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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정원지기 Dec 29. 2021

내 집 사용 사용기

코로나 기간 동안 중3, 초5 두 아들과 함께한

지금의 집으로 이사온 건 2019년 2월 쯤. 경기도 고양시, 집 주변에 비닐하우스가 있고 누군가의 선산들이 모여 있는 서울에서 멀지 않지만 버스도 자주 오지 않는 외진 곳에 있는 교회 사택이다. 남편이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돌아와 부목사로 일하게 된 교회의 사택이다. 다세대 빌라에 3층, 방 두 개, 작은 거실, 복도식 부엌 화장실이 있는 작은 평수의 집이다. 결혼하고 긴 외국 생활이 끝나고 한국에서 가족이 살게 된 최초의 집이다. 좁은 집에 4인 가족의 모든 필요를 채우기 위해 방의 크기를 재고 모든 가구를 적절하게 배치하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비교적 모든 것이 안정되었을 때 코로나가 찾아왔다. 좁은 집을 더 잘 써야만 하는 상황이 생겼다. 돌아보니 코로나 기간에 아이들의 방과 거실에 가구 배치를 새로 했고 몇 가지 가구를 구매 했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은 길어졌고 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 나는 이 집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 옥상을 나의 카페로 사용하다. 


코로나 이전에는 아이들 등교 후 가던 카페가 있었다. 싸고 맛있고 조용해서 커피도 마시고 공부도 하고 프리랜서로 출판 일을 하는 나는 주로 오전에 그곳에서 일했다. 코로나가 시작 하고는 이런 루틴이 없어졌다. 아이들의 등교는 중지되고 카페 사용도 불편해 졌다. 내게 아침 커피는 하루를 시작하는 중요한 루틴이자 쉼인데. 온라인 수업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마시는 커피는 쉼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봄이 시작되면서부터 커피를 들고 옥상에 올라갔다. 아이들의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면 나는 커피를 갈고 나만의 한 잔의 커피를 내려서 옥상에 올라가서 커피를 마셨다. 하늘도 보고 집 뒷산도 보고 코로나로 인해 멈춰 버린 것 같은 계절의 변화도 느끼곤 했다. 멀리 보이는 방화대교를 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했었다. 이렇게 커피를 마시고 나면 좀 마음이 쉬어졌다. 그럼 다시 아이들과 오후를 시작할 여유가 생겼다. 


# 따로 또 같이 6인용 식탁


보드게임용   

코로나가 시작되고 남편이 사역하는 교회 모임이 많이 취소되었고 급기야 모든 모임이 중단되니 아빠의 퇴근이 빨라졌다. 미국에서는 자주 함께 시간을 보냈었는데 한국에 와서는 교회 일이 많아서 자주 하지 못했던 가족의 시간이 많아졌다. 아빠와 놀지 못했던 아이들과 보드게임을 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가족의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게임을 하면서 큰 아들이 음악을 선곡하고 스피커로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노래가 나온다. 때로는 아빠가 좋아하는 곡 때로는 엄마가 좋아하는 곡 서로 듣고 싶은 곡을 들려 달라고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6인 식탁을 산 이유는 좁은 거실에서 모든 가족이 공용으로 사용할 책상이 필요해서였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나는 책상에서 공부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했는데 그때는 이 거실이 그림 그리기에 너무 불편했고 작은 화실로 쓸 방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더 컸다. 코로나의 시작으로 아이들도 주로 집에 있었고 다니던 대학원 도서관은 계속 출입이 제한되고 수업도 온라인으로 진행되니 도서관 갈 일은 점점 없어졌다. 원래는 도서관 가서 논문 쓰는 게 목표였는데... 결국 논문은 미뤄졌다. 하지만 이런 시간도 계속되니 나는 이 식탁을 사용하는 것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야만 했다. 구석에 노트북을 두고 읽어야할 논문을 쌓아 놓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면 집중을 못 할 것 같았는데 어디 골방에라도 들어가야 할 것 같았는데 하다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집중할 곳을 찾아서 밖에 나가기도 했지만 늘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 식탁에서 나는 논문을 쓰고 졸업했다. 이제는 작은 아이가 주로 온라인 수업을 할 때 이 식탁을 사용한다. 그러면 나는 옆자리에 앉아서 내 일을 한다. 수퍼바이저에게 보낼 상담보고서를 쓰고 그날 있을 상담 내용을 준비한다. 최근에 열리는 상담학회는 하루종일 줌으로 열렸다. 갈 곳이 없어서 그냥 집에서 참여했는데 이젠 이 모든 것이 익숙하다.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는 옆에서 나는 내 일을 한다. 쉬는 시간에 밥도 먹고 엄마가 학회에 참여하는 것이 아이들은 익숙하다. 어떤 내용을 하는지 아이들에게 설명하기도 하고 아이들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점점 더 알게 되었다. 집에 하루 종일 있게 된 두 아들과 엄마는 이렇게 공존하게 되었다. 


