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여름- 4
퍼붓던 빗줄기는 물러가고 폭염이 찾아왔다. 이글거리는 태양에 달궈진 한여름의 거리는 밤이 되자 낮에 품은 열기를 토해내기 여념 없다. 밤거리가 내뿜는 열기에 뚝뚝 흘러내리는 땀은 소금기를 잔뜩 품은 체 흰자위로 떨어진다. 시야가 가려진다. 더러운 장갑 낀 손으로 눈을 쓸어내렸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차라리 두 눈 힘차게 질끈 감고, 소금기 가득한 땀방울이 뚝하고 떨어지기를 바라는 게 나을 거다.
형광 모자 속에서 뿜어 나오는 땀은 이마를 타고 남편의 눈을 찌른다. 머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 국물의 길을 막아야 한다. 그러기엔 두건이 제격이다. 형광 모자는 안전을 위해 써야만 하니 덥더라도 그 안에 두건을 덮어쓰는 것이 낫다. 일을 마치고 두건을 벗어 빨래통에 던져둔다. 가볍던 두건이 물먹은 스펀지처럼 축축하기만 하다.
무거운 쓰레기를 수시로 들고, 옮기며, 청소차 분쇄기로 던져야 하는 일은 밤새 계속된다. 그 덕에 허리는 굽혔다 폈다를 수십, 수백 번 반복한다. 잠시 하고 말 일이 아니기에 허리를 보조해 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허리 보호대를 두 개나 찬다. 맨살에 찼다가는 살이 다 쓸리기에 티셔츠 밖으로 단단히 허리 보호대를 매어둔다. 일을 마치고 허리 보호대를 벗어 빨래통에 던져둔다. 눅눅해진 검은색 보호대는 바로 빨지 않으면 소금기를 뱉어 허옇게 변하기도 한다.
쫄쫄이를 챙겨 입는다. 한여름에 무슨 쫄쫄이까지 챙겨 입고 그 위에 또 바지를 껴입는가 싶겠지만, 뭐가 들었는지 모르는 쓰레기봉투에서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덥다고 맨 다리를 드러내는 복장을 하는 것은 도박이다. 쫄쫄이 위에는 무릎 보호대가 감싸고 있다. 그 위 가벼운 바지를 하나 더 껴입는다. 마지막으로 한겨울부터 신던 두터운 양말을 계절감 상관없이 신어준다. 이 모든 장비는 어느 정도 남편의 몸을 보호한다.
더운 날 모든 장비를 챙겨 입고 일하는 것은 쉽지 않기에 대부분의 청소부들이 남편처럼 이런저런 장비를 다 챙겨 일을 하진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듣고 보게 되는 선배 청소부들의 사고 소식과 나이 들어 생기는 병들은 한때 건재한 몸뚱이만 믿고 계속 이일을 하는 것은 오기로만 보이게 한다.
새벽 2시에 일어난 남편은 찬물로 온몸을 씻어낸다. 그리고 자기 전 챙겨둔 장비들을 하나 둘 걸친다. 쫄쫄이 바지를 입고, 무릎 보호대를 하고, 티셔츠를 입고, 팔 토시를 하고, 허리 보호대를 감싸고, 또다시 긴 바지를 챙겨 입고, 두꺼운 양말을 꺼내 신고, 형광색 조끼를 걸치고, 눈만 내어놓는 복면을 쓰고, 다시 그 위해 형광색 모자를 눌러쓰고, 무게가 꽤 나가는 안전화를 챙겨 신고, 날카로운 유리에도 손이 베이지 않게 두 개의 장갑을 겹쳐끼고, 방진 마스크까지 쓰면 남편의 로보캅으로 변한듯한 출근 준비는 끝이 난다.
집을 나서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세상의 모든 신들에게 기도한다.
별 탈 없이 안전하게 무사한 하루 보내게 해주소서.