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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찾다가 죽다 Jun 03. 2024

이상적인 은퇴 생활

이상은 추상이다

    

일주일에 한 번, 아침이면 동네 분들을 모아 집 잔디 마당에서 태극권을 수련하고 차를 나눈다. 한 달에 한번씩은 산책회란 이름으로 독서 토론회를 이끈다. 2년이 넘었다. 우수 동아리라고 지역 도서관에서 영상 시설이 훌륭한 세미나 실을 내주고 음료까지 제공해 준다. 가끔은 브런치 카페에 글을 올리고 얼마 전에는 출판사에서 인공지능과 교육 관련 저술 요청을 받아 시작했다. 이따금 공공 기관이나 단체에서 미래 사회 변화 관련 특강 요청이 오기도 한다. 자문을 맡고 있는 기관이 있어 이따금 부산 출장이 있다. 한가할 때면 텃밭에 나가 풀을 뽑고 채소와 화초를 돌본다. 

이렇게 보면 바람직한 노후다. 마치 페북이나 카톡 방에 올린 그림 같은 사진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 도사린 사회로부터 격리당한 쓸쓸함, 출근할 곳 없는 무료함, 선뜻 죽기는 싫으면서 몇 차례를 들락거려야 지나가는 오뉴월 하루 땡볕, 돌아서면 잊어먹는 핸드폰, 자동차 열쇠, 땅이 꺼지게 사라지는 기운, 쉽게 역정 내곤 하는 걍팍함... 뭐 하나 쓸만한 게 없다.    

 

습관이 무섭다.

아직도 하루 세끼 식사 시간의 오차가 10분을 넘지 않는다. 별일 없는 날은 어김없이 오전 9시 전에 2층 서재 컴퓨터 앞에 앉아야 마음이 편하다. 부지런한 건 좋은 습관이니까 괜찮다고들 그런다. 과연 그럴까? 회사와 대학에서 40년 몸에 밴 계획성과 생산성을 향한 강박은 도무지 사그라들 줄 모른다. 젊어 가족들과 여행 갈 때조차도 시간표를 짰던 기억이 있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어 실적(?)으로 꼽을만한 게 없으면 영 찝찝하고 스스로가 못마땅하다. 머릿속은 다 부질없다고 대뇌이면서도 몸뚱이는 습관 따라 움직인다. 은퇴한 지 4년, 명예 교수로 1년 더 강단을 지킨 시간을 빼더라도 3년이 지나가고 있다. 언제쯤 변할까? 사실 이 질문엔 어떻게 변할까 가 희미하다     


추상적인 은퇴 생활

애초 이상적인 은퇴 생활에 대한 그림이 그야말로 너무 이상적이었거나 추상적이었다는 반성이다. 생각대로 서울 주변에 넉넉한 텃밭이 딸린 전원주택을 마련하고 텃밭을 일궜지만 전혀 아니다. 까닭인즉 책에서 읽은 유배 간 선비들의 삶을 따라 해보고 싶어서였다. 백면서생들이 호미 들고 밭에 엎드려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엄동설한을 견디다 못해 땔나무까지라도 긁어올 요량으로 산등성이를 오르며 어떤 회한을 품었을까? 그들의 생각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이 나이 되도록 꽃 한 송이 심은 적도 풀한 포기 뽑은 기억도 없다. 고구마 호박 감자 토마토 가지 고추 뭐 하나 제대로 돌볼 줄 모른다. 무엇보다도 잡초를 감당할 길이 없다. 해서 2년을 넘기고 밭을 모두 잔디로 덮는다. 


이제 비로소 들며 나며 담당에 나는 풀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뽑게 되고 화초나 채마밭에 난 잡초에 눈이 가기 시작한다. 비로소 추상과 이상의 초점이 맞아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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