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고 좋은 것을 농담하며 만들었는가
ㅣ창작과 농담ㅣ
이슬아의 창작 동료 인터뷰
헤엄출판사
당신은 왜 그런 당신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어쩌다 그런 것을 만들게 되었는지도요.
작가이자 인터뷰어인 이슬아가
흠모하는 예술가들을 만난다.
창작에는 어떤 기쁨과 슬픔이 있는지,
직업으로서의 창작자는 어떤 생활을 하는지,
탁월함을 추구한다는 게 무엇인지,
어떻게 성공하거나 실패하며 무언가를 계속 만들고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 나눈다.
밴드 새소년의 황소윤, 레즈비언 김규진, 장기하, 강말금, 김초희, 오혁.
여섯 명의 쟁쟁한 아티스트들과의 긴 대화를 담았다.
2020년, 2021년에 걸쳐 일간 이슬아에 연재된
인터뷰 원고를 다듬은 책이다.
l 목차소개 l
황소윤 - 걱정 마 시스터
김규진 - 일과 사랑의 천재
장기하 - 말 같은 노래, 노래 같은 말
강말금, 김초희 - 절망에게 바치는 유머
오혁 - 멋과 미에 관하여
에필로그
ㅣ 감상ㅣ
#고유의 멋, 오리지널리티에 대하여
황소윤, 김규진, 장기하,
강말금, 김초희, 그리고 오혁.
글, 음악, 사진, 영상, 그림, 무용과 같은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며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은 아티스트들이 나온다.
장기하와 오혁은 알고 있었지만 다른 이들은
이슬아의 책을 계기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명확하면서도 유연한 사고를 하는
사람들인 것 같아서,
자신의 고유성을 단정하고 성실하게 다듬어가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 같아서,
작품 너머에 있는 그 사람 자체에 대해 궁금해졌다.
이들뿐 아니라 몇 십년에 걸쳐 대중으로부터
무한한 지지를 받거나,
혹은 한 세기 후 재조명을 받은 아티스트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첫째, 고유의 '멋'이 있어야 하며
둘째,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또 다른 조건들을 이야기했으며,
그 생각에 동의한다.
멋이 있고, 의미가 있는 것을
한 두번은 만들어낼 수 있을지라도,
그런 멋진 것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처음 어떤 가수의 음악을 들었을 때
'이 노래 좋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더라도,
만약 그와 비슷한 스타일의 곡만 쓴다면
'좋다' 라는 느낌은 한 두곡으로 그칠 수 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스타일을 갱신시켜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즉 멋과 의미를 갖추고
지속적인 레벨업을 하지 않으면
서서히 대중의 시야 밖으로
벗어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전적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 나온 말을 인용하자면
내 생각에는 이렇다는 얘기입니다만, 특정 표현자를 오리지널이라고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조건이 세워져야 합니다.
1) 다른 표현자와는 명백히 다른 독자적인 스타일(사운드든 문체든)을 갖고 있다.
잠깐 보거나 들을 때 그 사람의 표현이라고 순식간에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2) 그 스타일을 스스로의 힘으로 버전 업 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의 경과와 함께 그 스타일은 성장해간다. 언제까지나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그런 자발적*내재적인 자기 혁신력을 갖고 있다.
3) 그 독자적인 스타일은 시간의 경과와 함께 일반화하고 사람들의 정신에 흡수되어 가치판단 기준의 일부로 편입되어야한다.
혹은 다음 세대의 표현자의 풍부한 인용원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추가로, 하루키는 이런 말을 덧붙인다.
내가 쓰는 글은 잘했든 못했든 상관없이,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을
시종 '불쾌하게 만들어왔다'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물론 어떤 표현 형태가 사람들의 신경을 거슬렀다고 해서 그것이 오리지널이라는 반증은 될 수 없습니다.
단순히 '불쾌한 것'으로 끝나버리는 사례가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작품이 오리지널이라는 것의 한 가지 조건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뜨뜻미지근한 흔한 반발밖에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것보다는 설령 내거티브라고 해도 분명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게 더 좋을 것이다.
(출처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_무라카미 하루키)
몇 년 전 싱어게인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이승윤이라는 가수의
Chitty Chitty Bang Bang 무대를 처음 보았을 때,
달달한 빵을 가장 좋아하는데
소금빵을 처음 맛보았을 때,
첫인상은 ‘묘하다‘였다.
낯선 것을 마주했을 때,
기존의 도식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어
본능적으로 떠오른 감정이었다.
