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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연 Jan 19. 2024

나는 이기적인 사람

적절한 이기심이란 무엇일까

인간은 이기심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은근히 부정했었던 것 같다.

오늘은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인 존재이며, 이기적이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적어보고 싶다.


몇 년 전까지 남을 배려하는 과정에서 힘든 순간이 더러 있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어떤 부탁을 했을 때 '이 정도는 해줘야지. 별로 힘든 일도 아닌데 뭐.' 라고 생각하곤 했다. 별로 힘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일종의 합리화였을지도 모른다. '그다지 힘든 일이 아니니까 들어주는 게 당연하거다. 나는 힘든 부탁을 들어주는 바보같은 사람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부탁을 들어주는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분노의 감정이 느껴지는 것이 문제였다. '내 일을 하기도 바쁜데 이런 부탁을 왜 들어준다고 한거지?' 심지어 '이런 부탁을 한 그 사람은 생각이 있는거야?' 라며 상대방을 탓하다가 나중에는 생각을 확실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자책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자책 ; 스스로 깊이 뉘우치고 책망함.

자책. 많이 해봤다. 지금도 한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내 mbti인 ENFJ 유형의 특징 중 하나가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높으며 자책을 자주 한다는 것이다. 아, 나말고도 이런 사람이 꽤 많구나. 그럼 괜찮은건가?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과거 프로자책러였던 사람으로서 스스로를 탓하고 비난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정서적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책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반성하고 크게 뉘우쳐야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일까? 그러나 경험을 토대로 알게 된 사실은, 스스로를 책망하고 난 후에는 기가 죽어있는 사람이 되며 그것은 문제 해결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궁극적으로 도달하기 원하는 '성장'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반성 ; 자신의 언행에 대해 부족한 점을 돌이켜 봄.

그렇다면 반성과 자책은 무슨 차이일까?

자책이 '스스로 깊이 뉘우치고 책망함' 이라면, 여기서 책망은 '잘못을 꾸짖거나 나무라며 못마땅하게 여김' 이란 뜻이다. 즉, 반성은 부족한 점(문제점)에 집중하는 것이고, 자책은 그 일을 해내지 못한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반성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은  '내가 A가 많이 부족하구나. 다음엔 A를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 라면, 자책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은 '나는 A도 못하는 못난 사람이구나.' 일 것이다.


다시 처음 얘기로 돌아가보자. 자책이 한정되어있는 우리의 에너지를 무수히 갉아먹는다는 것을 이해했다면, 자책하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배려의 선'을 정해야 한다.

먼저 내가 정한 '배려의 선'이란, 배려할 때 마음이 불편하지 않고, '고마워'라는 말을 듣지 않아도 서운하지 않은 정도이다. 스스로를 희생시킨다는 생각을 하면서 타인을 배려한다면, 아마 타인과의 관계가 그다지 오래 유지되지 못할 것이다. '과도한 배려 -> 보상심리 -> 기대 미충족 -> 실망' 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길리건이라는 학자는 '배려 윤리'를 주장했는데 배려 윤리의 핵심 내용만 간략히 보자면




길리건은 남성과 여성이 도덕적으로 중요시하는 것들이 다르다고 보았다.

이미지에서 알 수 있듯이, 비교적 남성은 이성, 정의, 의무를 중요시여기고  여성은 배려, 공감, 관계를 중요시여긴다는 것이다.

길리건 얘기를 꺼낸 이유는 이 학자가 배려의 단계를 아래와 같이 제시했는데, 상당히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적 생존 : 자신만 생각하는 단계

이기심에서 책임감으로 : 자신만 생각하는 전 단계를 반성하고 타인에게 관심을 갖는 단계

자기 희생으로서의 선 : 자기 희생을 선으로 간주하며 나보다 타인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단계

선에서 진실로 : 타인을 더 많이 배려했던 전 단계를 반성하는 단계

비폭력의 도덕성 : 자신의 권리 주장과 타인에 대한 책임이 조화를 이루는 단계

-> 비폭력의 도덕성은 가장 상위 단계이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에 얘기했던 '인간은 이기심이 있는 존재'라는 것에 대해 얘기해보자. 이기적인 특성이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때때로 '나 참 별로다' 싶어도 나만 생각하게 되는, 나만 생각해야 하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매번 자신만 생각하는 언행을 한다면 그 사람은 이기심이 있는 사람임을 넘어 이기적인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적절한 이기적임'이란, '나만 생각하는 것' 아닌 '나를 먼저 생각하는 것' 이다.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부탁을 받았을 때,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일단 '이 결정이 나에게 부당한 것은 아닌지, 내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아닌지, 필요에 따라 내 욕구를 충족시키는지' 부터 확인해야 한다. 오히려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경우,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제3자 입장에서는 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게 되어 관계의 선순환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희생하는 배려는 어쩌면 오래가기 어려운, 건강한 배려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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