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박사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그 무엇보다 어렵고 난감할 수도 있는 항목을 소개하겠다. 개인적으로도 자세히 서술하기 아주 망설여졌고 나에게 가장 상처가 된 그 항목. 바로 추천서다.
미국은 레퍼런스의 나라라고들 한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기회의 땅이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미국은 모든 것이 인맥으로 굴러간다고 한다. 그래서 아주 강력한 추천서가 있으면 미국 대학원 문을 열기 상당히 유리하다는 말이 있다.
미국으로 박사 유학을 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 개의 추천서가 필요하다. 학생들은 자신을 가까이 지켜봐 왔으며, 자신의 장점을 잘 알고 있는, 그리고 연구 능력을 입증해 줄 교수님께 추천서를 부탁하게 된다. 여기서 일차적으로 어려운 점이 생기는데, 대개 학생들은 교수님들과 가까이 교류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교류가 있는 교수님은 학부나 대학원 지도교수님인데. 그러니 최대한 내가 수업을 들었던 교수님들께 부탁을 하는 게 보통 선택하는 방향인 것 같다.
나는 이 점에서 다른 사람들보다는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개인적으로 교류가 있었던 교수님이 꽤 많은 편에 속했기 때문에 나는 내가 추천서 걱정이 없을 줄 알았다.
나는 학부 졸업논문을 작성한다고 오랜 기간 연구실 인턴으로 생활했었고, 유의미한 좋은 연구 결과를 내어 교수님께 지금껏 지냈던 인턴 중 가장 많은 일을 해냈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개인적으로 가르침을 받고 비록 완성하지는 못했으나 꽤 오랜 기간 함께 연구를 진행했던 아주 존경하는 은사님도 계셨다. 교수님께서는 내가 유학 의사가 있음을 밝혔을 때 추천서가 필요하면 꼭 잘 써주겠다고 항상 말씀해 주셨다. 대학원 생활도 정말 열심히 했다고 자부했다. 연구실에서 아무도 하지 연구분야를 시작해서 독자적인 연구를 주도했고논문 작성 중에 있었다. 지도교수님께서도 연구분야에 대해서는 나를 강하게 신뢰하고 계셨다.
나는 이렇게 세 분께 내 추천서를 부탁드리려고 했다. 교수님들께서는 따뜻한 격려의 말과 함께 흔쾌히 추천서 작성을 수락하셨다. 단 한분, 지도교수님만 제외하고.
지도교수님께서는 내가 조금 더 졸업 준비에 집중하기를 바라셨다. 하지만 나는 나의 다음 스탭이 더 중요했다. 현재를 확실히 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라는 말도 타당할 수 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아니었다. 나는 충분히 졸업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다음을 준비해야만 하는 때였다.
지도교수님과의 면담 이후 나는 적지 않은 상처를 받았고, 이런 일을 추오도 예상 못하여 너무나 크게 당황하여 교수님을 설득하지 못했다. 결국에는 나는 지도교수님으로부터 추천서를 받지 못했다.
정말 절망적인 심정이었지만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으므로 빠르게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나는 지도교수님의 추천서가 없는 어딘가 이상한 학생처럼 보일 것이냐, 아니면 1년의 시간을 더 투자하고 그로부터 6개월이 더 지난 뒤에 출국을 할 것이냐의 기로에 서있는 셈이었다.
나는 이 시기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이런 문제 때문에 성공할지 아닐지 알지도 못하는 도전이 1년 반이 밀려서 그동안 이 피 말리는 준비를 더 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하고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든지 간에 유학 준비를 진행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도교수님께는 비록 받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추천서는 세 분께 받아야 했다. 고민 끝에 한 분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석사과정 동안 연구에 참여하여 논문 출판까지 했던 수업 교수님이셨다. 그분은 비록 연구교수님이셨지만, 내 연구의 많은 부분을 알고 계셨고, 내가 장차 하고 싶은 연구의 방법론이 전문 분야셨다. 게다가 그 교수님은 이 당시 어느 사립 대학에 신임 조교수로 부임하시기 직전이었으니 더 좋은 상황이었다. 염치없게 느껴져 마지막 남은 용기를 쥐어짜 내어 부탁을 드렸더니 교수님께서는 밥을 한 끼 사주시며 흔쾌히 추천서 작성을 수락해 주셨다. 교수님께서 사주시는 고기를 먹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었다.
추천서를 열람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체크를 하기는 하지만 추천서의 초안은 학생이 작성하는 경우가 많았다. 추천인이 추천 대상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학생이 강조하고 어필하고 싶은 부분을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나는 최대한 연구에서의 적극성과 성실성, 그리고 융합 연구에 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나를 곁에서 많이 지켜봐 오고 함께 연구를 했던 존경스러운 교수님들께 추천서를 받았지만, 결국에는 내가 진학하고자 하는 분야와 직접적인 연결이 되는 교수님의 보증을 받지는 못했다. 그래서 추천서의 방향은 '어떤 것이든 적극적으로 잘 해내며, 융합적인 사고에 능한 학생'이었다.
여전히 생각하곤 한다. 이때 비록 나를 잘 알고, 나를 지도하셨지만 내 연구분야와 다른 교수님의 추천서를 받는 게 맞았을까, 아니면 나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연관 분야의 교수님께 추천서를 받는 게 맞았을까? 나는 전자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정답은 후자였을지도 모르겠다.
추천서는 나의 불안함의 근원이 되었다. 나는 내가 가장 애정을 가지고 가장 많이 시간을 투자한 연구에 어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었다. 스스로도 이것이 강한 단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나는 할 수 있는 부분을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