처음 등장하는 것이 사람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인지도식을 바꿀 만큼
‘매력있는 새 것’일지
‘매력을 찾아내기 힘든 새 것’일지는
두고봐야하는 것 같다.
l 필사 l
황소윤_
저는 굉장히 분열적인 자아를 갖고 살아가는데요.
일종의 대상화가 되었을 때도
그 부분이 완전히 제가 아닌 건 아니라서
인정할 때도 있어요.
오히려 요즘엔 반대로 그냥 나의 다른 부분들까지 드러내보고 싶어져요.
-
스파크가 조금만 나도 불이 확 붙을 때도 있고, 성냥갑을 계속 긁어야 겨우 붙을 때도 있잖아요. 안되는 날에도 그냥 계속 몇 번 긁는 거에요.
-
제가 이 땅에 태어나서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고 사랑하고 일을 계속해나가는 것 자체도 페미니즘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
가사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아주 직접적으로 담고 싶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재미가 없거든요.
'이래야만 한다'고 대답하는 것도 망설여지고요.
김초희_
글쓰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정신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창작을 하지 않으면 허무해질 수 밖에 없어요.
글쓰기는 돈 없는 사람도 할 수 있는 창작이죠.
여유롭지 않은 사람이 허무해지지 않으려면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
고난 속에서도 지혜를 구하고 실천하는
할머니들이 세상에는 많아요.
교육받고 책도 읽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그런데도 잘 살아온 걸 보면,
고난 속의 경험이
인간에게 가져다주는 지혜가 어마어마한 거예요.
그런 생각들을 시나리오 쓰면서 했어요.
-
황소윤님과 김초희님이 한 인터뷰 내용을 읽으면서 '페미니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페미니즘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중
일부 극단적인 사람들까지 생겨나면서
페미니즘에 대해
꽤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남녀가 가진 생물학적,
혹은 기타 서로 다른 특징이 존재한다.
동등하지만 분명 동일하지 않다.
그러한 성적 차이를 먼저 인정하는 것에서
양성 간 의미있는 대화가 시작되지 않을까.
백은선 작가의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라는 산문집에서 이런 문장을 읽고
페미니즘이란 '이런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해한 페미니즘은
기성의 단일화된 목소리에서부터
여러 가지 목소리로의 이행이다.
그것은 기성에 대한 부정이나
남성에 대한 공격이 아니다.
단지 조화와 존재에 대한 인정을 원하는 것이다.
(출처 : 나는 내가 좋고 싫고 이상하고)
강말금_
며칠 전엔
배두나 씨를 만나서 같이 연기를 했는데요.
제가 원래 두나 씨를 되게 좋아해요.
그분은 항상 주인공이셨고,
연기도 워낙 주인같이 하시잖아요.
현장에서도 주인처럼 관계를 맺으세요.
모든 사람을 반갑게 맞이하고 마음을 내어주시죠. 언젠가 저도 그런 품을 가져야 하지 않겠나, 생각을 해요.
오혁_
이슬아_그래서 찾으셨나요?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요.
오혁_음, 어떤 방법으로 찾아야겠다
정도는 알게 된 것 같아요.
이슬아_한번 찾았다고 해도
지속적인 상태일 수는 없죠.
오혁 _ 맞아요. 결국 모든 걸 사랑으로 대하는 태도, 그걸 계속 시도해야 진정한 사랑과 행복에 가까이 갈 수 있겠구나, 정도가 요즘의 생각이에요.
이슬아 _leave me alone 와 love ya 사이에
무슨 일이 있던 건가요?
오혁 _자연스러운 연결이었던 것 같아요.
과거엔 문제 제기를 하는 선에서 이야기를 끝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찾아야 할 가치가 분명히 있는 것 같았어요.
다들 바쁘고 힘들게 사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게 뭘까.
그 생각이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찾는 방법'이라는 주제로 이어졌어요.
밴드 혁오의 노래 중에
Gang Gand schiele(강강술래) 라는 노래가 있다.
통일을 주제로 한 노래이다.
생각해보면 '통일'도 '사랑'이라는 큰 범주 안에 속하는 주제가 아닐까, 싶었다.
they told me
친구들은 말했어요
we're heading somewhere
우린 어딘가로 향하고 있어
in their white robes
하얀 예복을 입고
over the fake iron wall
저 가짜 철벽을 넘어
(혁오_Gang Gang schiele 중)
모든 걸 사랑으로 대하는 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