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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마수미 Jul 05. 2022

배짱부릴 일은 따로 있다

3장 여름- 2

더럽고 냄새나는 쓰레기가 쌓이든 말든 내 머무는 곳만 깔끔하면 된다는 단세포로 살다, 남편이 쓰레기와 뒤엉키는 삶을 택한 뒤로는 길을 걷다 발길에 채이는 플라스틱 음료도, 누군가 쓰고 버린 짱짱한 마스크도, 한숨 들이키며 맛나게 빨아드신 담배꽁초도, 길을 막는 세월 먹은 가구들도, 이젠 나에게 확신을 주는 메시지가 되었다. 바로 조만간 지구는 쓰레기로 덮인다는 확신! 그리고 그 확신에 종지부를 찍을 일이 벌어졌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 그 고향을 지키는 소꿉친구에게 전화 거는 남편의 입은 헤벌쭉 해져있다. 한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를 만날 생각에 그저 기분이 좋은가 보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 친구의 목소리는 남편의 마음과 다른가 보다. 축 처진 목소리, 쉴 틈 없이 내뱉는 한숨, 뭔가 심상치 않다. 친구는 남편보다 훨씬 일찍 환경 공무직을 일을 시작했다. 연차가 되다 보니 야간청소만 하던 시절을 지나 사무실 근무를 배정받기도 한다. 오물 뒤집어쓰며 일하지 않아도 되는, 남들 자는 한밤중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횡재라며 축하한다 부럽다 한 적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 친구의 목소리는 조만간 숨이라도 넘어갈 듯 불안한다.


사연인즉 쏟아지는 대형폐기물들 접수에 애를 먹는다는 것이었다. 버리는 사람이 신고하고 폐기물 딱지 몇 천 원 주고 사서 붙여 놓으면 끝날 일이 무슨 대수일까 싶었다. 이어지는 친구의 말은, 예전에 그 많던 대형 폐기물 업체들이 일은 험하고, 수익은 나질 않기에 줄줄이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는 한 정 없는데 처리할 곳이 없으니 동네 한 귀퉁이 한참을 퍼져 자리 잡고 있는 대형 페기물들을 빨리 치워라 민원이 빗발친다는 것이다. 무더위로 불쾌지수 높아지는 이 여름, 고운 말로 민원 넣을 리도 만무하고 욕지거리 섞이고, 비하하는 발언들로 항의하는 통에 머리가 지끈 거린다며 남편의 친구는 우는소리를 연신 내뱉고 있다.


쓰레기가 많으면 얼마나 많을까 싶었다. 대형 폐기물이 나오면 얼마나 나올까 싶었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 보니 나 역시 돌아가신 어머니의 짐을 정리하며, 집안 살림의 반을 오래되고, 유행에 맞지 않는다라는 이유로 스티커 몇 장 사서 쉽게 내다 버렸다. 특히 새 아파트 주변에는 대형 폐기물들이 유독 더 많은 나오는데. 새 집에서 새 물건들로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내다 버린 물건들이 이제는 대형폐기물 업체들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이 되어버린 것이다.


비 오는 날 쓰레기 매립지에서 차량 바퀴가 빠져 허우적 되었다던 남편 말이 생각났다. 상상 못할 넓은 땅에 층층이 쌓인 쓰레기를 다지고, 다시 그 자리에 쓰레기를 쏟아내고, 또 쓰레기를 다지고, 또 쏟아붓고, 그러다 비라도 내린 날에는 온갖 악취 품은 질퍽한 쓰레기 땅이 트럭을 삼킬 듯 빨아들이기도 해 고생한다 했다. 이제는 이 일이 우리 집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드디어 갈 곳 없는 쓰레기들이 내 집 앞을 막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늘도 우리 집 쓰레기통을 가득 채운 쓰레기를 보며 한숨을 내쉰다. 곧 들이닥칠 일을 알면서도 내가 사는 공간하나 깨끗하게 만들어 보겠다 내다 버린 쓰레기들, 내 장담하건대, 이리 살다 지구가 쓰레기로 덮이는 일은 조만간 눈앞에 닥칠 일이 될 것이다. 알면서도, 눈으로 보면서도, 설마 하며 하지 않는 것은 무슨 배짱인지. 이 쓸데없고 어리석은 배짱! 당장에 내던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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