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 원의 의미
아침에 오랜만에 일찍 일어나 부스스 나갔다. 거실에서 화투짝을 맞춰보는 엄마를 행해 43세 딸은 응석을 부린다.
“엄마아아아아아아아-”
“아이고 깜짝아!!!!! 아이고 돼지가 왜 이렇게 새벽같이 일어났어? (아침 8시)”
“어제 나 ㅇㅇ만나서 두 시간을 떠들었더니 마음이 무척 가벼워졌는지 오랜만에 푹 잤어. 나 한 번도 안 깨고 계속 잤어!”
“그런 것 같더라. 새벽에도 안 일어나는 것 같데? 화장실도 안 가고…”
모녀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내가 태어나서 옹알이를 할 때인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19세에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시골집에 시집와서 고생하며 나를 키운 이야기. 내가 젊었을 때는 그 소리가 참 듣기 지겨웠는데 지금은 나도 한 가정의 살림을 해 본 사람으로서 엄마의 고충을 누구보다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태어난 1981년은 대한민국이 산업발전과 외화벌이에 무척 활발했던 때로 우리 아빠도 사우디아라비아에 건설현장으로 파견을 나갔었다. 단단히 결심을 하고 간 모양인지 어쩐지 모르지만 돌아올 때까지 돈을 한 푼도 안 보낸다고 하며 갔단다. 그때만 해도 어렸던 엄마는 (23세) ‘말은 그렇게 해도 애들 먹일 돈은 보내주겠지…’ 하면서 보냈단다.
아침마당에 나온 심리상담사가 한 말이 떠올랐다. 한국사람들 특성이 ‘그렇겠지… 누구누구가 알아서 이렇게 하겠지’ 한단다. 우리가 독심술사도 아니고 모두가 다른 개인인데 어떻게 남의 속을 알겠는가!
“아니 아빠가 엄마가 뭘 생각하는지 어떻게 알아… 나 애 키워야 하니 그래도 이만큼은 최소한 좀 보내달라, 분명히 말을 했어야지! “
엄마는 억울한 표정 반, 풀 죽은 표정 반응
하며 ”이역만리 가족들 뒤로 하고 해외로 나가는 니 아빠한테 돈 이야기를 할 수 없었어…“라고 했다.
그렇게 아빠가 해외로 외화를 벌기 위해 떠나고 나서 7개월 된 내가 무척이나 아팠단다. 아파서 우는 아이를 가슴에 안고 이제 23살인 엄마는 너무 서럽고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단다. 딸아이에게 무심했던 시모는 그저 애들은 아프면서 크는 거라고 시큰둥했고 시골집에는 간신히 먹고 지낼 쌀만 있을 뿐 돈이라고는 한 푼도 없었단다. 애가 열이 펄펄 나서 금방이라도 잘못될 거 같은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스스로가 너무도 싫었다고 했다. 그때를 생각하며 눈가를 붉히던 엄마는 결국 닭 똥 같은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그런데… … 그때 내가 너를 안고 너무 어찌할 바를 몰라 서러워서 우는데 …니 할아버지가… 니 할아버지가 그 말 없는 양반이 … 때 묻은 꼬질꼬질한 조끼에서 돈 3천 원을 꺼내주면서 나보고 병원에 다녀오라고… 내가 아픈 너를 안고 그게 얼마나 고마운지 지금이라도 살아계시다면 지금이라도 그 은혜를 꼭 갚고 싶어!!!! “
엄마는 펑펑 울었다. 1981년에 3천 원은 누가 계산기로 두드린 듯 1시간에 한 대 다니는 버스를 타고 병원에 가서 아기 주사를 한 대 맞히고 다시 한 시간을 기다려 버스를 타고 집에 올 돈이었단다. 딱 그만큼의 돈이라 아파서 탈진한 애기한테 요구르트 하나를 사 먹이지 못했다며 그게 여태 한이 됐다고 한다.
“이런 무능한 엄마가 있나. 내 새끼가 그렇게 아파도 요구르트 하나 못 사 먹이고 그렇게 사니… 내가 진짜 그때 얼마나 결심을 했는지 몰라. 엄마도 능력이 있어야 내 새끼 맘껏 해주고 싶은 거 하면서 키우는구나. 그때부터 내가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
그 이후에도 나는 자주 아팠고 결국 보다 못한 할머니가 어찌 저지 친척들을 통해 연락을 해서 돈을 받았는데 그 돈도 엄마한테 보낸 게 아니라 그 당시 학력이 좀 있었던 고모부에게 보내서 그 돈을 할머니 할아버지가 쥐고는 간절히 애원해야 주는 식이었다. 어린 애엄마가 도망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을 수 있었지만 엄마는 그때 더더욱 내가 능력이 있어야 하는구나, 내 돈을 벌어야 하는구나, 결심을 했다고 한다. 나는 엄마의 그 마음이 너무나도 이해가 되었고 지금은 통뼈로 자라 잠병치레가 없는 나이기에 내가 어릴 때 그렇게 아팠는지 전혀 몰랐기에 너무나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은 할아버지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아니, 어제 산 LA갈비를 쪄서 작은 제사라도 지내야겠다.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엄마! 너무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