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윤 May 13. 2023

첫 앨범을 발매하며

1. 들어가며

[Our Best Always] 앨범 커버

 오랜 기간 공들여왔던 첫 EP 앨범이 발매되었다. 수년 전 기타를 붙잡고 쓱싹 코드만 그려 놓은 곡부터 녹음 작업을 하던 와중에도 계속 수정을 거치며 골머리를 앓던 곡들까지, 또 '이건 분명 대박을 칠꺼야' 라며 쾌재를 부르짖던 순간부터 '그냥 음악 접어야 할까' 하고 막막했던 순간까지. 

 [Our Best Always]엔 나의 숱한 역사들이 세(世)를 구분짓는 층서(層序)처럼 켜켜이 퇴적되어 있다. 그러니 [Our Best Always]는 나의 청춘을 오롯이 대변한다 해도 결코 과언은 아니다. 한국 나이로 서른에 발매하는 이 앨범은 그렇기에 더욱 특별하다.

 이름없는 언더 그라운드 뮤지션의 음악을 구태여 찾아 듣는 이는 없을 터. 이렇게라도 앨범과 수록곡을 소개하는 짧은 글을 이곳에 적어보고자 한다. 이 글을 계기로 앨범을 접하는 이들에게 마치 어린 시절 놀이터를 뛰놀다 반짝이는 무언가를 주웠을 때 느꼈던 기쁨을 선물해주고 싶다.


2. 수록곡 소개

 1) <두 도시 이야기>

 첫번째 트랙 <두 도시 이야기>는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1859)에서 제목을 따왔다.

 그 해 봄의 에게 해는 4월임에도 종일 수영을 할 수 있을만큼 너그러웠다. 이따금씩 불어오던 바람은 아프로디테의 입맞춤 같았으며 저녁 노을은 상처 난 뺨처럼 무척이나 붉었다. 테라스에 기대 그 풍경을 바라보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떠올렸었다. 여지껏 「노르웨이의 숲」(1987) 속 구절만큼 석양을 아름답게 묘사한 글을 본 적이 없다.

 "세계의 모든 것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내 손과 접시, 테이블에 이르기까지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이 온통 붉게 물들고 있었다. 마치 특수한 과즙을 머리 끝에서부터 뒤집어 쓴 것처럼 온통 선홍색 일색이었다."

 그 해 6월의 베를린은 모닥불 아래 히피들과 추는 춤이었다. 우리는 시보다 짧은 밤을 웃음으로 채웠다. 춤을 추는 마지막 밤, 나는 그 순간이 이미 그리워질 것을 알고 숨을 참고 울었다.

 <두 도시 이야기>는 보드룸(Bodrum)과 베를린(Berlin), 'B'로 시작하는 두 도시에서의 추억을 그린 노래다. 비스듬한 청춘에 선처럼 누워 울고 웃었던 친구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2) <When Lavender Blooms>

 문명사에서 사과(apple)는 실제의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예컨대, 하와의 사과(선악과)는 헤브라이즘(Hebraism)을, 파리스의 사과는 헬리니즘(Hellenism)을, 뉴턴의 사과는 실증주의를 그리고 잡스의 사과는 디지털 테크놀로지 패러다임의 변화를 배태했다. 한편, 세잔의 사과는 사물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변화시켰다. 사과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그것이 말라 비틀어질 때까지 보고 그리며 연구했다던 세잔. 그의 작품은 훗날 피카소에게도 영향을 줬으니, 큐비즘(cubism)의 탄생에 젖줄을 댔다고 볼 수 있다.

 <When Lavender Blooms>는 남프랑스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의 사과 나무 아래 세잔과 압상트를 마시는 순간을 노래한다. 모타운(Motown)풍 리듬과 깁슨 기타의 단단한 사운드 그리고 빈티지한 건반이 어우러진다. 은은한 화음은 곡의 풍성함을 더한다.

 "사과 나무 아래 맨발로 서서 당신 모습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을지 몰라요. 우리는 술 취한 눈으로 춤을 추었었을 거에요. 자,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라 외치는 마지막 코러스는 폭발하는 기타 사운드와 맞물려 감정을 극으로 이끈다. 언젠가 엑상프로방스에 간다면 세잔의 영혼과 이 노래를 부르고 싶다.


3) <Soulmate>

 '필레오'. '우애' 또는 '형제애'로 번역되는 고대 헬라어다. 인문학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깊다면 '에로스', '스테르고', '아가페'와 같은 낱말을 한번쯤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모두 사랑을 지칭하는 말로, 각각 남녀 간의 사랑, 부모자식 간의 사랑 그리고 무조건적 사랑을 뜻한다. <Soulmate>는 그 중 필레오를 노래한다. 일상의 작은 연대마저 무너지는 시대에 목숨을 내줄 만큼 사랑하는 친구가 있다면 좋겠다.

 디스코와 펑키 리듬 위에 베이스 라인을 얹고, 리듬 기타와 싱글 뮤트 그리고 브라스를 풍성히 쌓아 올렸다. 고민 끝에 탄생한 기타 솔로까지. 시티팝의 문법을 조금 차용했다. 곡의 엔딩을 장식하는 세번의 탐은 타케우치 마리야의 <Plastic Love>의 그것을 오마주했다.


4) <Ghibli>

어머니, 당신과 함께여서 행복했습니다.

모처럼 날이 맑아 땀이 송글 송글 맺혔네요.

어머니 얼굴에 드리워진 고생의 흔적이

쇠해진 신전 앞에서 부쩍 눈에 밟혔습니다.


지중해 문어 요리와 향긋한 치즈 앞에서

당신은 매콤한 라면이 더 땡긴다며

그간 볼 수 없던 여자들의 약을 집어 삼키더군요.


나는 못본 체하며 당신 몫의 문어 다리까지

먹어치웠지만

그날 밤 몰래 방을 빠져나가

밀려오는 파도 소리 들으며 엉엉 울었습니다.


아테네, 2018


3. 나가며

 녹음 과정만큼이나 앨범명을 정하는 일은 무척 어려웠다. 앨범명으로 낙점받기 위해서는 우선 몇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했다. 우선, 나의 20대를 충분히 관통할 수 있어야 했고, 아름지기 풍경을 연상시켜야 했으며, 구(句) 형태여야 했다.

 어린 시절 잠시 오스트레일리아에 있었을 때 본 교훈이 기억났다. ‘Our Best Always’. '항상 최선을 다하자' 쯤으로 해석될 수 있으려나. 젊은 날의 나는 항상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했다. 이 앨범이 그 증표가 되어줄 것이다.

학교 로고

[앨범소개]

언제나 좋을 우리 젊은 날, 청춘에 건배!

[Our Best Always]-HÆSİSİ(해시시) - YouTube


[Credit]

Song/Lyrics 김세윤

Arranged HÆSİSİ

Drum 김성하

Bass 이상혁

E.Guitar 이배인

Piano, All MIDI Works 김세윤

Sound Engineering 현명은, 이배인

Mix/Master 프리거, 이배인


함께 해준 소중한 친구들에게 그지없는 고마움을 전한다.

작가의 이전글 베를린, 측백나무 숲에 깃든 초여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