# 좁아서 책을 겹겹이 쌓아 놓은 책장 


박사학위를 마친 남편도 책이 많고 대학원에 다니고 있던 나는 더 책이 많았다. 지금의 책장은 빈틈이 없을 정도로 꽉 차 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거나 할 수 없게 되자 초등학교 아이의 읽을 책을 구매하게 되고 책은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책장에 책의 위치는 몇 번에 걸쳐 바뀌었다. 모든 가족이 조금씩 지분을 가지고 있는 책장은 가족의 눈높이와 키 높이에 맞춰있었다. 가장 집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는 남편의 책은 가장 위의 구석지로 손닿기 가장 좋은 곳은 둘째의 책들로 중간쯤 가장 많은 부분은 주로 나와 관련된 책들이 있다. 가장 거실에서 공부를 많이 하고 책을 봐야 하는 작은 아이의 키에 맞는 위치에 자주 읽는 책들의 위치를 바꿔서 꺼내기 좋은 위치로 이동했다. 큰 아이가 읽었지만 작은 아이는 관심 없어하는 책들을 꺼내서 다른 사람에게 주기 시작했다. 작은 이제는 읽지 않는 책들도 누군가에게 주기 시작했다. 버리고 채우고를 반복하며 나와 둘째 아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책장이 되었다. 책장에는 책만 있는 건 아니다. 내가 그린 그림과 큰 아이의 그림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이 있다. 내가 봐야 하는 책들과 전공책 그리고 내가 그린 그림, 아이가 그린 그림이 있는 책장을 보고 있으면 그냥 기분이 좋다. 내가 이렇게 저렇게 수집한 책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우리 가족의 공부와 관련된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서 그냥 좋다. 우리 가족 모두의 관심사와 필요 배움의 작업물들이 쌓여가는 곳이다. 

# 부엌, 노동의 공간

코로나로 인해서 더 많이 가장 많이 사용한 것이 부엌이다. 그 덕에 가전제품이 늘었다. 매일 무엇을 먹을 것인가가 최고의 고민이었다. 매번 요리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냉동식품 많이 먹을까 안 사던 에어프라이어를 샀고 작은 아이의 요구인 베이킹을 위해 베이킹용 스탠드 믹서기를 샀다. 노동을 좀 더 편하게 하기 위해서 도구를 사니 부엌은 물건 놓을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결국 작은 조리대를 대신할 아일랜드 탁자를 샀다. 노동을 편하게 하기 위한 최적의 공간 노동이 지치지 않게 물건들의 위치를 여러번 바꾸었다. 가장 자주 쓰는 물건과 안 쓰는 물건의 위치를 바꾸기 시작했다. 나에게 부엌은 노동의 공간이다. 좁은 부엌은 노동하기에 너무 불편하다. 그래서 이 노동의 공간이 싫을 때도 있다. 구석 구석 신경을 쓰곤 했지만 여전히 가장 불편하고 가장 힘든 공간이다. 


