죽음’이라는 명제를 내가 살면서 가장 깊게 고민하던 때이기도 했다.


2014년에서 2015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학교 교육과정 중 초등 6학년 긴(졸업) 여행을 위한 사전 답사와 교사 연수로 동료 교사들과 히말라야가 있는 네팔로 여행을 떠났다. 해외 연수는 처음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할 트레킹 코스, 숙소, 멜람치걍 마을과 학교, 자유 여행지 등을 미리 훑어보는 일정으로 보름이 넘는 기간이었다.


네팔 여행이 내 인생의 변곡점이 될지는 그때는 몰랐고 내가 모르고 있던 나를 찾은 때가 되었다.


트레킹을 하며 만난 자연은 너무나 거대했고 말 그대로 대자연이었다. 나는 대자연 속에서 손톱만큼 작은 존재일 뿐이었다. 그 안에서 나를 치장하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 행위였다.


구름이 내려다 보이는 숙소에서 작은 의자(무략)에 앉아 햇볕에 몸을 맡긴 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사치를 부렸다. 또 해발 4000m의 산에 올라 바라보는 네팔 히말라야는 언젠가 다시 갈 평생 잊지 못할 내 영혼의 여행지가 되었다.


나는 원래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깔끔한 스타일을 좋아했다. 지금과 다르게 수염도 매일 면도했었고.

네팔 여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수염을 길렀다. 면도를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지낸 시간이었고 내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사실 수염이 나는 형태도 볼 일이 없었는데 면도를 하지 않아서 어떤 형태로 수염이 나는 지도 알게 되었다.(보통 면도를 하면 자신의 수염이 어떤 형태로 나는지 모를 수 있다)


수염을 길러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런 모습을 처음 보는 꽃송이나 지인들의 반응을 보는 것도 재밌었다.


'자연스럽다고. 잘 어울린다고.'


내가 봐도 제법 잘 어울렸던 것 같아서 그때부터 수염을 기른 지금의 내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그 기억을 글로 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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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아빠가 까슬까슬한 수염으로 내 볼에 비벼대면 따갑다고 웃으며 발버둥을 쳤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래서 수염은 아빠를 떠올리게 한다. 그저 그리워서 수염 이야기를 했었는데 지금은 나도 내 어릴 적 아빠처럼 까슬한 수염으로 은율이 볼을 수염으로 문지른다. 아직 말을 못 하는 은율인 손을 휘둘러 내 머리채를 잡아당기지만 까슬까슬 수염 공격(?)은 포기할 수 없는 내 적극적 사랑 표현이다.


또 내가 은율이만 했을 때 아빠는 나한테 무슨 말을 했을까? 그저 상상해 보곤 한다. '음.. 내가 지금 은율이한테 자주 하는 말과 별 다르지 않았겠지?'라고 생각하며 은율이에게 많이 많이 이야기해야겠다. 글도 남겼고 학교 여행도 무사히 끝났으니 수염을 깎아야겠다.


- '사랑 그렇게 보내네' 노래와 함께_<아빠와 나 그리고 은율이의 연결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