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만 일주일째.
새로운 회사는 아주 괜찮았다. 식대 카드 때문에 꼭 모여서 먹어야 한다는 점만 뺀다면 식대 제한이 없어 다들 맛있는 거 챙겨먹고 성격도 좋아서 더욱 괜찮다. 9시 30분부터 10시까지 자율출퇴근제라 그런지 마음의 부담도 적다. 그런데 문제는 나 자신이었다. 내가 신입이라서인가, 그래도 일주일 됐는데 뭔가 진전이 있어야 하지 않나. 마치 내 속도가 느리다는 듯한 눈치를 일주일째 받고 있어서 스트레스다. 게다가 자꾸만 자신의 원하던 스타일이 아니라고 하시는 이사님 때문에 아예 바리에이션을 여러개 만들게 되어서 작업이 더욱 더뎌지고 있다. 내가 생각해도 별 것 없다. 그냥 이런 코스가 있다고 안내하거나 팀원을 소개하는 섹션 부분만 디자인하는데 하루하고도 반이 걸렸다. 그런데 나온 바리에이션은 7개가 넘어간다. 이게 전부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그런데 내가 느리단다. 진짜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새로운 프로젝트로 팀이 꾸려져서 첫 미팅을 했는데 뭔가 처음 든는 이야기가 나와서 신기하고 즐거웠다. 아직 디자인적으로 말할 단계가 아니었기에 어떤 말도 하지 못했지만… 사실상 처음 해보는 프로젝트 미팅이라 정보량이 넘쳐나는 중이었기에 귀 열어놓는 것만 해도 버거웠다. API가 어쩌고, 서버 및 데이터 처리가 어쩌고…. 난… 모르겠다. 아무튼 회의는 문서보다 애자일하게 가는 주의라고 하시는데 애자일의 뜻조차 몰라서 맥락으로 알아들었다. 어찌 됐든 문서 보고 체계보다 좀 더 효율적인 회의 방식인 모양이다. 오늘의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게 전부였다. 나도 얼른 열정적으로 의견 내고 티키타카 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뭔가 일주일이 넘어서도 계속 배우고 있고, 적응하는 단계라는 느낌이지만 어째 갈수록 내 부족함이 더 느껴져서 자신감이 자꾸 하락세를 타고 있다. 자기 확신이 부족해지고 있는 게 느껴진다. 난 그래도 내 포트폴리오에 최소한의 자신감은 있었고 아티클도 틈틈이 찾아본 덕분에 내 디자인 실력에 큰 흠은 없다고 생각했다. 얼마든지 '스탠다드'엔 맞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망고보드' 같은 디자인이 싫다고 하는 사람을 상사로 만나게 되니 당황스럽기 그지 없다. 어떻게 맞춰가야 할지 감도 오지 않는데. 그래서 어떤 스타일을 원하시냐, 물어보니 대답이 '강력한 거'란다. 이럴 거면 경력 뽑…… 아니다. 내가 참자.
아무튼 입사 이튿날부터 답답하단 표정과 뉘앙스로 바라보는데 사석(점심 시간 같은)에선 또 잘 대해주니 좋았다가 싫었다가… 퇴사 마음이 죽 끓듯 한다. 내가 참아야지. 내가 함께 맞춰가야지. 그래도 사람 좋은 곳을 찾으니 그게 또 위안이 된다.
가끔씩 퇴사 마음이 들 때마다 보려고 전 직장 카톡을 스크린샷으로 남겨놓았는데, 꽤 효과적이다. 볼 때마다 분노가 사무쳐서 "그래, 거기보단 낫지!!! 난 XX 잘할 수 있어!" 라는 마음가짐이 솟구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다. 거기보단 낫지!
+요즘 친구 한 명과 함께 사이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꽤 기대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