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습관 버리기

by 찾다가 죽다

.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 가는 것이야 말로 노년의 절박한 요구다.’

라는 구절을 어느 책에선 가 읽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습관을 바꾼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회사에 다니다가 대학으로 옮긴 후 가장 힘들었던 게 근무 습관의 변화다.

대학은 출퇴근 시간이 없다.

특별한 보직을 하지 않는 한 강의 시간에만 늦지 않으면 된다. 주중에 그것도 한낮에 밖을 돌아다닌다는 게 오래도록 어색했다. 그렇다고 부지런한 습관을 억지로 바꿀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지금껏 같은 시간대에 움직인다.

문제는 일거리다.

은퇴 후에는 마감일도 없는데 항상 뭔가를 써야 한다는 혹은 해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막스 베버의 ‘직업 소명설’에 영향받은 어쭙잖은 크리스천 이어서일까?

놀고먹는다는 데 일종의 죄의식이 따라다닌다.

영국의 소설가 찰스 리드(1814~1884)는 말한다.

“생각은 언어를 언어는 행동을 행동은 습관을 습관은 성격을 성격은 운명을 결정짓는다”


이 나이쯤 되면 성격은 굳어질 대로 굳어졌고 따라서 운명도 대략 결정 낫지 싶다.

그래도 그 습관을 바꾸려면 행동과 언어와 생각을 거스르는 절차가 필요하다.

우선 가치중립적인 행동부터 바꿔 보자.

부지런해야 한다.

뭔가 해야 한다는 (내 시대의) 성실 (가치관)과는 다소 동떨어진 바깥일에 눈을 돌려 보자.

그러다 보면 자연히 언어(용어)도 달라지고 끝내는 행동과 습관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문제는 부지런함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편이다.

장교로 근무한 탓에 훈련 기간이 좀 길었고(5개월) 그때 몸에 밴 습관을 이후 회사 생활을 넘어 대학에 와서도 바꾸지 않았다.

오래된 습관으로 정년 퇴임을 한 지금도 새벽 다섯 시면 어김없이 잠에서 깬다.

나이 탓도 있겠지만 이때부터 바빠진다. 늘 상 뭔가를 해야 된다는 생각이다.

효율적인 시간 관리와 생산적인 삶의 중압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침을 먹고 역시 습관처럼 책상 앞에 앉는다.

은퇴했으니 메일 함은 열어봐야 광고성 스팸이 가득할 뿐 별 중요한 게 있을 리 없다.

사회생활 경험을 회고록 삼아 붙들고 있지만 별 진전이 없다.

누가 본다고? 해서 시들하다. 문제는 그래도 여전히 컴퓨터를 켜고 워드 파일을 연다는 거다. 습관이다.

책 읽기도 마찬가지다.

수십 년을 사 모은 책이 제법 된다. 요즘이야 외국 서적과 그 번역판이 거의 동시에 출간되는 세상이지만 젊어서는 출장 가서 사 온 책들이 국내에 번역, 소개되려면 수년의 시차가 있던 시절이다.

해서 출장 갔다 돌아올 때면 으레 여행용 가방 하나를 더 들고 올만큼 책을 사 모았다.

개중에는 현업에서 당장 필요한 책들도 있었지만 이다음에 은퇴하고 나서 읽어야지 하는 시급하지 않은 서적들-뉴 에이지, 문화, 종교 등-도 꽤 있다. 아직 글을 읽어도 남들처럼 눈이 시리지 않으니 그나마 소일에 적합하다


부지런하기, 책 읽기, 글쓰기… 흔히 말하는 좋은 습관들이다.


하나 이들이 은퇴 후의 삶을 막는다.

텃밭을 가꾼다고 집 곁에 공터를 장만했지만 한 해를 넘기기 전에 쑥대 밭이다.

운동을 한답시고 이런저런 기구를 사들이고 스포츠 센터에 가입했지만 생활 리듬에 들어오질 않는다.

습관 밖이다.

생각은 말과 행동을 지나 습관이 되고 끝내 그 사람의 인격을 형성한다.(윌리엄 제임스)

사람의 하루 활동 시간은 제한적이다.

기운이 줄어들고 행동이 느려지니 나이가 들수록 그 시간은 짧아질 수밖에 없다.

은퇴와 나이에 맞는 새로운 좋은 습관을 들이려면 이제껏 갖고 있던 습관을 버려야만 하나?.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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