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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Aug 13. 2024

싫으면 싫다고 말해도 돼

파워 대문자 P 할머니를 대하는 손자의 자세

일요일 오후. 시어머니가 제주에 오셨다. 글도 쓰기 전에 분통이 터지지만 다시 마음을 다독여 본다. 후.


오늘 아침, 남편은 평소에 아침을 먹지 않고 출근을 하지만 어머니가 오셨기에 간단하게나마 차렸다. 아이가 아침에 밥보다는 빵과 사과를 찾기에 간단하게 차렸다. 다 같이 아침을 먹다가 어머니는 갑자기 골프이야기를 꺼내셨다. 우리에게 골프는 이번이 세 번째 제안이었다.


"엄마가 퇴직하기 전에 느그 골프채도 사주고 골프도 끊어주고 가꾸마. "

(겉모습만 보면) 참 번지르르하고 멋진 제안이다. 시집 잘 갔단 소리가 절로 나오는 대사이고 말고.

남편이 말했다.

"아니요. 골프 칠 시간도 안되고 여유도 없어요. "


맞다. 우리는 골프를 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주머니의 여유도 없다. 어머니, 아버지의 골프추천 이유는 같이 놀고 싶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내년에 퇴직도 하겠다, 골프 핑계 삼아 자주 만나러 오고 싶은 속이 뻔히 보이는데 그 이유는 쏙 빼고 우리를 생각해서 (없진 않겠지만) 하라고 하는 것임을 강력히 어필했다. 시누형님 이혼하기 전에 그 부부에게 골프채를 사주고 레슨도 끊어줘서 곧잘 하게 되었고 부부동반으로 필드도 자주 나가 (질릴 만큼) 즐기시다 보니 우리 생각도 나셨겠지. 시아버지도 우리가 제주로 이사 오기 전부터 집에 골프이야기를 두어 번 말씀 하셨다. 그때마다 옆에 있던 어머니는 가족끼리 다 같이 하면 너무 좋을 것 같다고 거드셨다. (가족의 구성원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계신 듯) 남편은 극구 사양했다. 이유인즉슨,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시간도 없고 경제적 여유도 없다는 이유. 남편은 집도 사야 하고 차도 사야 해서 골프는 꿈에도 못 꾼다는 말을 그렇게 돌려서 말했는데 자신들의 욕구에 가려진 아들의 진짜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하는 게 특기인, 시야가 좁은 시부모님은 우리를 답답해하시고 같이 어울리지 않으려고 한다고 서운해하셨다. 그리고 남편이 나에게만 말한 골프를 거절한 이유는 여유가 없다는 이유도 있지만 귀찮아질게 뻔히 보여서라고 했다. 자기는 아직 골프의 재미도 모르겠거니와 시댁과 스포츠를 할 사이는 아니라고 했다. 시댁과 무언가를 같이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나를 배려해서도 맞지만 이 나이 먹고 엄마아빠랑 취미를 같이 할 생각이 아예 없다고 했다. 남편 눈에도, 내 눈에도 보였다. 골프를 매개로 있어 보이게 두 자녀를 밑에 두고 여가시간을 보내려는 억지스러운 사랑. 그렇다고 자산이 있거나 노후대비가 철저하게 되어있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으 허세. 치가 떨린다.


"아니. 너희도 나중에 칠 일이 생긴다. 미리 배워놓으면 좋아. "

"생기면 그때 치면 돼요. 엄마가 쳐보니 젊었을 때 하면 좋다는 아쉬움 때문에 저한테 추천하시는 건 알겠어요. 근데 저는 아니에요. 그럼 저 다녀올게요. "

남편은 그렇게 말하고 집을 나갔다.


'아씨... 좋겠다.. 출근해 버리면 되고..'


우리는 지금 그게 필요한 게 아닌데. 골프채를 놓을 집도 차도 아직 없다. 우리는 인생의 순서를 안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 들이 많다. 슬프지만 그 리스트에는 그대들과 골프 치기는 없다.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고.


참 이기적인 부모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그렇다. 부모 입장에서, 부모가 생각하기에 좋은 것, 아이가 사고 싶은 것, 필요한 것보다 부모가 사주고 싶은 것을 아이에게 설득하고 강요하는 일. 육아를 하며 자주 저지르는 사소한 실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 아침 그런 엄마를 버거워하며 집을 떠나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고 결심했다. 나는 절대 아들에게 버겁고 무거운 엄마는 되지 않으리라.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으리라. 아이가 필요하다고 말할 때, 필요한 것을 해주리라. 바로 지금부터. 그것이 성숙한 부모임을 오늘 아침, 마음을 있는 대로 부대끼며 깨달았다. ※명심※


그렇게 남편이 출근하고 어머니는 내게 골프이야기를 한참을 하셨다.


