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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풍맘 Nov 22. 2021

자식과 부모 사이

아들과 부모님 사이에서 나를 발견하다.

Dear. 나의 독자들에게

아이를 키우면서 이런 생각이 가끔 들었다. “우리 엄마는 어땠을까? 우리 엄마는 어떻게 견뎠을까? 우리 엄마는 왜 나한테 이런 어려움을 미리 말해주지 않았을까?” 만약 엄마가 이 모든 현실을 내게 자세히 매일 뼈저리게 느끼게 해줬다면, 난 아직 엄마 밥을 먹고 있을 거다. 나는 우리 아들이 조금 더 크면 아빠와 엄마의 이야기를 아낌없이 다 해주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생긴다면, 두 손 잡고 이겨내거라. 그리고 꼭 너 닮은 아들 낳아봐라. 


    

❚자식과 부모 사이 : 아들과 부모님 사이에서 나를 발견하다.      


나는 2남 2녀 중 장녀다. 이 한 문장으로 내가 가진 큰딸의 무게가 다 전달될 수 있으면 좋겠다. 부모님은 생계형 맞벌이셨다. 내 기억은 도시 외곽에 위치한 단독 주택에 살던 7살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치원을 마친 키 작은 꼬마는 30분을 걸어 집에 도착한다.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서 거실에 가방을 던져놓고, 마당 빨랫줄에 널린 빨래를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린다. 부모님과 동생들이 돌아오기 전에 식탁의자를 가져다 놓고 가스레인지 위에 압력밥솥을 올린다. 잘 씻은 쌀을 넣고 가스불을 켠다. 젓가락으로 조심스럽게 김을 뺀다. 자동차 소리가 들린다.      



나는 7살부터 혼자 머리를 감았고, 실내화도 빨았다. 부모님이 시키거나 부탁한 적은 없다. 나도 아직 정확히 모른다. 내가 왜 그렇게 집안일에 진심이었을까. 돕고 싶었던 것 같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돌아온 부모님이 기특하다고 칭찬하면서 웃는 그 모습을 매일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아이다움을 숨기고 계속 장한 딸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30대 중반인 지금까지도 나는 혼자서도 잘 해내고, 가끔 부모님 대신 동생들을 챙기고, 필요하다면 부모님도 도울 수 있는 존재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28개월이 되도록 한 번도 친정 부모님께 아이를 맡겨본 적이 없다. 내가 육아가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가 “부탁할 줄 몰라서, 내가 할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아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 나 너무 졸린데 와서 잠깐만 애 좀 봐죠. 나 엄마 밥 먹고 싶은데, 밥 좀 해줘.” 아직도 나는 이런 말을 쉽게 하지 못  한다. 그래서 내 아이가 아이다움을 표현할 때 참지 못하고 화가 나고, 받아 주지 못 했던 것 같다. 때론 원망도 했다. 다른 엄마들은 친정엄마가 산후조리도 해주고, 애도 봐주고, 아예 옆집으로 이사도 오던데.   

   


한 번은 친정엄마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갱년기가 심하게 왔나 봐, 애도 봐주고 반찬도 좀 챙겨주고 해야 하는데. 너무 우울하고 눈물이 계속 나고 몸도 축축 처져서 괜히 갔다가 안 좋은 영향만 줄까 봐 못 가겠더라.” 힘들 때마다 아이를 원망하고, 남편을 원망하고 때론 친정 엄마를 원망했다. 그 힘듦은 결국 나로 인한 것이었는데. 엄마의 말을 듣고 나는 “나는 엄마가 돼도, 우리 엄마를 못 이기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차마 말로 전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쓰고 사진을 찍어 보내드렸다. 엄마가 “고생만 시키다 해준 것도 없이 시집보냈는데 이렇게 잘 커줘서 고맙다”라고 답을 주셨다. 내 마음은 다 녹았다. 말하지 않았지만 우린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 나를 사랑으로 키우신 부모님께      


아이를 낳고 키우기 전까지 저는 제가 잘나서 이만큼 잘 컸다고 생각했어요. “부모님은 먹고살기 바빴고 그래서 나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집안일을 도왔으니까, 나는 참 기특하고 착한 딸이었구나“라는 착각으로 살았던 것 같아요.    

  


내가 이렇게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다 아빠, 엄마의 사랑 덕분입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자라진 못했고, 동생들이 많아서 맏이로서 부담감은 있었지만, 그 결핍과 책임감으로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빠, 엄마가 우리를 키우면서 감정적으로 학대하거나 기분에 따라 말했던 기억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제가 아이를 키워보니 얼마나 큰 인내와 사랑이 필요한지 알게 되었어요.  

    


항상 “평범하게 살면 된다. 건강이 최고다”라고 말하는 부모님이 때로는 답답했어요. 그래서 큰 목소리를 내서 철없이 저항도 했어요. 그런데 제가 한 가정을 꾸리고 나니 그 말의 뜻을 잘 알 것 같아요. 평범하게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감사한 일인지,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아이 돌본다는 핑계로 부모님 많이 못 챙겼는데 요즘 두 분이 병원을 자주 다니시니 마음이 참 무겁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냥 건강만 해주세요. 언젠가 우리가 헤어져야 할 일이 있겠지만, 부모님이 무조건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는 게 가장 큰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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