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잠깐 뇌를 뺀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신데렐라 이야기를 정의한 사전을 보다가 이런 걸 발견했다. 원래 신데렐라가 신고 있던 유리구두는 원래 가죽구두 였으나 verre(유리)와 vair(가죽)이 헷갈려 유리구두로 잘못 번역이 되었단 이야기. 그래서 원래 가죽구두를 신고 있던 신데렐라는 졸지에 유리구두를 신게 되었고, 그게 이제까지 전해져 왔던 것이다. 처음부터 맑고 영롱한 유리구두를 신고 무도회에서 아름답게 춤을 추고 있었을 것 같은 신데렐라가 사실 가죽구두를 신고 있었을 거라니.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환상이 가죽구두 하나로 와장창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다 문득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생각이 들었다. 유리구두가 상당히 불편했을 거라는 생각 왜 한 번도 이런 생각을 못 했는지 모르겠다. 구두가 유리로 되어있었다면 정말로 불편했을 텐데 말이다. 이 맑고 투명한 유리구두에 제대로 된 인솔이 들어가 있을 리가 없다. 사람마다 각자의 체형이 있고, 그래서 신발은 그 형태에 맞게 변형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유리로 되어있는 구두가 체형에 맞게 변형이 될 수 있을까? 신데렐라의 몸 어디 한 군데가 틀어져 있었다면 무도회가 있었던 그 날 밤, 신데렐라의 한 쪽 발은 꽤나 고생했을 것이다. 게다가 굽까지 있어서 체중이 앞으로 쏠리게 되고, 그 체중을 고스란히 발가락이 다 받았을 건데 세상에 유리구두라니. 분명 앞코가 단단해도 무척 단단했을 것이다. 무도회가 끝나고 발톱이 안 빠지면 다행이다. 아마 나였으면 무도회고 왕자님이고 다 필요없이 12시가 되기도 전에 집에 가고 싶었을 것이다.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고 자라서 단련이 된 건지 신데렐라의 인내심은 정말 대단하다. 유리구두의 주인을 찾던 왕자는 유리구두 사이즈가 맞는 사람을 찾을 것이 아니라 발이 아주 망가질 대로 망가진 사람을 찾았어야 했을 것이다.
정말 당연하게 여겼던 신데렐라의 무도회는, 우리가 봤을 땐 정말 환상적이고 아름답지만, 어쩌면 신데렐라 본인에게는 고통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무도회에 가고 싶었지만 산더미처럼 쌓인 집안일을 다 해야만 했고, 요정할머니가 등장해서 무도회 착장을 만들어 주었지만 하필 구두가 유리구두이다. 게다가 12시가 되면 마법이 풀린다니, 아마 무도회장에서 신데렐라는 조마조마 했을 것이다. 매우 불편한 유리구두를 신고 왕자와 춤을 추지만 12시가 되어 뛰쳐 나가야 하는 신데렐라는 발도 마음도 불편했을 것이다. 무도회 즐기고 싶은 대로 즐기지 못한 아쉬움, 왕자에 대한 사랑 또는 미련, 가는 길에 마법이 풀릴까 하는 조마조마함, 마법이 풀린 후의 모습을 왕자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지 등. 아마 여러 마음이 교차하면서 불편한 유리구두로 계단을 뛰어 내려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동화는 ‘신데렐라는 왕자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로 끝나지만, 이 화려한 동화도 생각해보면 고통의 연속이다.
결국 신데렐라는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고통의 연속이지만 끝은 해피엔딩 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신데렐라는 버틸 수 있었던 걸까? 만약 내 삶이 해피엔딩으로 끝나 입에서 입으로, 동화책으로, 애니메이션으로 전해오는 동화가 된다고 한들, 나는 이런 고통을 견딜 수 있을까? 사양하겠다. 나는 예쁘고 화려한 유리구두를 신는 신데렐라보다 지금 편한 운동화를 신는 내가 되는 게 좋겠다. 해피엔드 보다는 해피앤드가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