"너희가 여유가 없고 시간이 없더라도 서로 주말에 번갈아 가면서 배우면 된다 아이가. 주말에 또 네가 애 본다고 불편하고 힘들다고 하겠지만은 남편도 사회생활 해야지. "

"??????????????????????"


왜 말이 그렇게 흘러가지? 마치 내가 남편을 주말에 붙들고 있어서 사회생활 못하게 한다는 소리처럼 들리네? 어머니의 화법은 신기하다. 경상도라 그런가. 경상도라고 다 그렇지 않던데. 희한하다. 오늘은 꼬아 듣지 않으려고 했는 데 실패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덜 격분이 나는 걸 보니 선방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어머니는 쉴 새 없이 골프 이야기를 이어가셨고 나는 다 듣지도 못했다.


"....... 나중에는 너희가 치고 싶지 않아도 칠 일이 생긴다 아이가. 사람들하고 어울리고 하려면. (본인들과 어울리는 것이겠지...) 그런 거는 배워두면 좋다. 나도 아이 키우고 해 봐서 다 알아. 지금 너희가 여유가 없지. 그래서 엄마가 해준다고 할 때 해. 그리고 부부가 같이 배워야 해. 그런 거는. 할 때 같이 하고 젊을 때 배워놓으면 다 쓸데가 있어서 엄마가 하라고....(생략)..... 금요일에 너 돌아오면 샵 가서 사면 되겠네. "


이미 혼자 스케줄 다잡으셨다. 그러나 우리는 안 가고 안 살 거다. 그깟 골프채에 내 자유를 팔순 없지.


만나고 나서 뒤가 더러운 사람은 만나지 말라고 인스타그램에서 그랬는데. 나는 시어머니와 만나거나 대화하고 나면 참 뒤가 찜찜하고 마음이 더러워진 느낌이 든다.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어머니와의 대화는 진심으로 입히지 않으려고 애썼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려고 무지하게 노력했다. 주의집중을 하지 않으려고 특별히 노력했다. 지나고 나서는 되새김질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시어머니는 교장선생님이셔서 사람 좋아 보이지만 그 속이 이리 같아 이기적인 저의를 가지고 하는 말들이 대부분이고 자기 욕구와 자기 생각, 고집, 아집에 가려 상대가 보이지 않는 화법을 구사한다. 그런 시어머니가 입만 열면 상처받는 나를 보호하려고 무던히 애쓴 시간이었다. 시부모님은 시부모님이라는 이유만으로도 피곤하지만 그냥 '시'자 계급장 떼고 만나도 피곤한 인간유형이다. 자기 이야기만 쏟아낼 줄 알고 상대 이야기에는 경청을 하지 않으신다. 그래도 우리(남편과 나, 아이)를 대하는 자세가 많이 너그러워진 것은 형님이 이혼을 한 뒤부터였다. 그전에는 모든 것을 판단하고 평가하려고 했다. 등등하시던 기세가 그때 한번 팍 꺾이시더니 이혼과 재혼의 폭풍의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고개를 빳빳이 드는 어머니의 자존심에 나는 언제 상처받을지 모를 긴장감에 휩싸인다.


 아침을 차릴 때부터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들이 어머니가 가시고 나서 나에게 말한다.


"엄마아빠는 할머니가 골프 하라는 게 싫어? "

"응."

"그러면 이렇게 말해. 어머니~ 저희에게는~ 골프라는~ 운동이~ 맞지 않아요~ 다른 스포츠를 할게요. 아니면 저희는~ 스포츠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러면 할머니도 아 그랬구나 미안해 그러고 고칠 거야."

"그런 식으로 말하는데도 자꾸 강요하시잖아."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런 마음이야. 솔직히 말해서 엄마는 재밌는 거 나랑 하고 싶잖아. 재밌으니까 손자랑 뭐 우리랑 다 같이 하고 싶은 거지. 그런데 엄마 마음이 중요해. 엄마가 하기 싫으면 하기 싫다고 해. 그래도 돼."

"골프 싫어요. 이래?"

"아니~~ 저희는 그걸 할 상황이 아닙니다 다음에 시간이 되면 꼭 같이 할게요.라고 말을 해.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너무 갑작스러운 것 같아. 그래서 좀 당황스러워. 그리고 우리 가족을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건 나빠."


참. 내 인생의 4분의 1밖에 살지 않은 아이에게 배운다. 차근차근 나의 감정과 마음을 이야기하는 법. 금요일에는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를 함께 오시는데, 나는 아이가 알려준 대로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제는 알았다. 아이 덕분에 알게 되었다. 시부모님에게 내 할 말을 못 하는 건 단지 내가 주눅이 들거나 눈치를 봐서 그런 것이 아님을.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사람에게 거절하는 법을 아이만큼 몰랐던 것이리라. 이제는 알았다. 내 잘못이 아님을. 금요일까지, 강요하는 사람에게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모을 거야. 그리고 금요일엔 말할 거다. 강요하지 마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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