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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지감자 Sep 21. 2023

석사 칼졸업 실패기

5학기라도 괜찮아

9월 등록금을 냈다. 이번에 수료생 등록금이 올라서 눈물을 흘리면서 낼 수밖에 없었다. 이전 글에 "이번이 막학기다"라는 말을 많이 했는데, 결과적으로 나는 칼졸업에 실패했다.


학기가 이미 시작해 버린 지금에야 담담하게 말할 수 있지만, 당시 나는 정말 힘들었다. 대학원을 들어오면서 나의 목표 중 하나는 4학기 만에 졸업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학생이 초과학기를 거친 후 졸업하는 우리 학과의 전통을 끊고 싶었기도 하고, "어차피 5학기에 졸업할 거다"라는 선배의 자조 섞인 조언(?)에 오기가 발동하기도 했다. 나는 졸업만을 바라보면서 아득바득 밤을 새우고 새벽공기를 마시면서 집으로 갔다.


졸업 준비는 꽤 순조로웠다. 걱정했던 졸업시험도 한 번에 통과했다. 영어점수도 벼락치기한 것 치고는 괜찮은 점수를 받아서 문제없이 제출할 수 있었다. 학회에 포스터를 거는 건 이미 수도 없이 해온 일이었다. 졸업을 위한 모든 조건을 문제없이 갖추어갔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보통 졸업을 위해서는 학과 내규와는 별개로 연구실의 내규 조건도 달성해야 한다. 우리 연구실의 경우엔 한 사람이 자신이 한 연구를 책임지고 논문까지 작성해야만 졸업 허가가 떨어진다. 비록 석사라 해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2년 동안 내 마음같이 돌아가지 않는 연구 결과에 마음을 졸이고 화를 내고 애를 태웠다. 희망고문 같았다. 애초에 내가 생각하는 연구와 교수님께서 기대하는 연구의 완성도 자체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얼마나 해야 논문을 쓸 각이 나오는지 나로서는 알기 어려웠기 때문에 매 순간 기대하고 좌절했다. 괴로웠다.


교수님께서는 <딱 마지막 결과만 나와서 정리하면> 졸업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결과를 내지 못했다. 나 스스로도 마음이 조급하고 아주 방어적이라는 게 느껴졌다. 온당한 조언을 해도 그 당시의 나는 공격으로 받아들였다.


결국 교수님께서 지금의 결과만으로는 졸업논문을 쓰기 어렵다는 말씀 하셨다. 분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노력해도 졸업을 못하면 나는 뭘 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냥 포기해야 할까?


그동안 부모님과, 남자친구와, 교수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나의 현재 건강 상태와 미래 계획들, 걱정들. 나는 정신적으로 몰려있었다. 감사하게도 부모님은 내가 너무 힘든 걸 참으면서 학업을 계속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했다. 덕분에 나는 부담감을 조금 내려놓고 나만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었다.


한 학기를 더 다니면서 논문을 준비하기로 결정한 뒤 한 달간 나는 초과근무를 하지 않았다. 뭐 어쩔 건데? 누가 나에게 뭐라고 할 수 있는데?라는 마음가짐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한 학기 졸업이 밀리면서 나는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어째서 내가 이렇게까지 괴로워하는지에 대해 깊게 고민할 수 있었다. 나는 조금 더 이기적이게 되었다. 나는 오롯이 내 선택으로 남아있는 걸 선택했고, 모든 사람이 내 결정을 존중했다. 매우 신선한 경험이었다. 이제껏 나는 누군가를 만족시키는 선택을 해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부모님께서 내 삶이 오롯이 내 것이라는 걸 인정해 준 것 같아서 나는 처음으로 내 삶이 내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음이 많이 안정된 개강 한 달 차의 나는 이제 새롭게 졸업을 준비 중이다. (설마 한 학기 더 시키지는 않겠지^^) 다시 차근차근 연구 결과를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현재는 투고할 학술지에 맞추어 논문 수정도 막바지다.


누구 말마따나 이게 나의 인생 최대의 좌절은 아니겠지만. 그러나 꽤 나를 힘들게 했던 6개월이었다. 언젠가는 웃으면서 이때를 떠올릴 수 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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