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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무석 May 16. 2022

스톱워치 사용법

세무사 공부법

그때 당시에는 스톱워치가 유행이었다. 순수하게 공부한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서 사용했는데, 당시 학교 도서관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나도 유행에 편승해서 스톱워치를 사용했다. 그리고 달력에 그 시간을 기록했다.

학교에 다닐 때는 연속적인 공부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날그날 컨디션을 확인하는 용도로 사용하였으나 마라톤과 같은 수험생활은 계속 기록하기로 하였다. 학교에 다시 간 2013년을 빼놓고 5년 간 기록했다.



고시생 첫 해 나는 대략 72,000분을 공부했다.

동영상 강의 시청 등을 제외한 순수하게 학습한 시간이다. 최대 시간은 600분 내외로 10시간을 넘기지는 않았다.


처음 학교에서 스톱워치를 사용할 때는 난감한 적이 많았다. 시험기간에 하루 종일 도서관에 있었는데 순수 공부 시간이 5시간을 넘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밍기적 대는 순간 1시간이 훌쩍 지났다. 학교에 가는 이동 시간과 학생식당에서 조식이라도 먹으면 1시간 반은 금방이었다. 밥을 먹었으니 담배도 하나 피고 쓸데없는 생각도 한 번 해야 하니 도서관에 앉으면 9시를 넘기 일쑤였다.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공부를 바로 시작하느냐? 그건 또 별개의 문제다. 오늘 무슨 공부를 할지 개요를 잡아야 하므로 책도 뒤적뒤적하다 보면 10시가 금방이다. 본격적으로 스톱워치를 켜고 1시간 정도 하면 좀이 쑤시기 시작하고 왠지 어딘가에서 연락이 왔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럼 핸드폰을 잠깐 보다가 오지도 않은 문자를 뒤적이면 어느새 배가 고파온다. 이놈의 배는 왜 이리 빨리 꺼지는지, 나는 예의 바른 사람이므로 주변에 나의 배가 꼬르륵 대는 소리를 알려줄 수 없다는 강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다시 밥을 챙겨 먹고, 바로 자리에 앉으면 잠이 오기 때문에 커피도 한 잔 마셔야 한다. 자판기 커피를 먹으면서 시간과 돈을 절약했다며 뿌듯해하며 다시 돌아오면 어느새 한창의 오후다. 공부가 좀 되는 듯할 찰나에 화장실도 한 번 다녀와야 하고, 담배도 펴야 하고 지나가는 친구들에게 손도 흔들어주다가 삼천포로 빠져 어디까지 공부했냐며 쓸데없는 비교로 시간도 보내야 한다. 


저녁에는 집에 가스밸브는 제대로 잠갔는지 전기장판을 켜고 온건 아닌지 집에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잔뜩 생겨난다. 그러다 집에 가서 해야지 하며 돌아오면 가방은 아침까지 그대로다. 


이런 패턴에서 순수 공부 시간 5시간은 용한 편이다.


고시 생활 처음에는 무리한 계획으로 일정을 망치거나 너무 유연한 계획으로 일정이 늘어지기도 했다. 

스톱워치를 켜놓고 딴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었으므로 최종 기록 시간에서 5% 정도를 정상 결함으로 보아 제외하고 기록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공부시간을 늘리고 꾸준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루하루 기록이 쌓여서 내가 한눈에 볼 수 있게 된 시점부터였다. 

나는 줄곧 공부 시간을 탁상달력에 기록했는데 한 달쯤 지나니 누가 보아도 고시생의 시간표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긴장감이 그제야 느껴지면서 나를 조금 더 다잡을 수 있었다. 


72,000분은 1,200시간으로 한 달에 100시간 정도를 공부한 셈이다. 나는 일요일은 대게 쉬었으므로 하루 4시간 정도를 공부한 셈이 된다.

4시간은 고시생의 공부시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지만 나는 육체적으로 피로를 항상 느낄 만큼 지친 채로 공부했다. 게다가 신촌의 번화한 대학가 속에서 모든 관계를 단절시키고 공부를 했다. 대단한 각오라도 한 거 마냥 유난을 떨었다. 거의 1년 동안 혼자 공부를 한 셈이었는데, 하루에 말 한마디 하기가 어려웠다. 어느 날은 문득 생각해보니 내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었던 게 언제였는지 말은 언제 했었는지를 기억해 낼 수 없었다. 그러다가 친구를 만났는데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 뿐 입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아 고생했던 경험도 있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스톱워치는 혼자 공부하는 나를 위한 감시자였고, 나태해지지 않도록 스스로 정해놓은 방향이었다. 

결국 첫해의 경험은 내가 5년 동안 꾸준하게 기록을 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 


스톱워치를 사용하는 것은 기록하는 것을 의미하고 기록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공부 방향을 제시하는 것과 같다. 

결국 공부 시간만을 기록하는 스톱워치에 가치를 담아내고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스톱워치를 누르는 손이기 때문이다. 

하루에 10시간 넘게 공부했다고 우쭐댈 필요는 없다. 10시간씩 투자한 시간을 어떤 방향으로 지속성을 가지고 나아가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고시 생활은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 들어왔지만 나가는 것은 본인 마음대로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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