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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구지 Feb 12. 2022

사무실에 관한 고찰

지겨운 그 공간




    여태 쓴 글들은 '뭐야, 그래서 퇴사하라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것 같은 주제뿐이라 살짝 다른 주제로 넘어가려 한다. 퇴사와 연관이 있기도 하지만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다. 하지만 그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해 얘기하고자 한다. 바로 '사무실'에 대해서.


가장 친숙한 사무실 유형


    이미 퇴사를 한 사람의 입장에서 사무실은 질림 그 자체였다. 보기만 해도 지루하고 답답하고 한숨만 푹푹 나오는 그런 공간. 사실 그 공간이 정말 편하고 좋은 공간이라 하더라도 내가 하는 일이 싫으면 꼴 보기 싫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저 그런 일을 할 때라고 가정했을 때, 사무실의 내 자리(like 무한상사 사무실)는 일의 사기를 죽죽 떨어뜨리는 1등 공신이다. 세상엔 다양한 업무가 있고 모든 사무실이 멋지고 편할 순 없지만, 가지각색의 조건을 배제하고 컴퓨터를 종일 두들겨야 하는 일반 사무직의 경우 대게 비슷한 형태를 차용한다. 5인 가족이 밥을 먹을 때 상석에 아빠가 앉고 엄마나 자식들이 옆으로 나란히 앉는 아침드라마형 밥상 형태이다. 그 상태에서 거리를 좀 더 벌리고 칸막이만 두르면 우리가 흔히 보는 사무실의 모습이 되는데 잘 생각해보자. 아침 드라마에서 아버지가 훈계를 두고 무어라 말을 하면 사춘기 아들 딸은 귓등으로 흘리고 식탁 쳐다보며 밥만 먹는다. 아버지의 말을 듣는 건 바로 오른편에 앉은 엄마와 그나마 가깝게 앉은 장남 정도. 상석에 앉은 권위적인 아버지의 말을 차단하는 끄트머리 자리. 예시를 가족의 식탁에 비유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권위적인 아버지와는 원탁에 앉아도 밥 먹기는 싫을 것이다. 반면에, 원래 데면데면한 친분이 있는 사람과는 옆 모서리에 앉는 게 좋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시선을 두면 상대방을 보지 않게 되고 원한다면 고개를 돌려 대화를 하며 좀 더 가까운 사이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결국 구조 자체가 문제인 건 아닌 거 같은데... 뭐가 문제일까?




직장 동료와의 관계는 몇 센치?


    앞서 말한 기본 구조의 사무실은 아침드라마에서 볼 땐 회사마냥 숨 막히는 자리이지만 적당한 친분이 있는 사람과는 굿 초이스라고 했다. 그 차이는 바로 권력에서 나온다. 직급이 높고 불편한 상대라면 세상 편한 카우치 소파에 같이 앉는 게 더더욱 싫을 것이고 친근한 사이와는 회의장에 앉아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공간의 문제점에 대해 짚어볼 예정인데 이런 식이라면 결국 상사나 직급이 문제라는 뜻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주목할 점이 '관계'라는 점이다. 공간은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용자와 공간의 역할, 취향 등에 따라 정해진다. 직급이 존재하는 회사, 적당히 친한 동료와 아직은 서먹한 팀장님, 하지만 다 같은 목표를 위해 소통해가며 하루의 반나절을 같이 보내야 한다는 옵션 아래 사무실은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되고 있냐는 거다. 결론만 말하자면 기본적인 사무실 구조는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이라는 게 하루의 8시간을 몽땅 혼자 일하거나 몽땅 같이 일하지는 않는다. 개인이 해야 할 일이 있고 같이 해야 하는 일이 있고, 어느 날은 소통을 통해서 협의점을 찾거나 문제점을 해결해야 할 수도 있고 어느 날은 혼자서 몰두하여 많은 양의 작업을 끝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무실은 그 모든 다양성을 파티션 하나에 의지하고 있다. 회의실이 존재하긴 하지만 편하게 사용하는 공간보다는 업무 보고, 전체 회의 등의 막중한 일이나 대표님의 손님 접대실 정도로 쓰이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사무실의 파티션이 쳐진 그 한 칸의 자리에서 많은 걸 해결하게 되는데 안 질리는 게 이상하다.


*잘 만든 멋들어진 사무실은 다 배제하고 일반적인 기업 기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의견임을 재차 알립니다.




