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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온을 May 16. 2024

단편 애니메이션 <오목어>

물 밖으로 깨어나 본 적


단편 애니메이션 <오목어>


  당신의 손 앞에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이 놓여 있다. 둘 중 파란 알약을 먹으면 지금 이대로 살 수 있다.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며 안전하다. 그리고 그 옆의 빨간 알약을 삼킨다면 우리가 이제껏 모르고 있던 진실, 이 세상의 비밀을 알게 된다.


 이 유명한 두 알약은 디스토피아 가상현실을 소재로 한 영화 <매트릭스>에서 등장하는 딜레마이다. 어느날 주인공 네오의 앞에 진실의 키를 쥔 낯선 남자가 그에게 두가지 선택지를 내민다. 그 순간 관객들은 네오와 함께 고민하게 된다. 당신이 둘 중 어떤 색 알약을 선택할까? 잊은 채 안전한 삶? 알면 더이상 모른 채 살 수 없는 비극적인 진실?


단편 애니메이션 <오목어>의 주인공 오목어는 망설임없이 빨간 알약을 고른 물고기이다. 진실을 택한 물고기 오목어.


 

  국수의 단면으로 만들어진 프레임 안. 모든 사물이나 생명체들이 볼록하게 표현된 이미지들 사이 유일하게 오목한 모양새인 물고기 오목어. 홀로 헤엄치던 오목어의 작은 웅덩이에 어느날 올챙이들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들은 곧 개구리가 되어 한 마디를 남긴 채 웅덩이를 떠난다. 어른이 되려면 물 밖으로 나가야 돼.

 원래 어느날 뛰어들어온 것들은 항상 무언가를 앗아간다. 그리고 동시에 쥐어 준다. 오목어는 처음으로 나와 다른 타인의 존재를 경험했고, 그의 있음과 없음을 인식했다. 동시에 자기 자신과 공간을 자각한다. 자기가 ‘물 속‘에 ’혼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렇다면 그 다음 단계로, 그는 물 속이 아닌 밖을 궁금해하기 시작한다. 당연함을 벗어나려고 한다.




 홍수로 웅덩이가 범람한 덕에 드디어 강어귀로 넘어가게 된 오목어. 그는 여러 생명체들을 만난다.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웅덩이보다 넓은 세상을 배운다. 큰 물고기들은 호기심에 찬 어린 오목어에게 그들이 정의한 세상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양육강식과 원자의 순환구조, 혹은 3차원 세계 등 그들만의 언어로 이 세상을 설명하는 어른들. 그러나 물 아래가 전부인 줄 아는 어른들에게 아기 오목어는 여기 이곳 말고 진짜 물 밖은 어떤 곳인지 묻는다.


 오목어는 그들보다 커다란 세계를 가졌다. 물 밖은 그저 우리가 내뱉은 거품이 모인 허공이야, 라고 말해주는 어른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 오목어는 묻지 않고 듣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눈으로, 물 밖을, 보고 싶다, 봐야 한다. 진실로의 욕망은 점점 간절해진다.


 아기 오목어는 물 밖을 향해 엉덩이를 흔들어 힘차게 튀어오른다. 점프하며 물 아래와 물 위를 번갈아 교차한다. 아는 곳과 모르는 곳. 자꾸자꾸 날아오르며 제 눈으로 확인한다.




 

 귀여운 오목어 애니메이션은 결말을 맞이한다. 우리를 향해 정면으로 튀어오른 오목어가 바닥으로 낙하한다. 그리고 한 다발의 노란 국수 가닥으로 촬영장 바닥에 추락해 있다. 갑자기 애니메이션의 감독 손이 등장해 아기 오목어였던 일인분 만큼의 국수를 주워 든다. 부엌으로 가선 냄비로 소면을 삶고 고명을 다진다. 맛있어 보이는 한 상이 정갈하게 세팅되었다. 남자는 잔치국수 한 젓가락 후루룩 한다. 화면이 멈춘다. 감독의 입 안으로 삼켜진 한 입거리 오목어. 국수로서의 역할. 물고기인 줄 알았던 오목어의 소명.


  오목어가 그토록 원했던 진실은 사실 자신이 국수용 소면이었다는 것. 이라고 단순하게 감상해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것은 빨간 알약을 선택한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 진실을 안 자의 서사이다.

 

 작은 웅덩이에 홀로 있던 오목어와 웅덩이를 벗어나고, 힘차게 헤엄치고, 물 밖을 본 오목어는 다르다. 물 밖을 향한 갈증과 욕망이 있었기 때문에 어른 물고기들과 다르다. 오목어는 그냥 물 속에 살았던 물고기가 아니게 된 것이다. 자신과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그 욕망을 해결했기 때문에 오목어는 남달라졌다. 누군가는 그 탓에 물고기가 비극적인 진실을 마주했다고 평가하더라도 그는 무언가를 알기 위해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려는 의지와 노력을 가져보았다. 제 존재가 결국 잔치국수용 소면이래도 말이다.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자주 잊는다. 오목어가 물을 인식한 순간부터 물 밖 세상을 알아야 했던 것처럼, 나에게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계속해서 스스로를 재인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성장해야 한다. 그렇게 또다시 물 밖에서 조차 깨어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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