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을 다니면서 구두발표는 나에게 항상 로망의 영역이었다. 졸업하기 전에 한 번은 해봐야 하지 않겠나 싶은. 그러나 매번 학회 투고 직전 내 초록의 상태를 보면 내가 봐도 이걸 구두발표로 뽑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나는 항상 일정에 치여서 마지막에 후다닥 초록을 완성하곤 했기 때문이다. 급조한 초록이 남 눈에도 멋져 보일 리는 없었다.
아마도 이번이 내가 참석하는 마지막 학회가 되지 않을까 싶었던 나는 이번에야말로 로망을 실현시켜야겠다 생각했다. 마침 나는 이제 10회가 넘게 학회에 초록을 내보았고, 논문 정리도 하고 있는 막학기 학생! 이보다 적기는 없었다. 나는 야심만만하게 연구를 정리하여 초록을 따악 내놓았다.
그리고 본 학회 일주일 전에 학회 측에서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학술위원회 논의 결과 2023 추계학술대회 구연 발표자로 선정되셨음을 알려드립니다."
Dreams come true!
그러나 두근거리는 마음과는 달리 손은 땀으로 흥건해졌다.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게 그리 큰일이아니라는 걸 잘 알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욱 발표가 하고 싶었다. 질문을 받고 조리 있게 말하는 연습을 하고 싶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거, 아예 정면으로 부딪치자는 거다.
이번 구두발표의 목표는 하나였다. 제대로 준비하자.
내가 항상 발표에 자신이 없었던 이유를 최근에 진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준비되지 않은 채로 발표무대에 던져졌기 때문이다.
어떤 과업이든 간에 나는 마지막까지 붙들고 가는 스타일이었다. 예를 들어 어떤 논문에 대해 발표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을 때, 나는 논문 내용이 이해되지 않으면 발표 10분 전까지 내용을 들여다보는 사람이었다. '나의 이해'에 모든 에너지를 쏟다 보니 어떠한 사전 연습도 없고, 남을 이해시키려는 노력도 미비했다. 내 발표는 항상 내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하고 마무리되곤 했다. 아는 것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면 나는 또 아쉬움에 반나절을 몸부림쳤다.
사실 멀지 않은 때 학과 학우분들 앞에서 개인 연구를 발표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그때도 똑같은 일을 경험했다. 그제야 나는 이게 생각보다 큰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2년을 넘게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 걸, 그것도 모국어로 말하고 있는데, 같은 전공 사람들에게 제대로 이해시키지도 못하다니? 이러고도 내가 학위를 받는 게 온당한지에 대한 의문까지 들었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니 이번 구두발표는 이전의 수모를 갚을 수 있는 일종의 리벤지 매치였다. 이번에는 반드시 그런 일이 없게 해야겠다. 꼭 리허설을 해야겠다! 그래서 누군가는 꼭 이해를 시켜보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