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울려 대는 전화벨 소리에 인내심을 빼앗겼다.
“잠시 전화받고 올게요.”
치매 할머니와 함께 식사를 하던 손녀딸이 전화를 받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잠시 후 돌아와 보니 떠나기 전과 크게 바뀐 부분을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고요했다. 고요함은 손녀딸에게 안심을 전해 주었다.
식탁에 펼쳐진 반찬통의 뚜껑을 모두 닫아 냉장고에 수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음날 반찬을 꺼내 먹으려고 하는 찰나 맛이 약간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 그랬을까?
이 장면을 앞으로 돌려보니 손녀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치매 할머니는 반찬 통의 반찬들을 조금씩 꺼내 다른 반찬들과 섞고 있었다.
젓가락으로 몇 가닥 정도를 들어 올려 흔들어 놓았기에 육안으로 관찰이 잘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혀까지 속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혼자 식사하실 수 있는 치매 어르신이니 잠시 자리를 비워두고 다녀오거나 다른 일을 해도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만든 상황이다.
식사 상황을 예로 들었지만 위와 같은 상황은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
치매 돌봄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어르신에게서 눈을 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인지기능이 저하되어 위험한 것과 위험한 것을 구별할 수 없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것이면 먹지 말아야 할 것도 만지고 입에 넣는 행동을 한다. 또는 판단력의 저하로 일의 성격을 알 수 없어 뜨거운 음식을 식히지도 않고 입에 넣기도 한다.
이보다 더 어려운 것은 상태에 따른 증상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치매는 증상별로 초기, 중기, 말기 상태를 나누어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무를 자르듯이 뚝 잘라 여기까지는 초기, 여기서부터는 중기라고 정의할 수는 없다.
치매로 인해 발생하는 증상도 감정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감정 상태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으면 문제행동(치매로 인해 발생하는 정신행동증상)이 확실히 줄어든다.
그러나 감정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감정조절이 가능한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조절이라기보다 융통성 있게 대처하며 사는 것을 택한다.
난 예측이 되지 않을 때 선택하는 것이 기다림이다. 방향을 알 수 없고, 때를 알 수 없다면 하염없이 기다린다. 무턱대고 기다리는 하염없음이 아니라 믿음을 실은 기다림이다.
치매로 인한 증상도 예측할 수 없다면 기다림을 선택해 보는 것은 어떨까?
믿음을 실은 돌봄이란 적절한 돌봄을 제공할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다림과 마주해야 할까?
치매 어르신을 돌볼 때 감당해야 할 역할들이 많지만 감독의 역할을 떠올려 보면 된다. 감독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궁금하다면 운동경기를 생각해 보자.
감독은 운동경기를 하는 동안 경기장을 떠나지 않는다. 경기장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앉아 시작부터 끝까지 관망을 한다. 이것이 기다림이다.
게임을 진행하는 선수들보다 더 속이 타고 힘든 사람이 감독일 수도 있다. 사람은 행위를 하며 보내는 시간에 익숙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무위를 견뎌내는 것이 더 힘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경기가 끝날 때까지 오로지 관망만 하다 역할이 끝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경기를 관망하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코치를 불러 코칭을 시작한다.
그 방법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때는 직접 경기장으로 투입해서 선수 입장을 대변하기도 한다. 언제든 도움이 필요할 때는 바로 투입할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독의 역할을 치매 돌봄에도 적용하면 된다. 조용히, 묵묵히 넓은 마음과 기다림으로 그저 바라만 보는 것도 중요한 돌봄이다.
그러나 내 눈을 어르신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일은 절대 하면 안 된다. 감독이 선수들을 두고 다른 곳으로 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관망을 하다가 돌봄이 필요하면 지체하지 말고 바로 도움을 제공하면 된다.
어떤 행위를 해야만 돌봄을 한다는 생각을 과감히 버리기 바란다.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라보는 것이 더 큰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방목을 하고 있어도 언제나 마음은 그곳에 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관심이다. 한 발을 나아갈 수 있지만 멈추어 있는 상태, 그 발걸음은 나보다 상대방을 위하는 배려가 붙들어 놓은 멈춤이다.
감독이 선수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으니 그저 그곳에서 눈을 떼지 않았던 것처럼 치매 어르신을 돌볼 때도 눈을 떼지 말자. 대신 먼저 나아가지도 말자.
소리 없이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하는 감독이자 돌봄 자가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