방 

# 내방은 뒹굴, 뒹굴 쉼터, 아이들 방은 게임 방 

나는 좀 혼자의 시간이 필요한 엄마라 아이들에게 엄마는 방에 좀 혼자의 시간이 필요해 라고 말하고 방에 들어가 있을 때가 있다. 이 방의 쓸모는 뒹굴, 뒹굴 하면서 주로 드라마를 보거나 예능을 보거나 낮잠을 자거나 하며 내가 쉬는 공간으로 사용된다. 아이들과 내가 쓰는 침대는 똑같은 브랜드의 침대이지만 아이들은 엄마의 침대가 더 플러피(fluffy) 하다는 표현을 쓴다. 꼭 엄마는 혼자 있고 싶다 해도 아들 둘은 살짝 문을 열고 엄마가 뭐 하나를 살피러 오곤 했다. 중3과 초 5 남자 아이들이 그렇게 나를 찾아올 때면 한없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이제 안다 엄마가 홀로 방에서 쉴 때 자신들에게 무한 자유가 있다는 것을 ^^;

아이들 방은 단 촐 하다. 침대 두 개 간단한 행거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게임용 PC 큰 아이가 주로 온라인 수업 때 쓰기도 하지만 단연 아이들 방의 용도는 pC 게임방이 가장 큰 용도이다. 


내 집은 한눈에 모든 것이 보인다. 방 두 개에 좁은 거실과 복도식 부엌에 내게 필요한 것들이 구석구석 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걸 보면 맘이 뿌듯하다. 처음에 이사 올 때 좁아서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을 했는데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뭔가 좁은 집이 불편하고 답답할 것 같았는데 아이들과 나는 별다른 불편 없이 1년 넘게 보내고 있다. 집이 좁아서 였을까 아이들과 나는 서로 이 집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큰 아이가 어떤 음악을 듣는지 어떤 게임을 하는지 온라인에서 어떤 친구들하고 사귀고 있는지 그 친구들은 어떤 친구들인지 집이 좁아서 사실 더 계속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아이들은 내가 무슨 드라마를 어떤 예능을 얼마나 보는지도 알고 있다. 그래서 작은 아이는 엄마가 드라마 예능 중독이라고 계속 핀잔을 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같은 테이블에서 큰 아이는 기말고사 시험 준비를 하고 있고 

퇴근한 아빠는 거실 의자에서 스마트 폰을 보는 중. 바로 앞에 아이들 방에서 작은 아이는 잠을 청하는 중. 잠 안 온다고 왔다 갔다 하며 엄마에게 투정 중. 코로나 시대를 보내면서 나는 이 집이 더 좋아졌다. 집이 컷다면 방 안이 안 보이고 서로가 뭐 하는지 몰랐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어떻게 무엇을 하며 집에서 보내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아직은 비밀이 좀 적은 것 같다. 어떤 날은, 시간은 각자의 방에 각자의 공간을 사용하고 있지만 거실에서 각자의 방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우리는 함께 하고 있어서 좋다. 


나를 그리고 아이들 각각의 필요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함께 해야 햐는 시간을 위해 좁은 집은 몇 번에 걸쳐 바뀌었다. 나는 비교적 내가 만들고 바꾸고 한 이 공간에서 많은 것을 누렸는데 아이들은 어떠했을까? 별다른 불평 없이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좋았나? 아이들에게 한번 물어 봐야겠다. 너희들에게 지금 우리의 공간은 어떠한지? 불편한 건 없는지? 뭐가 필요한지 물어봐야겠다. 코로나로 인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나와 아이들은 좀 더 함께 했고 서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더욱 알게 되었다. 좁지만 함께 하기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 가는 중.


이 글은 2021년 8-9월호  한국기독학생회 학사회 공식 회보 <소리지>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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