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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글 Nov 19. 2021

밀려 있는 설거지가 말을 걸 때




개수대에 널브러져 있는 나의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쳐 박혀 있다.  먹고 살기 위해 고군분투한 삶의 흔적들이다. 먹을 땐 좋았지만 치울 생각을 하면 눈앞이 깜깜하다. 한 끼 먹을 뿐인데도 개수대를 가득 채우는 그릇들을 보면 끔찍하다. 물 한 모금 들이키지 않고 고구마만 연신 먹고 목이 막히는 그런 기분이랄까. 그래서 먹고 튄다.

부모님 집에 가면 그게 불가능하다. 밥먹고 나면 누군가는 반드시 싱크대 앞에 서서 고무 장갑을 끼고 방금 전까지 음식을 담고 있었던 막 나온 그릇들을 닦아 줘야 한다. 요리는 엄마 담당이니 설거지는 맛있게 밥을 먹은 딸들 중 한 명이 담당해야 함을 딸들은 잘 알고 있다. 가족들에게 느끼는 따뜻한 광선이 조금도 게으름을 피울 수 없게 만든다.

룸메이트와 산다면 비슷하지만 조금 더 따가운 광선을 느낄 수 있다. 나의 게으름은 그녀에게 고통이 되며 그녀의 게으름은 나에게 괴로움이 된다. 서로 말없이 광선을 주고 받는다. '언제 할거니?'



하지만 지금 나는 혼자 자유를 만끽하며 살고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싱크대 앞을 지날 때마다 무언의 압박이 느껴진다. '나를 언제 닦아 줄 거니?' 라고.


영원토록 외면할 수는 없는 이 과업을 나는 자꾸만 피하고 싶다. 왜냐면 내가 오늘 하루 해야할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의 우선 순위에서 맨 하위 등수를 차지하는 일이 바로 이 설거지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하찮게만 여겨지는 일이다.


하지만 도저히 안하고는 배길 수 없는 상황이 찾아왔다. '그래 설거지 하자.'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나에게는 이 작은 결단이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설거지를 한다. 말라 버려서 잘 떼어지지 않는 그릇에 붙은 밥알 하나 하나. 말랭이라고 해도 좋을 말라 비틀어진 채소들이 그릇에 달라 붙어 있다. 열심히 수분 공급을 해 주고 풍성한 비누 거품과 거친 수세미의 면으로 나를 먹였던 식재료들을 떼어 흐르는 수돗물에 떠나 보낸다. 드디어 말끔해진 그릇들과 바닥을 보이는 개수대를 보며 마음이 뿌듯해져 간다.


이 하찮게 보이는 일이 나의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고구마 먹은 것처럼 답답하게 하기도 하고 꼭 해야 할 과업을 성취한 듯한 기쁨을 허락하기도 한다.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건 돈 버는 일, 사람 만나는 일, 삶을 즐겁게 하는 취미 생활만 있는 건 아니니까. 살림.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살아야 하니까. 살아야 기쁨도 느끼고, 고통도 느끼고,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도 하는 거니까.


내 마음이 건강할 때 나는 이 작은 일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꼭 누군가가 칭찬해 줄 만한 위대한 일을 해야만 내가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 마음이 위축되어 있고 뭘 위해 살아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을 때 나는 내가 부끄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나의 일상을 지탱해 주는 작은 일들이 하찮게만 느껴진다. 마치 그 일을 하는 내가 하찮은 사람인 마냥.


설거지는 오늘 나에게 많은 것을 말해 주었다. 처음에는 "빨리 숙제해라. 밥 먹어라. 방 치워라."라고 했던 엄마의 잔소리 마냥 듣기가 싫었다. 하지만 엄마의 잔소리가 나에겐 알고 보면 늘 약이 되었던 것처럼 내가 알아야 할 많은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세상에 하찮은 일이란 없다. 그 일을 하찮게 여기는 게으르고 하찮은 인간만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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