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탄 러스크, 팍시마디아 Paximathia
없는 빵 빼고 다 있는 우리 동네 작은 빵집. 유리문을 젖히니 해맑은 풍경소리와 함께 기분 좋은 단내가 밀려옵니다. 사장님은 나에게 짧은 눈인사를 건네며 주방에서 나오셨고 손에 들린 트레이 층층마다 갓 구워진 빵이 한가득입니다. 선물바구니가 쏟아지듯 중앙으로 빵이 진열되고 이미 포장을 마친 나머지 것들은 구석자리를 차지합니다. 그 나머지 중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러스크'. 가까이서 안을 살피니 마른 식빵 위로 설탕결정이 비치고 벌어진 비닐 틈 사이로 향긋한 마늘 향이 풍겨와 코를 자극합니다.
우리에게 러스크는 바게트나 식빵을 이용해 달콤하고 고소하게 재가공된 음식으로 익숙하지만 세상에는 아주 다양한 종류의 러스크들이 존재합니다. 인도, 영국, 독일,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 등등. 빵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 대부분이 딱딱한 빵을 즐기고 이를 다양한 요리에 활용하기도 합니다. 말린 빵을 아침식사로 먹는 그리스 크레타섬에서는 러스크를 만들기 위해 빵을 굽습니다. 팍시마디아 (Paximathia). 통밀가루, 보릿가루 외에도 거칠게 빻아진 보리 껍질을 넣기 때문에 일반적인 러스크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건조함을 유지합니다.
과거, 불을 사용해 빵을 구워야만 했던 시절에는 많은 양의 땔감을 이용해 화덕의 온도를 올려야 했습니다. 때문에 한 번에 많은 양의 반죽을 구워냈고 먹고 남은 빵은 식어가는 화덕의 잔열을 이용해 속까지 딱딱하게 말렸습니다. 빵의 수분을 날리면 누룽지처럼 보관기간을 늘릴 수 있었고 이렇게 만들어진 러스크 팍시마디아는 크레타섬 뱃사공들과 먼 길을 떠나는 방랑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음식 중 하나였습니다.
긴 시간 동안 화덕 안에서 뜨거운 불길을 견디고도 거칠고 투박한 생김새 때문에 늘 조연 자리에 머무는 크레탄러스크 팍시마디아. 욕심 없는 그 모습에 마음이 쓰입니다.
/ 재료 /
보릿가루 300g
드라이이스트 15g
밀가루 100g
통 밀가루 100g
물 400ml
설탕 2T (35g)
소금 1t (5g)
올리브유 40g
거친보리등겨가루 30g
반죽
반죽할 수 있는 넓은 보울에 보릿가루 300g, 밀가루 100g, 통밀가루 100g, 거칠게 빻아진 보리등겨가루 30g, 소금 1t(5g)을 넣고 잘 섞어줍니다.
물 400ml에 이스트 15g, 설탕 2T(35g), 올리브유 40g을 넣고 잘 섞어줍니다.
가루류 중앙에 충분한 홈을 만들어준 뒤 이스트 혼합물을 넣어줍니다.
혼합물과 가루류를 한 번에 섞지 않고 중앙에서부터 천천히 섞어줍니다. 묽은 반죽에서 조금씩 밀가루를 더한다는 느낌으로.
/ 가루류를 조금씩 액체로 끌어와 완전히 섞어주고 또 가져오는 과정을 반복해줍니다.
반죽을 한 덩이로 뭉친 뒤 천으로 덮어 실온에서 1시간 발효시킵니다.
/ 치대지 않고 반죽이 한 덩이가 될 때까지만 뭉쳐줍니다.
발효를 마친 반죽은 원통 모양으로 성형 후 끈을 이용해 적당한 크기로 잘라줍니다.
/ 끈을 이용하면 단면의 질감을 살리며 절단할 수 있습니다.
건조
절단한 반죽들을 넓게 편 뒤 윗면을 천으로 덮어 20분간 2차 발효시킵니다. 발효가 끝나면 200도로 예열된 오븐에서 25분 구워줍니다.
구운 직후에 반으로 가르면 바삭한 겉과 달리 안은 촉촉한 상태입니다. 속까지 건조하기 위해 70도에서 3시간 동안 수분을 날린 뒤 오븐 뚜껑을 살짝 열어 12시간 동안 그대로 두어 말립니다.
완전히 건조되면 쪼갰을 때 '툭'하는 짧고 둔탁한 소리가 납니다.
다코스 Dakos
완성된 팍시마디아(러스크)를 물에 가볍게 넣었다 빼서 수분감을 준 뒤 빈 접시 위에 올립니다. 굵은 구멍을 가진 강판으로 단단한 토마토를 갈아 러스크 위에 얹고 그 위로 미지트라치즈(페타 치즈로 대체 가능)를 올립니다.
/ 미지트라치즈(Mizithra cheese)는 양이나 염소의 젖으로 만든 치즈, 리코타치즈처럼 부드럽게 생치즈로 먹기도 하고 소금에 절여 단단하게 숙성시켜 파스타 위에 얹기도 합니다.
올리브를 얹고 올리브유까지 뿌려주면 크레타의 아침메뉴 다코스(Dakos)가 완성됩니다.
브루스케타
러스크의 거친 표면에 생마늘의 단면을 문질러 진액을 바르고 올리브 오일을 뿌려줍니다. 그 위에 토마토 과육과 하몽을 올리면 스페인식 '브루스케타'가 완성됩니다.
/ 토마토는 구멍이 큰 강판에 갈아야 씹을 때 과육이 느껴집니다.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라 그 어떤 재료와도 잘 어울리는 명품조연 크레탄러스크 '팍시마디아'였습니다. 자세한 조리과정은 유튜브에 영상으로 업로드해두었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스타 @dalmond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