두 마리 토끼? 그냥 거북이


    사무실은 혼자 집중하기에는 너무 쉽게 노출되는 단점이 있다. 그렇다고 소통을 하자니 타인의 영역을 넘어가야만 소통이 가능하고 개인 영역이 정해지다 보니 자리에서 소통을 하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럽다. 상사가 자리에서 일어서면 모든 게 내려다보이고 화장실을 가거나 물 한 잔 뜨러 가도 내 뒤를 상사가 지나가기 때문에 괜히 청각만 예민해진다. (딴짓을 할 때만 예민한 것도 아니고 괜히 구지씨~ 일 잘하고 있나~? 한마디라도 할 거 같다는 점이...) 애초에 편하지가 않은데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생각을 하거나 열정적으로 집중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다들 그냥 적응하고 살겠지만 사무실은 정말 일의 효율을 올리기 힘든 곳이다. 고등학교 때 다녔던 독서실처럼 완전한 집중공간도 아닌 것이, 노출은 끝장나게 잘 되면서 집중하랍시고 파티션이 쳐져있으니 영 애매한 것이다. (그렇다고 다 그대로 두고 파티션만 걷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알 거라 믿는다.) 솔직히 눈치 보며 딴짓하기에 최적인 건 인정한다. 그렇다고 카페처럼 적당한 소음에 편하게 일하면서 휴식도 겸하는 그런 공간은 절대 되지 못한다. 눈에 닿는 모든 것들이 딱딱하고 친한 직장동료는 파티션에 가려 안 보이고 상사 발소리에 귀를 잔뜩 기울이게 되는 긴장이 팽팽한 공간이다. 결국 집중도 하면서 감시도 편하게끔 만든 이 공간은 감시도 딱히 잘 안 되고 집중도 잘 안 되는 효율성 극악의 사무실이 탄생한 것이다. 이 구조가 어떤 업무에는 특화일지 모르지만 개인적인 견해로는 첫 구조를 그냥 그대로 여태 끌고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뇌피셜입니다.) 산업화 시대의 70명 학생들을 닭장처럼 때려박아 자리마다 편차가 발생하는 옛날 옛적의 교실 풍경을 21세기 들어서도 계속 차용 중인 것처럼. (요즘은 학생 수가 적어 변화가 생긴 곳이 꽤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일을 잘하려면, 일을 하는 사람이 잘해야 하고, 잘하려면 좋은 환경을 제공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 왜 우리는 싫은 것들을 억지로 참아가며 버텨내고 회사는 매번 사람을 돌려가며 손해를 보는 걸까. 누군가는 그럴 돈이 어디서 나는 줄 아냐, 어린것아!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맨 처음 회사를 만들어갈 때 그런 고민을 한 번이라도 해보셨냐고 묻고 싶다. 상황이 여의치 않는 것과 생각도 해보지 않은 것은 다르다. 그저 좀 더 하루를 행복하게, 편안하게 살고자 하는 것뿐이다.




요즘 사무실

    

    요~즘 사무실은 회사에서 홍보 차원으로 공개하는 경우도 많다. 카페 같은 분위기, 편안한 공간, 예쁘고 멋진 인테리어. 그런 것들이 정말 중요한가? 일 잘하면 그만이지. 그럼 카공은 왜 있을까. (카공은 카페 공부입니다. 모르셨어도 괜찮습니다. ^^) 우리가 집을 떠나 카페에 가서 공부를 하고 작업을 하는 건 기분 전환의 의미도 있지만 쾌적함 때문인 경우가 많다. 과하면 독이라지만 우리는 때로 일하는 나 자신,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나 자신에 취하곤 한다. 그 멋있는 이미지 속엔 잘 정돈된 책상, 복잡하게 쌓인 서류뭉치, 그럼에도 열정이 느껴지는 공간들이 함께한다. 좁아터져서 들여다보기도 싫고 채광도 안 좋은 책상보다는 쾌적한 카페를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공간은 종요하다. 사람마다 영향을 받는 정도는 다르겠지만 독서실이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고 도서관이 책 읽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하기 위해 하는 노력은 무시할 것이 못된다. 그게 요즘 젊다! 하는 스타트업이나 대기업에서 좋은 사무실을 홍보하고 더 나아가 직원 복지를 내세우는 이유다. 이만큼 널 위해 환경을 조성해 줄 테니 능력 좋은 당신이 우리 회사를 위해 일해달라고 홍보하는 것이다. 회사엔 할 일이 정말 많고 이런 '세세한' 것까지 신경 쓸 틈 없겠지만 앞으로 회사를 확장해나갈 생각이라면 공간에 대해 한 번쯤은 고민해보셨으면 좋겠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니까. 사람은 시각에 쉽게 흔들린다. 좋은 것을 곁에 두면 좋은 생각이 샘솟고 놓치기 싫어진다. 다르게 말하면 싫은 것들을 곁에 두고서 좋은 생각을 하기도 어렵다는 거다. 더 첨언하자면 자신의 공부, 작업, 업무공간이 어떤지 한 번쯤 체크해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좀 더 가벼운 주제인 사무실에 대해 끄적여봤다. 내가 항상 머무는 공간, 손에 닿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는 걸 좋아하는지라 아마추어의 시각으로 분석해본 사무실은 내가 싫어할 만한 이유가 가득했다. 항상 글을 쓰면서 대표님에게만 너무 뭐라 하는 것 같은데 어쩔 수 없다. 내가 말단 직원인 걸. 요즘 퇴사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고 한다. 예전처럼 돈만 따박따박 받으면서 인생을 살기보단 진정 원하는 것을 찾으려는 사람이 많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싶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원하는 것을 회사에서 찾기 어렵다는 말 아니겠는가. 그래서 더 우리나라의 회사 수장분들께 잔소리하고 싶어지는 것 같다. 조금만 더 생각해달라고, 배려해달라고. 모두 힘든 시간들을 잘 견뎌내고 스스로에게 상도 주면서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




P.S

    회사와 퇴사에 대한 이 글들은 10화 내외로 북으로 만들 예정이다. 슬슬 정말 디자인이나 개인 작업에 대한 얘기도 하고 싶은데 아직은 여력이 안된다. 일단 개인 작업으로 할 일이 너무 많아서 경험 기반의 글이 좀 더 쉽게 쓰이는 것 같다. 3월 중으로 혼자 준비하고 있는 작업에 대한 글이 올라올 예정이다. 그전에 전공 관련 글도 어느 정도 써두어야겠다. 무얼 쓸지 정말 고민인데 개인 작업 소개글도 생각보다 재미있을 것 같고 하나의 컨텐츠를 미리 준비해두었다! 고등학교 때 써둔 글들이 지금 봐도 새롭고 참신해서 그대로 베껴다가 또 하나의 북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아주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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