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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샌프란 곽여사 Mar 29. 2024

뛰는 노인을 보며 욕하던 내가 이제는 박수치는 이유

자신을 책임지는 단단한 마음

공원 같은 자리를 매일 뛰는 할머니

‘대체 얼마나 오래 살려고 저렇게 뛴데??’


쓰러질 듯 헐떡이며 뛰는 노인은 90세가 가까워 보였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앙상한 팔다리를 힘겹게 휘저으며 눈 밑으로 축져진 살을 출렁이며 뛰고 있었다. 자신들의 몸 무게도 감당 못해 앞 팔을 나무늘보처럼 축 늘어뜨리고 숨이 차 입을 헤-벌리고 무표정으로 뛰는 모습이 괴이하고 보기 흉했다. 검버섯이 온통 뒤덮인 마르고 버석한 얼굴은 노인의 남은 생이 많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충분했다. 살랑이며 뛰어가는 젊은 처자의 몸을 헐떡이며 스쳐 지나가는 깡마른 몸의 대비가 기괴할 정도로 컸다. 마치 푸릇하게 생동하는 이 풍경에 오점인듯해서 눈썹이 씰룩인다. 아니, 그 나이에 대체 무슨 영광을 보려고 그렇게 뛰나. 집에서 편하게 좀 쉬지…

머리가 하얀 노인커플


달리기 초반, 나는 펑퍼짐한 바지와 두툼한 패딩을 걸치고 자기만큼 나이 든 노견들을 산책시키는 할머니들과 마른 가죽만을 걸친듯한 할아버지들을 보며 한심한 우월감에 빠져있었다. 나 정도는 되어야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 사이에서 있을 자격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노인네들이 그만큼 살았으면 됐지 너무 욕심이 많다고 속으로 욕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리기를 거듭할수록 180도 달라졌다.


1달이 지나자 내 혈압은 정상범주로 돌아왔고 무겁던 뒷골과 널뛰던 심장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당신이 아프면 땅을 팔아서라도 병원비를 내줄게.’


비장하게 말하던 남편이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고혈압으로 고생하던 나를 보며 밤잠 못 이루던 사람이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2달이 지나자 엄마의 반응이 달라졌다. 시작은 잘해도 끝맺음이 없던 나를 항상 반쯤은 비웃으며 바라보던 엄마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지영아, 남들은 암이다 수술이다 그렇게 병원치레가 많다는데 너는 이렇게 건강하니 엄마가 참 안심이 돼. 건강하게 살아줘서 고맙다. 이역만리 먼 이 땅에서 네가 아프다면 엄마가 마음이 아파 정말 힘들 텐데 고마워.‘


나 좋자고 달리기를 시작했지만 사실은 내 한 몸 단련하는 이 행위가 주변의 모두를 구하는 일이다.


내가 건강하게 살아서 부모님의 마음이 편하고, 내가 건강하게 살아서 배우자의 걱정이 줄었다.

쓰러질듯 달려나가는 할머니

90세 노인의 마음도 분명 그랬을 것이다. 나 하나를 단단히 건사하며 사는 일이 내 가족들을 하루라도 맘 편하게 살게 하는 일이라고 열심히 스스로 단련하며 사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치졸한 마음으로 알량한 젊음을 뽐내던 나 스스로를 한 대 쥐어박고 싶어졌다. 집에서 누구의 손으로 삶을 연명하는 대신 힘들어도 나와서 뛰는 그 모습에 큰 박수를 보내게 되었다. 내 건강이 가족의 평화라는 것은 건강이 깨지기 전에 깨닫기 어렵다. 공기처럼 물처럼 항상 작동하던 몸이 멈출 때는 늦는다.


나는 오늘도 큰 박수를 보낸다.

할머니, 할아버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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