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1시. 오늘 나는 나의 내면이 하는 말에 순순히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힐러리 한이 연주한 엘가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으면서 오랜만에 글을 쓰기 위해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오래간만에 글을 쓰려니 한 문장도 겨우 썼다. 그렇지만 내가 진정으로 바라던 것이 이거였다.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면서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
그동안 축하할 만한 일은 많이 있었다. 1 저자로 낸 논문이 최종 accepted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현재는 published 되었다. 석사 디펜스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전의 전쟁 같던 상태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후 나는 제대로 고장 났다. 오랜 긴장에서 풀린 탓일까? 나는 내 졸업을 확신하자마자 몸살부터 걸렸다. 최근에는 일정 컨디션이 서로 돌아가면서 삐걱였기 때문에 나는 마음을 차분히 둘 곳 없이 그저 매일을 버티기만 했다. 하루는 모니터 앞에서 괴로워하다가 다른 날은 병원을 전전했다.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눈물을 자주 흘렸다. 엄마는 내가 대학원 생활이 많이 힘들었냐고 물었다. 나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눈물에는 감정이 담겨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냥 어딘가 약해져서 툭 치면 내면이 툭 흘러나오는 상태가 된 것뿐이었다.
랩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며칠을 집에서 쉬었다. 하루종일 잠을 자고 일어나면 밥을 먹었다. 심장이 두근대고 머리가 어지러워서 이러다가 심장마비가 오면 어떡하지 실없는 고민도 해봤다. 어지러움에 제대로 뒤척이지도 못해 눈물을 옆으로 흘리면서 나는 나의 고통의 근원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타고나기를 완벽주의자로 태어나서 무언가를 시작하면 마음에 들 때까지 고치고 또 고치고, 퇴고에 퇴고를 반복하는 타입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이 너무나 벅차서 동시에 시작하기를 어려워하기도 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전형이었다. 이 마음을 버리고 싶어서 어떤 일을 최대한 빨리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뒤 만족할 때까지 해보자는 게 내 대학원 생활의 목표였다. 그래서 나는 자주 "녹초가 될 때까지" 일을 했고 지치지 않으면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워하며 집으로 갔다. 최선에 대한 강박은 점점 심화되었던 것 같다.
문제는 그 마음을 몸이 따라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의지만 있다면 모든 것이 될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체력이 버텨주지 못해서 집에 일찍 퇴근할 때 나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신체의 회복기에 욕심을 버리는 연습을 했다. 집에 누워서도 하루빨리 논문 초안을 수정하고 결과를 내고 싶어서 안달복달하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마음만 병들어갔다. 결국 마지막으로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께 우선적으로 안정을 취하라는 말을 듣고는 더 이상 아무것에도 신경 쓰지 않고 빨리 낫는데만 온 정신을 쏟았다. 건강이 회복됨에 따라 신기하게도 요동치던 마음도 고요한 평화를 되찾아갔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특히 나처럼 오랫동안 앉아 있는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명심해야 하는 말이다. 이 말을 직접 겪고 나서 깨닫고 싶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가만히 생각만 하고 있으면 점점 더 사고가 극단적으로 되곤 했다. 체력이 받쳐주어야만 이 휘몰아치는 생각이 제어가 되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그동안은 주변사람들에게 떠밀려 시작한 헬스가 내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막아주었던 것 같았다. 운동할 때에는 시끄러운 머릿속이 스위치를 끈 듯 잠잠했다. 디펜스 준비를 핑계로 헬스장에 꽤 오랫동안 가지 않은 게 내 전신 파업의 시발점이 아니었나 조금 반성했다.
오늘부터 나는 다시 헬스장으로 간다. 어쨌거나 건강해야 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몸이 버티지 못하면 정신도 버티지 못한다. 학문의 길이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스스로를 더 챙겨야만 한다. 그래야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을 버틸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