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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Aug 24. 2024

나는 왜 '비됴홀릭'인가

내가 영상물을 사랑하는 몇가지 이유들

일단 고백하자면 '비됴홀릭'은 내가 만든 말이다. 그러니 '이게 무슨 말인가' 포털사이트나 사전을 뒤져보실 필요는 없다. 내 스스로를 영상물 중독에 가깝다 생각하는데 그걸 조금 더 그럴싸하게 표현하고 싶어 '알코홀릭', '러브홀릭'에서 착안해 만든 말이다. 처음엔 '비디오홀릭'이라  하려 했는데 다섯 글자는 왠지 촌스러운 것 같고, 뭔가 발음이 덜컥거려서 내 맘대로 네 글자로 줄여봤다. 근데 지금 다시 발음해 보니  '비됴홀릭'은 뭔가 조잡한 것 같기도 하다. 그치만 딱히 이 글을 진행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가 아니므로 그냥 밀어붙이기로 한다. 비됴홀릭.


옇든 나는 비됴홀릭이다. 근데 꼭 영상물을 많이 보아서 '홀릭'이란 접미사를 붙인 건 아니다. 영상물의 매력에 푹 빠진 사람이란 쪽이 더 적절한 정의일 것 같다. 그 어떤 매체보다 영상을 통한 스토리 전달에 가장 몰입을 잘하고,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인 것 같다. 멋진 영상언어로 내게 말을 걸어오는 스토리를 너무 사랑한다.


어느 날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나는 왜 영상물이 좋은가. 왜 다른 매체로 보여주는 스토리에그리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할까. 그러다 어느 식사 중에 유명한 추리물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내가 '비됴홀릭'인 가장 큰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아, 배우가 없구나. 웹툰이나 애니메이션에는 실제 살아있는 사람, 배우가 없구나. 그제서야 깨달았다. 나는 더 정확히는 실사 비됴홀릭이었다. 실제 살아있는 사람인 배우들이 원래의 자신과 대본 속 캐릭터를 융합해 만들어내는 고유의 새로운 인물들이 살아 숨쉬는 그 화면 속 세계에 나는 홀릭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애니메이션도 너무 훌륭한 성우들이 멋진 목소리 연기로 더빙을 하고, 정말 다양한 표정과 움직임을 구현해내는 기술을 선보이는 애니 작품들도 꽤 많지만 우린 그걸봐도 '와, 진짜 사람같다'고 한다. 그 말은 진짜 사람이 아니라 진짜 사람을 정말 잘 흉내내었다는 뜻이 아닌가.


우리가 뛰어난 연기력의 배우들에게 하는 찬사를 2D 캐릭터에 하는 경우는 없다.


"와~ 연기 후덜덜하다."

"캐릭터를 씹어 삼켰다."    

"얼굴을 갈아끼웠다."

뭐 이런 말들 말이다.


JTBC 드라마 <졸업> 중 화면 캡처

최근에 매우 매력 있다고 생각한 캐릭터가 있다. 바로 안판석 감독의 <졸업>  속 대치체이스 학원 김현탁 원장이다. 그 역할을 맡았던 김종태 배우님은 <밥 잘 사누는 예쁜 누나>비롯해 이번이 안판석 감독과 다섯 번째 작업이라는데 그래서인지 꽤 낯익었으나 뚜렷이 남아있는 기억이 없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이 분이 "헤헤헤"하고 웃는 소리가 왜 그리 중독적이던지. 뭐랄까... 그렇게 소년처럼 실실거리며 무장해제시키고는 상대방의 속내를 추측하며 온갖 머리를 굴리고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다른 배우가 저 역할을 연기했다면 어쩌면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을지 모른다.


배우는 어쩌면 작품 속 캐릭터를 표현하는 화자라 할 수 있다. 표정과 손짓과 걸음걸이와 앉은 자세, 그리고 목소리와 말투, 속도, 목소리 크기까지. 그 모든 것을 어떻게 보여줄까는 온전히 배우의 몫이기 때문이다.

대본이라는 활자 속에 대사와 지문 몇 마디로 표현된 인물의 모습을 너무나 생생하게 재현해 내는 훌륭한 배우가 있는 작품들은 그야말로 너무 매력적이다.


디즈니 플러스 시리즈 <노웨이 아웃>  장면 캡처

더 최근에는 <노 웨이 아웃>에 나온 염정아 님 캐릭터에 홀딱 빠졌다. 과연 대본 속 안명자 시장님은 이렇게까지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날것 그대로였을까. 염정아 님이 연기한 안명자는 그 펄떡펄떡한 욕망이 너무 적나라하고 당당해서 정말 나쁜 X인데 하마터면 응원할 뻔했다.



내가 '비됴홀릭'이 된 또 다른 이유는 영상물이 표현할 수 있는 역동성 때문이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4회에서는 구씨(손석구)가 바람에 건너편으로 넘어간 모자를 줍기 위해 도움닫기 해서 힘차게 날아오른다,

그 누구도 '해방'을  입에 담지 않았지만  여러 시점의 숏을 연결한 편집 기법으로 우리는 너무나 생생하게 구씨의 짧은 해방의 순간을 느낄 수 있었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중 화면 캡처. 신발마저 긴장하고 있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중 화면 캡처.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우리가 오늘도 복닥거리며 살아낸 힘겨웠던 하루도 카메라로 찍어 기깔나게 편집해 화면에서 본다면 꽤나 그럴싸한 영화 속 한 장면이 되지 않을까.


그렇다. 내가 비됴홀릭인 이유는 실제 사람인 생동감 넘치는 배우들이, 실제 내가 살았을 법한 세상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자. 오늘도 나는 화면 속 매력터지는 사람들의 세상을 구경하기 위해 리모콘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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