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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마수미 Jun 05. 2022

술은 공식적인 마약이다

쉬이 잠이 들지 못하는 엄마는 가끔 술 한 잔에 잠을 청했다. 술이라고는 입도 못 대는 양반이 오죽하면 술에 의지해 잠을 청하려 했을까마는 그렇게 마신 술도 엄마를 깊은 잠에 들게 하진 못했다. 오히려 몽롱한 정신으로 평상시 하지 않던 행동을 하게 만들며 그것을 지켜보는 삼 남매를 두렵게 할 뿐이었다.

맨정신에는 한없이 인자한 아버지는 타고난 술꾼이었다. 퇴근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한숨으로 기다리던 엄마를 바라보다 지쳐 잠이 든 삼 남매를 깨우는 것은 만취한 아버지의 술 주정과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악이 받힌 엄마의 악다구니였다. 그렇게 술은 자다 깬 삼 남매를 불안감에 떨게 하는 공포를 선물했다.

술 때문에 바람 잘 날 없던 집에서 자란 나는 술을 마시지 않을 줄 알았다. 입시를 앞두고 백일주를 권하는 학원 선생님들과 첫 술을 마셨다. 이후 미대에 들어갔고, 예술 하는 이는 술에 절어 산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한치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인 나는,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오기로 마셔댔다. 오기로 마신 술은 대들지도 못하던 선배에게 대드는 용기를 주고, 수줍어하지 않던 연애도 하게 만들었다. 그 모든 건 멀쩡한 내가 아닌 술이 취한 내가 한 짓이다.

결혼을 하고 동네 아줌마들과 술판을 벌였다. 해외에 살며 좁은 교민사회에서 이런저런 말이 날까 몸 사리며 남편과 아이만 바라보다,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또래 아줌마를 만나니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마셔댄 아비 어미도 못 알아보게 만든다는 낮술은 정말 내가 놓은 새끼도 못 알아볼 만큼 정신을 놓게 만들었다. 눈을 뜨니 아이가 울고 있었고, 눈을 뜨니 남편이 한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낮술은 나를 괴물로 만들었다.

이 정도면 술을 끊어야 했으나 나는 술을 끊지 못했다. 해외살이의 외로움과 고됨을 저녁시간 딱하고 따는 맥주 한 캔에 의지했다. 때로는 두서너 캔을 넘기기도 했지만 예전처럼 무작정 퍼마시진 않았다. 그래도 술은 술이다. 맥주가 목에 넘어가고 수 분이 흐르면 온몸의 힘이 빠지며 노곤노곤한 마음이 되었다. 그런 기분에 써 내려간 글을 다음날 보노라면, 술에 의지해 감성을 강제 소환한 중2병 걸린듯한 끄적임이라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다.

한국에 돌아와 무알코올 맥주를 알게 되었다. 술을 끊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저녁이면 무알코올 맥주를 한 캔 준비한다. 온몸을 감싸는 저릿함도, 과감한 선택을 할 용기도, 감성을 폭발하게 하는 자극도 주지 않지만 맥주를 닮은 맛만으로 나에게 충분하다.

내가 아닌 나로 만들어 주는 술은 우리가 선택한 공식적인 마약인지도 모르겠다. 적당히 마시면 괜찮다는 말로 안정감을 주며, 서로에게 권하는 공식적인 마약, 행여나 만취했다면 실수였다 무마할 수 있는 공식적인 마약, 술로 인해 상처 입은 누군가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공식적인 마약, 인생의 반을 향해 달려가는 내가 끊어보려 용쓰는 술은 나에게 있어 그저 마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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