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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마수미 Jul 05. 2022

서방 하난 잘 만났다.

초보운전

복작거리는 도심 한복판에서 십여 년 놓은 운전대를 다시 잡다간, 집에 가서 밥이나 하고 오라는 소리 듣기 딱 좋을듯해, 남편이 몇 번이나 권하는 운전연습을 마다했었다. 그러다 남들보다 이르게 찾은 바닷가에 고요한 도로를 보니 운전이 하고 싶어졌다. 탁 트인 동해바다에 휑한 도로를 보니 여기서는 해 볼 만하단 생각이 들어 남편에게 도움을 청했다. 흔쾌히 일일강사가 되어주겠다는 남편은 내 옆에 다부지게 자리를 잡더니 차분하게 하나하나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짧은 거리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예전 운전하던 기억이 몸에서 일깨워지는듯했다. 제법 자신감이 생겨 휴가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내가 운전을 하겠노라 했다. 어찌 보면 일직선으로 달리기만 하는 고속도로가 운전은 더 쉬울 수 있으니 한 번 해 보라며 남편 역시 순순히 운전대를 내어주었다. 숙소에서 묵었던 짐들을 트렁크에 싣고 운전대를 잡았다. 살살 갈 테니 걱정 마라 식구들에게 말은 했지만 한국에서의 첫 장거리 운전이라 심장이 나대는 것을 아이가 눈치챘는지, 아이는 정말 엄마가 운전할 거냐며 몇 번을 묻더니 답답하다며 잘 하지 않으려던 안전벨트를 찾아 매고, 아빠에게도 안전벨트를 어서 매라 난리를 쳤다.

느리게 달리는 나를 보며 쌍라이트를 쏘는 운전자도 만났고, 갑작스레 추월하는 차 때문에 혼이 나갈 뻔한 적도 있었지만 우리 가족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짐을 풀며 그래도 마누라가 운전해서 편히 왔지라며 말하는 내게, 복싱 경기 12라운드는 뛴 것 같은 기분이라는 남편은 그날 운동을 가지 못하고 코를 골며 뻗어버렸다. 초보운전자 옆에 앉아 얼마나 긴장했을까. 욱하며 소리 칠만도 했을 텐데 숨 삭히며 차분하게 운전하는 법을 상기시켜 준 내 서방, 진짜 서방 하난 잘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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