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컴 타자연습기가 만들어준 우리나라 문학의 명문장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 )
일본의 근대문학을 통틀어 손에 꼽히는 명문장으로 유명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雪國), 유키구니》의 첫 문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 문학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가장 인상적인 도입부로 꼽는 문장이다. 한 줄의 문장이지만 그 안에 담긴 고요함과 고독감은 잔잔하게 퍼져나가며 독자를 감싸 안는다. 그 문장은 터널을 빠져나가는 장면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순간의 공기, 온기 없는 풍경, 고립된 감정을 한데 묶어 우리에게 던진다. 일본 문학의 미학적 정수를 보여주는 이 문장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독자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사람들 마음속에 작은 설국을 만들며 남아 있다.
나에게도 그런 문장이 있다. 어린 시절, 한컴타자연습에서 익히며 무심코 외웠던 우리 문학의 문장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박두진의 『청산도』, 함석헌의 『들사람 얼』 같은 작품들의 문장은 그때는 그저 타자를 치며 스쳐 지나갔지만, 어느새 내 삶 깊숙이 스며들어 나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타자 연습을 하며 나는 몰랐다. 손끝으로 느낀 글자들이 나의 감정과 경험으로 새겨질 줄은. “여름장이란 에시당초에 글러서…”로 시작하는 그 문장은 장터의 고단함과 여름의 열기를 그대로 전해주었고, 박두진의 『청산도』는 청산의 고요한 푸르름을, 함석헌의 『들사람 얼』은 들사람의 거친 숨결을 느끼게 했다. 문장은 내 안에 남아 나의 언어가 되고, 때로는 나의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나는 윤동주의 『서시』, 이육사의 『절정』, 기형도의 『질투는 나의 힘』을 외우며 그 문장들이 지닌 무게를 느낀다. 그 문장들은 단순히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순간마다 고개를 들고 나를 위로하거나 일깨워준다. 문장을 씹고 뜯고 곱씹을 때, 나는 그 언어가 나의 것이 되는 경험을 한다. 작품을 읽고 이해하는 것을 넘어, 그 언어를 내 감각으로 느끼고 체화하는 과정은 내게 문학을 즐기는 인간다운 방법임을 깨닫게 한다. 문학은 그저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나와 대화하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요즘의 문학교육은 다르다. 작품의 해석과 평가, 의미와 의의에 집중하며 분석적인 접근에 치중하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정작 문학의 언어를 직접 느끼고, 그 문장들이 내 삶 속에서 어떻게 울려 퍼지는지 체험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문장은 머리로만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고 손끝으로 새겨질 때 비로소 우리 삶 속에 살아 숨 쉰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이효석의 문장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의 감정과 고요한 정서, 서늘한 정를 그대로 전해준다. 박두진의 『청산도』에서는 청산의 푸르름이 내 안에서 일렁이고, 함석헌의 『들사람 얼』에서는 들사람의 고단함과 결기가 나를 일으킨다. 문학의 문장들이 내 삶에 스며들어 나를 지지하고, 그 존재만으로도 나의 일상을 풍요롭게 만든다.
누구에게나 가슴속에 품고 있는 문장이 있다면, 그 문장은 삶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된다. 그 문장은 때로는 나를 위로하고, 때로는 나에게 질문을 던지며, 삶의 어느 순간에서든 길을 찾도록 도와준다. 문학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그 한 줄의 문장이다. 내 안에 자리 잡은 그 문장은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려주는 나침반이 되어 준다. 문학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당신의 가슴속에도 평생을 함께할 문장이 있기를 바란다. 그 문장이 당신의 삶을 지탱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할 힘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